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통일 “정세상관없이 인도지원 계속”

이재정(李在禎) 통일부 장관이 취임 직후부터 강조해 온 ‘인도적지원 원칙 재정립’의 윤곽이 드러났다.

이 장관이 8일 연합뉴스와의 신년인터뷰에서 밝힌 향후 인도적 지원의 방향은 국회 동의를 통한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북한과의 합의를 거쳐 원칙을 세운 뒤 정세에 흔들림없이 지켜나가자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 장관의 구상은 정세에 상관없이 지속돼야 할 인도적 지원에 확고한 원칙이 없다보니 여론 동향 등에 따라 흔들린다는 고민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인도주의는 어떤 조건도 없이 실행되고 실천해야 하는데 정치적 이유나 최근의 미사일.핵실험 때문에 선한 인도주의의 뜻도 실천해 갈 수 없는 상황으로 갔다”고 각종 대북지원이 북한의 ‘도발’ 이후 유보된 데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한반도에 평화를 만들어가려면 인도주의에 관한 문제를 평가하고 계획을 세울 때가 되지 않았는가 생각한다”고 인도적 지원 원칙 재정립에 착수한 배경을 설명했다.

통일부는 정부가 남북협력기금을 통해 지원하는 대북 쌀.비료 지원은 물론 수해 등에 따른 긴급 구호지원, 영유아 돕기 등 시민단체의 지원사업, 지방자치단체 자체 지원사업 등 인도적 지원의 범주에 들어가는 사업들은 주체와 내용에 상관없이 모두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인도적 지원이라고 판단된 사업들은 정세에 상관없이 지원하자는 것이다.

이 장관은 “영유아 영양관계나 보건의료에 대한 지원, 극빈자들을 위한 식량지원, 재난 등에 따른 지원은 정치적인 것과 관계없이 지속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북 쌀.비료 지원에 대해서도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장관은 “비료 지원은 계속돼야 할 지원사업 가운데 하나”라고 잘라 말해 향후 정세에 상관없이 지원하는 품목으로 구분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차관 형식으로 제공되는 쌀 지원에 대해서도 그는 “우리 내부에서는 인도주의라 하고 북한은 차관이라 하는데 전체를 차관으로 할 지 일부를 인도주의로 할 지, 또는 전체를 인도주의로 할 지 검토해야한다”고 말해 어느 정도는 정세에 상관없이 지원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진다.

주목할 점은 이산가족 상봉과 납북자 문제 등 인도적 이슈에 대해서도 원칙을 정립하겠다는 것이다.

이 장관은 “(인도적 문제는) 북한에 대해서는 여러 지원이 있을 수 있고 우리는 이산가족 문제나 납북자 문제, 또한 우리 이익을 위한 경제협력에까지 광범위하게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이는 지금처럼 남북 적십자가 만나 매번 이산가족 상봉 일시와 절차에 합의하는 것이 아니라 설과 추석, 6.15행사 등 특정 기간을 계기로 북측과 합의된 원칙을 정해놓자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세에 상관없이 남측은 인도적 지원을 하고 북측은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갖는다’는 원칙 정도는 세워놓아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판 구실은 할 수 있다는 구상인 것으로 읽힌다.

이 장관은 정부 내에서 인도적 지원 원칙을 재정립한 뒤 국회 동의를 구할 계획이다.

북한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이후 유보된 쌀.비료를 재개하는 데도 이번에 재정립할 인도적 지원 원칙이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할 전망이다.

이 장관은 인도적 지원과 관련, “6자회담이 북핵문제를 해결할 과정을 만들거나 남북회담을 통해 큰 틀의 합의가 되면 재개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힌 뒤 “이 모든 것이 어려워졌을 때 한반도 평화유지를 위한 기본적 인도적 지원을 하기 위해 국민적 이해를 도모하면서 가능한 길을 찾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장관과 통일부의 생각대로 대북 인도적 지원의 원칙이 작성되고 이에 따라 정세에 흔들림없이 지원이 이뤄질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지난 7월 정부가 쌀과 비료 지원을 유보할 때도 인도주의적 측면을 고려했음에도 강경해진 국내외의 대북 여론을 막아낸다는 차원에서 불가피하게 선택된 전략적 결단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시 쌀과 비료를 유보하지 않았더라면 자칫 금강산관광이나 개성공단사업 등 남북관계에 있어 더욱 큰 성과를 희생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한 대북 전문가는 “대북지원을 정세에 상관없이 계속하자는 이 장관의 추진 의도는 좋지만 소용돌이치는 남북관계의 현실에서는 실현이 상당히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