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가 북핵문제 해법마련에 고심하는 가운데 북한을 제외한 한·미·일·중·러 5자협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주목을 얻고 있다. 5자협의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처음 제안했다.
북한이 ‘잘못된 행동’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핵 폐기를 위해서는 5자가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취지다.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이 통과된 이후 대북제재가 실효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중국과 러시아의 참여가 필수적인데 5자협의를 통해 이를 적극적으로 추동해나가야 한다는 판단도 있다.
물론 이 5자협의는 6자회담 틀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전제로 한다.
미국은 5자협의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회담 개최 여부에 대해서는 분명한 입장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게이츠 국방장관이 5자협의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을 표시했고,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신안보센터(CNAS)가 최근 보고서에서 “(5자회동이) 동북아지역에서 필요성이 더욱 커진 역내 안정과 협력을 확보하고, 북한의 전술에 놀아나지 않는다는 확실한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문태영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18일 정례브리핑에서 5자협의 문제에 대해 “한미 양국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간 긴밀한 공조를 바탕으로 한 5자간 협의를 통해 북한에 불가역적인 핵폐기를 위한 보다 효과적인 방안을 계속 협의해 나가고 있다”며 “중국과 러시아와도 5자협의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현재 5자협의에 대해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북한을 지나치게 고립시켜서는 안된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중국과 러시아는 이 대통령이 5자협의를 제안한 지 하루 만에 양국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당분간 북한을 설득할 시간을 갖고 기다려보자는 의미다.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회담을 주도해온 중국으로서는 한미가 주도할 가능성이 높은 5자협의가 반가울리가 없다. 5자회동이 개최되면 당분간 대북제재에 대한 국제공조가 논의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은 북한의 핵실험에 따른 유엔 제재 결의안엔 찬성했지만, 더 이상 북한과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싶어하지 않은 모양새다.
최춘흠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5자협의는 대외적으로 북한을 배제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중국으로서도 공개적으로 선호 유무를 밝히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다만 5자협의가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위한 것이라면 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부시 행정부에서도 5자협의가 추진됐지만 중국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미 클린턴 정부 시절에는 북미고위급회담과 함께 4자회담이 추진된 적은 있다. 당시 4자회담은 미국과 한국, 중국과 북한이 참석해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따라서 5자협의가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기 위한 포괄적 논의를 목적으로 한다면 중국이 참여할 가능성도 있지만, 대북 제재를 위한 협의일 경우 중국은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신상진 광운대 교수도 “중국은 북핵 6자회담을 통해 동아시아의 영향력을 강화해왔다”며 “5자협의로 인해 6자회담이 파기되면 중국의 역할이 축소되고, 경쟁국인 미국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진다고 생각해 지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 교수는 이어 “5자협의는 결국 북한을 압박해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을 심화시켜 북한을 더욱 더 비이성적으로 나오게 할 가능성이 높다고 중국은 판단해 반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재성 서울대 교수도 “중국은 제재 공조를 넘어선 비전이 마련되지 않으면 5자협의 참가를 주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