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통일, 속내 감춘 ‘저공비행’ 언제까지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몸을 한껏 낮춰 저공비행을 계속하고 있다.

이 장관은 지난 11일 취임한 이후 업무 파악을 이유로 잠행을 계속하다 28일에야 언론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여러 행사에 참여하긴 했지만 장관 취임 후 언론을 상대로 정식 브리핑을 가진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이끌어갈 적임자라는 평가 속에 이종석 전 장관의 후임으로 통일부 장관에 내정됐지만, 한나라당의 강한 반발 속에 임명을 받지 못하다 우여곡절 속에 40일 만에 임명장을 받아서인지 지금껏 언론을 상대로 말을 아껴왔다.

장관 취임 이후 무엇보다 그에게 관심이 쏠렸던 것은 지난 7월 미사일 발사 이후 중단된 대북 쌀‧비료 지원 재개 문제였다.

지난 10월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시절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북한 핵실험 이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전제하면서도 “인도적 지원 문제는 정말 북한의 현 상황이 아주 어렵기 때문에 가능한 한 조속한 시일 내에 다시 회복돼야 한다”고 말한 그였기에 더욱 그랬다.

또 지난 18일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북한에 대한 쌀‧비료 지원을 중단한 것은 북에 대해 가장 고통스러운 제재가 됐을 것”이라면서 “제재는 가능한 한 짧을수록 좋지만 이 문제는 북한의 태도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이종석 전 장관이 ‘대북지원 재개 시점은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할 때’라고 밝힌 것과 관련해, “이 전 장관이 밝힌 시기는 7월 미사일 발사 이후이고, 지금은 북핵 실험이라는 중대 사태가 벌어진 상황으로 지금은 쌀을 지원할 상황이 아니다”고 분명히 밝혔다.

아울러 정부가 북한에 지원한 쌀·비료는 차관형식(10년 거치 20년 상환)으로 지원한 상거래이기 때문에 레버리지(지렛대) 성격이 강하다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쌀·비료 차관과 인도적 지원과는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물론 그동안 정부의 대북 쌀·비료 지원이 차관형식을 띤 것이 사실이지만, 정부 내부에서조차 북한으로 하여금 대금을 돌려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실 쌀 지원은 차관 형식을 띠긴 했지만 무상지원에 가까웠다는 것이 그동안의 지적이었다.

“지금은 대북 지원을 재개할 시점이 아니다”는 발언과 “정부의 대북 쌀·비료 지원은 차관형식의 상거래에 해당하기 때문에 인도적 지원과는 구분해서 바라봐야 한다”는 이 장관의 주장에 대해 주변에선 의외라는 분위기다.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한 상황에서 정부의 대북 지원이 재개될 것이라는 다수의 예상을 깨고 ‘지금은 때가 아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주장을 아직까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이 장관의 이런 발언 직후 기자들은 통일부 당국자들을 붙잡고 이 장관의 발언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정말로 지원을 하겠다는 것인지, 말겠다는 것인지 솔직하게 밝혀 달라”며 재차 확인하는 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각에선 이런 그의 행보에 대해 ‘정부의 대북정책에 힘을 실어줄 여당이 극심한 분열 속에 하루가 멀다 하고 대통령과 치고 박고 있고, 한나라당에선 이념적 편향성을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계속 문제 삼겠다고 경고한 마당에 무턱대고 대북지원을 재개할 경우 모든 게 끝날 수도 있다는 현실적 판단 때문’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한마디로 자신의 의지나 소신과는 상관없이 몸을 낮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 그러나 이 장관의 성격상 포용정책에 대한 소신을 꺾고 대북제재가 오랫동안 지속되진 않을 것이란 전망도 만만치 않다.

이 장관이 대북지원에 대한 적극적 소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때문에 이날 대북 쌀‧비료 지원 재개 시점으로 ‘6자회담 진전’ ‘남북간 대화’ ‘국민 공감대’라는 3대 전제조건을 제시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중 하나라도 충분조건이 생긴다면 예상보다 빨리 대북지원이 재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위해 남북회담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그의 주장이 대북 지원 재개를 위한 포석 깔기 쯤으로 해석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