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경색국면을 맞고 있는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남북한 당국의 전면 대화 재개를 11일 북한에 공식 제안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과거 남북 간에 합의된 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비핵화공동선언, 6.15공동선언, 10.4정상선언을 어떻게 이행해 나갈 것인지에 관해 북측과 진지하게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에는 비록 북측이 요구한 6.15, 10.4선언 존중의 의사가 직접 담겨져 있지는 않지만, 기존의 입장보다는 한 발 물러선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월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남북기본합의서와 그 이후에 정상이 합의한 합의문이 있다”며 “가장 중요한 기본 남북 간 정신은 1991년 체결된 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직접적인 표현은 없었지만 6.15, 10.4 선언보다 남북기본합의서에 더 무게를 둔 표현이었다.
또한 정부는 지난해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채택된 10.4선언의 구체적 합의사항에 대해서 재검토를 통해 이행할 수 있는 부분만 이행하겠다는 유보적 입장을 취해왔다.
북한은 이 대통령의 이 발언 이후 각종 선전매체를 통해 6.15, 10.4선언의 이행을 촉구하는 등 대남 비방 공세를 이어갔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 ‘역도(逆徒)’로 지칭하고, 새 정부의 ‘비핵.개방.3000’구상에 대해서도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 뒤 장기화된 남북한 간의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이 대통령은 지난 4월 방미 당시 서울과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었다. 그러나 북한은 이에 대해서도 “북남관계 악화의 책임을 회피하며 여론의 시선을 딴 데로 돌리기 위한 얕은 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하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이에 따라 최근 북한이 남한과의 대화와 교류를 거부한 채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등 남북관계가 답보 상태를 보이자, 이에 대한 조급함으로 인해 이 대통령이 북한에 전면적 대화를 제안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7.4 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비핵화 공동선언, 6.15공동선언, 10.4정상선언 등을 같은 선상에서 언급한 것은 정부가 기존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선 태도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송대성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과 남한내 좌파들이 최근의 남북관계 경색의 책임을 이명박 정부에 있다며 공세를 취하니 ‘그렇지 않다’고 강력히 천명한 것”이라며 “남북 간에 그동안 합의했던 선언들을 종합적으로 따지고 한번 토론해보자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평가했다.
송 연구위원은 “6.15, 10.4선언 자체가 비합리적인 부분이 많은 만큼 ‘다 내놓고 따져보자’는 것”이라며 “비춰지는 모습은 한발작 물러선 것으로 보이지만 종합적으로는 적극적인 행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신안보연구실장도 “북한이 요구하는 부분을 직접 수용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남북 간 합의를 열거하고 대화하자고 제안했기 때문에 북한도 기존 정부의 입장에서 나아간 것으로 평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과거보다는 전향된 입장을 보이고 있음에도 북한이 당장 대화 테이블로 돌아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지적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은 “6.15.10.4 선언을 존중한다는 표현은 없었지만, 과거의 합의들과 대등한 선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과거에는 6.15, 10.4 선언을 상대적으로 소홀하고 있다는 인상을 줬는데 그런 표현이 들어가 있지 않다는 점을 북한 측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 실장은 “북한도 곧바로 대화에 나서기에는 미흡한 측면들이 있다고 판단할 것이기 떄문에 당분간 관망하는 태도는 계속될 것”이라며 “그러나 공은 북한에게 넘어간 것이기 때문에 조만간 장관급 회담이나 총리회담 제의로 북측이 화답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제안했다.
송 연구위원은 “북한으로서는 이명박 ‘길들이기’ 기간에 ‘통미봉남’에 주력하고 있으니 좀 더 지켜볼 가능성이 크다”면서 “결국 이번 이 대통령의 제의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