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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통일부 장관의 발언이 잇따라 구설수에 오르면서 ‘숙성되지 않은 구상’, ‘대북지원 재개를 위한 포석 깔기’란 뒷맛을 남기고 있다.
이러한 ‘숙성되지 않은 구상’이라는 비판조차도 대북 쌀·비료 지원 재개를 전제로 가해지고 있다. 말은 바른데 섣부르다는 것이다. 대북 포용을 진리로 떠받드는 장관이 이러한 발언을 흘리고 다니자 대북지원 재개는 이제 시기의 문제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다만 이 장관이 취임 이후 보여 온 정중동(靜中動) 행보를 놓고 볼 때, 핵실험으로 불거진 대북지원에 대한 부정적 여론과 정치권의 반발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통해 인도적 지원을 모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 장관은 지난달 28일 첫 정례브리핑에서 다소 복잡하지만 심중을 드러내는 말을 했다.
그는 “북한에 대한 쌀이나 비료 지원을 어떻게 볼 것인지, 차관 형식이나 무상 지원은 어떻게 볼 것인지 중요하다”면서 “(대북 지원에 대한) 투명성의 보장과 사후 검증 등 모든 것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인도적 지원 범위와 내용, 효율성 문제 등을 검증해 지원 재개를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즉 조건 없이 지원할 부분과 레버리지(지렛대)로 써야 할 부분을 구분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대북지원은 그나마 조건이 붙으니, 아무 조건없는 인도적 지원방안을 새로 강구하겠다는 말이다.
이 장관은 2일 기자간담회에서 “북의 빈곤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한반도의 안보는 언제나 위험스러울 것”이라며 “우리는 북의 빈곤에 대해 3천억 불 수출국으로서, 세계경제 10위권의 국가로서, 같은 민족으로서 책임을 감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트랙2’라고 불리는 NGO와 시민사회간 교류 협력이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며 “남북간 대화의 폭을 넓히기 위해 규제와 제한을 풀어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협력이 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직접 지원 보다는 NGO나 종교계 등 민간영역의 대북지원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 장관이 북한 빈곤책임과 민간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결국 국내외 민간단체나 국제기구를 보조하는 방식으로 대북지원을 하겠다는 발언이 아니냐는 의심을 낳기 시작했다.
취임 직후부터 잇따라 종교계를 방문해 자문을 구하는 모습도 예사롭지 않다. 5일은 대북포용의 원조격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났다.
그는 이러한 면담을 가진 직후 “종교인들을 만나면 ‘우리민족 문제는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북에 대해 우리가 좀더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지원에 무게를 실었다.
정부는 차관 형식으로 쌀과 비료를 지원하다 지난해 7월 북한이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자 중단했다. 이후 북핵 실험까지 더해져 국민들의 대북 여론이 악화되자 당분간은 지원 재개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결국 인도적 지원의 순수성과 남북관계 복원 필요성, NGO와 민간 대북협력 중요성 등이 민간단체를 통한 지원재개를 시사하는 행보로 모아진다는 분석이다.
이 장관은 통일부 직원들에게 보낸 신년사에서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며 “과감한 인식의 전환 그리고 새로운 대안의 창출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어떤 형식의 지원이 됐든, 북핵문제 해결의 일정한 진전 없이 형식만 달리한 대북지원 재개는 국민들의 동의를 구하기 어렵다. 또한, 핵 보유를 고집해도 어떻게든 남한은 우리를 도와준다는 인식을 주는 것이 과연 인도적 지원의 효과인지 의문이다.
이 장관이 그렇게 북한 주민들의 먹는 문제가 걱정된다면 분배 투명성부터 요구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