李 정부 대북정책, ‘콘트롤타워’ 있나?

3일, 출범 100일을 맞는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대표 브랜드는 ‘비핵·개방·3000’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월 25일 취임사에서 “이념의 잣대가 아닌 실용의 잣대로 풀어가겠다. ‘비핵·개방·3000’에서 밝힌 것처럼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의 길을 택하면 남북협력에 새 지평이 열릴 것”이라며 ‘비핵·개방·3000’을 새 정부의 대북정책으로 공식화했다.

‘비핵·개방·3000’은 조건부 경제적 해법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추구하겠다는 전략이다. 또한 ‘실용주의’를 앞세운 이 정부의 대북정책은 민족과 자주를 앞세운 지난 10년의 ‘햇볕정책’과의 차별화를 꾀했다. ‘접근 방법’에 있어서도 ‘상호주의적 조건부’ 방식을 천명하며 지난 10년의 ‘무조건 퍼주기’와는 다른 방식의 지원이 될 것임을 밝혔다.

지난 정부와의 차별화는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접근에서도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박인국 외교통상부 다자외교실장은 지난 3월 유엔인권이사회에 참석해 “북한의 인권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우려에 대해 북한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한 우리 정부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의 임기 연장 표결에도 찬성했다.

◆ ‘햇볕정책’과 차별화…北인권·통일교육 변화=이전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남북간 화해협력이라는 기조아래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강조해 온 것에 비해 이명박 정부는 인권이라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에 더 비중을 두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새 정부의 대북정책 변화는 통일교육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통일부 산하 통일교육원은 지난달 펴낸 ‘통일교육 지침서’를 통해 지난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 ‘6·15선언’과 ‘10·4선언’의 한계와 부작용을 명확히 설명했다.

이는 ‘햇볕정책’의 한계를 학생들에게 교육시킴과 동시에 북한의 핵개발에 따른 안보위협도 강조해, 북한문제와 통일과 관련해 이념적 편향성을 극복하고 객관성과 중립성을 유지하려는 의지로 풀이되고 있다.

이외에도 통일교육원은 ‘북한이해 2008’에서 그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라고 표기해왔던 것에서 ‘국방위원장’을 빼고 ‘김정일’로만 표기했다. 또한 남북관계의 전환점을 ‘남북기본합의서’로 기술,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으로 기술한 2007년판과 차이를 보였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지난 100일간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기존 정부가 추진했거나 접근했던 대북접근에서 탈피해 좀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조정해간다는 입장을 취해왔다”며 “남북관계의 특수성에 지나치게 중점을 둔 정책에서 벗어나 외교나 안보 등 큰 틀에서 남북관계를 추진하려고 했다”고 평가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대북정책으로 ‘비핵·개방·3000’을 내세우고 있지만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도 제시되지 않았고, 전략에 대한 정부 차원의 조율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며 “한 마디로 대북정책에 대한 콘트롤 타워가 제대로 서 있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비핵·개방·3000’은 북한의 핵 포기나 개방 실시 등 전향적인 정책변화가 일어날 때 가능한 일로 국제적 협조나 기반이 갖춰져야 가능한 정책”이라며 “때문에 당장은 남북관계를 이명박 정부답게 재구성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하지만 현재 이 부분에 여력을 쏟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북한인권 개선을 촉구한 것은 우리의 입장 표명에 불과한 것으로 북한인권을 적극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은 아니다”며 “북한인권과 관련한 기구나 전략이 갖춰져 있지 못하다”고 평가했다.

◆ 北 대남공세 개시…남북관계 교착=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한 달간 한국 정부의 변화된 대북정책에 별다른 입장을 보이지 않았던 북한이 지난 3월부터 남한에 대해 공세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3월 2일 김하중 통일부 장관의 ‘북핵-경협’ 연계 발언을 문제 삼아 개성공단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경협사무소)에 상주하고 있던 남측 요원 전원의 철수를 요구했다. 이어 계속해서 이명박 정부를 강도 높게 비난하며 남북관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북한 당국은 경협 사무소에 남측 요원들을 쫓아낸 다음날에는 서해상으로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고, 김태영 합참의장 발언을 빌미로 “모든 남북대화를 중단할 것”이라는 으름장을 놨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 ‘역도(逆徒)’로 지칭하면서 새 정부의 ‘비핵∙개방3000’구상을 비판하는 등 두 달 가까이 대남비난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북한이 이렇듯 경색 국면을 장기화시키고 있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시험하기 위해서라고 전문가들은 관측하고 있다. 아울러 현재의 위기 상황이 이명박 정부의 ‘대결정책’ 때문이라는 선전·선동을 통해 남남(南南) 갈등을 조장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정 실장은 “북한은 남한에 보수정권이 들어선 후 ‘접근전략’을 쓰기 보다는 ‘대결전략’을 택해 끊임없이 남한 정권을 비난하며 남북관계를 주도하려는 측면이 있었다”며 “그러나 우리 정부는 북한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해서 기존의 방침과 정책을 꺾을 수 없다는 원칙을 견지해왔다”고 평가했다.

그런 우리 정부 또한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흔적이 역력하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월 방미 중에 서울과 평양에 상설 연락사무소 개설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청와대 측은 “남북 연락사무소는 진정성 있고 실질적인 남북간 대화와 협력을 위해 상시적인 채널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구상한 것”이라고 취지를 밝혔지만 북한 측에서는 “한갓 말장난에 불과하다”며 제안을 거부했다.

◆ 北 식량난에도 남측에 지원 요청 안 해=대북 식량지원과 관련, 정부가 당분간의 교착 상태를 감수하고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주문하고 있다. 남한의 경제적 지원 등이 절실히 필요한 북한의 입장에서 핵문제가 장기화 돼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변화를 보일 수 있다는 것.

이명박 정부의 입장에서도 쇠고기 수입 문제나 대운하, 인사문제 등 국내 정치 영역에서 잇따라 악재가 터지며 남북 간의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획기적인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은 당분간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현 정부가 당면한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남북관계를 국면 전환의 카드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유 교수는 “현재의 국내 정치적 어려움을 남북문제를 통해 돌파하려고 하는 것은 지난 10년 동안의 햇볕정책보다 더 저급한 형태의 대북전략”이라며 “남북관계를 우리의 구상에 따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려고 해야지 국면타개용으로 활용하려고 한다면 국내외의 지지 기반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북한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최악의 식량난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한에 대해 식량 지원 요청을 하고 있지 않다. 이명박 정부는 대북 경제협력에 대해서는 비핵화와의 연계에 따른 ‘단계적 접근’ 원칙을 밝히고 있지만 식량문제와 관련한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는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남한은 북한이 핵실험을 했던 2006년을 제외하고 해마다 40~50만t의 식량차관을 제공해 북한의 식량부족을 해결하는데 역할을 해왔다. 특히 최근 북한의 식량 사정은 대아사 기간 이후 가장 심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지금까지 우리 정부에 식량 지원 등의 공식적인 메시지를 보내지 않고 있다.

이에 반해 미국 정부는 북한에 대한 50만t의 식량지원 계획을 공식 발표하고 이를 북한 매체들이 신속히 전하는 등 핵 신고 문제의 타결을 계기로 미국의 대북식량지원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북한의 식량지원 요청이 있으면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으나, 최근 북한 식량부족 사태가 심각한 수준인 데다 북핵 문제의 진전, 미국의 식량지원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대북 지원에 대한 입장 변화가 관측되고 있다.

◆ 남북경협 소강…‘현실성’ 따져 선별적 추진=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주요하게 추진됐던 남북경협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며 사실상 소강 사태를 맞고 있다.

정부는 남북경협에 대해 “북핵이 폐기되고 나서 하는 게 아니라 (비핵화의) 진전에 따라 단계적으로 하겠다. 단계적으로 한다는 것은 남북간 상황, 핵문제 상황, 남북경협 4대 원칙에 따라 대규모의 지원이나 경협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은 현 수준을 유지하되 10·4 선언 등을 통해 합의됐던 남북경협 사업들은 남북관계 진전이나 사업성 등을 타진해 봐가며 진행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

실제로 2차 정상회담을 통해 합의된 사업 중 현실화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졌던 ‘남북 직항로를 통한 백두산 관광’도 연내 추진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그룹은 당초 5월 백두산 관광을 자신했으나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추진이 전면 보류된 상태다.

지난 정권에서 남북경협의 상징이라고 선전해온 개성공단 또한 당국 간의 소통 단절로 ‘3통(통신·통행·통관)’ 문제 등 현안 해결이 늦어지고 있고, 2단계 분양 등 추가 개발 전망이 불투명한 상태다.

정 실장은 “2차 정상회담에서 내온 경제적 합의 사항들을 추진하기에 앞서 우리의 경제력이나 현실적인 부분을 따져보자는 것이 현 정부의 입장”이라며 “기존의 합의는 무조건 지켜져야 한다는 북한의 입장과 부딪히다보니 경협이 답보상태를 겪고 있긴 하지만, 새 정부의 노선 수정으로 인한 조정기간으로 볼 수 있으며 장기화 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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