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여사 초청하고 안 만난 김정은 예의가 있나

며칠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3박4일 동안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김정은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헛물만 켰습니다. 대신 김정은은 급이 한참 낮은 아시아태평양위원회 부위원장 맹경일을 비행장에 내보내 “이희호 여사님의 평양 방문을 환영한다”는 말만 전했을 뿐입니다. 환영인사를 한 글쪽지도 한 장 없었습니다. 서른 살밖에 안 된 새파랗게 젊은 김정은이 아흔을 훌쩍 넘은 이 여사를 평양으로 초청해놓고 만나지도 않은 것입니다.

물론 김정은이 이번에 이 여사를 만나지 않은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항상 정치적 목적만을 노리는 김정은이 그를 만나봤자 큰 이득이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어제 2015 동아시아 컵 경기대회에서 1등을 한 여자축구선수들을 비행장까지 나가 마중한 김정은을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축전을 보낸다, 여자 축구선수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다, 연회를 베푼다, 하루 종일 요란을 떨었습니다. 나이 어린 여자축구선수들이 국제무대에 나가 1등을 한 것을 김정은은 순식간에 자기 업적으로 둔갑시켜버린 것입니다.

정치적 이용가치로만 판단하는 김정은에게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잘 걷지도 못하는 부인을 자기 이름으로 직접 초청했으면 만사를 제쳐 놓더라도 만나야 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이건 도리에 어긋나는 것을 넘어 인간사의 기본을 무시한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죽했으면 이 여사측이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해 달라”고 대놓고 북측 인사에게 말했겠습니까.

북한 인민들은 얼굴에다가 이상한 것들을 주렁주렁 단 미국 은퇴 농구 선수 로드맨을 평양에 불러 극진히 환대했던 김정은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특별히 원산에 있는 자기 별장에까지 초대해 별의 별짓을 다 벌려놨던 김정은입니다. 요란한 대접에 놀라 큰 자랑거리로 떠벌이고 다녀 로드맨 역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놀림을 받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북한 인민들은 또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이렇게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는 김정은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황당할 따름입니다.

하긴 자기 고모부마저 서슴없이 죽이는 인간에게 예의를 지키라고 요구하며 논하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긴 합니다. 그러나 김정은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초보적인 예의조차 갖출 줄 모르는 주제에 쩍하면 내뱉는 인민에 대한 사랑을 다시는 입 밖으로 꺼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선전용으로 펼치는 김정은의 사랑 타령이 얼마나 가식적이고 허황한 짓인지 이번에 낱낱이 드러났습니다. 초보적인 예의범절도 모르는 김정은이 이번 기회에 유치원 선생님들한테 배우길 충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