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4일 신년국정연설을 통해 제안한 ‘남북간 상시대화기구 마련’ 및 ‘북한 지역 국군 유해발굴 사업’ 제안에 대한 북측의 반응에 이목이 쏠린다.
이 대통령은 “올해 남북관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며 남북간 상시적인 대화기구 마련을 제안했다. 또 올해 6.25전쟁 60주년을 상기하며 “금년에는 북한과 대화를 통해서 북한에 묻혀 있는 국군 용사들의 유해 발굴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정부 유관부처 내부에서는 일단 북한이 1일 발표한 신년공동사설을 통해 남북대화 및 남북 협력 사업에 유화적인 입장을 밝힌 것에 주목하며 비교적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 정부 당국자는 이날 “남북간 상시대화기구는 이미 이명박 출범 직후에 제안된 적이 있었으나 북한이 거부했었다”고 상기하면서도 “이번에는 분위기가 약간 다를 수도 있어 보인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이 대통령은 2008년 4월 방미과정에서 워싱턴 포스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서울과 평양에 남북간 상설 연락사무소를 설치할 것을 전격 제의한 바 있다. 당시 이 대통령은 “남북이 위기상황 때마다 간헐적으로 접촉하는 것보다는 정례적인 대화를 위해 상시 대화채널을 구축해야 한다”면서 “남북이 지속적으로 대화하기 위해 서울과 평양에 연락사무소와 같은 상설대화기구를 제안하려 한다”고 밝혔다.
특히 연락사무소 대표 수준과 관련 “양측이 협의할 사안이지만 최고책임자에게 말을 직접 전할 수 있을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라며 연락사무소가 사실상 남북정상간 ‘핫라인’이 되어야 함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북한은 노동신문을 통해 “북남 사이의 ‘연락사무소’ 설치문제로 말하면 새것이 아니며 이미 오래전에 남조선의 선임자들이 북남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로 만들고 분열을 영구화하기 위한 방패로 들고 나왔다”며 거부했다.
특히 신문은 이 대통령에 대해 ‘알짜무식쟁이’ ‘정치몽유병 환자’라고 지칭하며 “역사의 심판을 받고 쓰레기통에 처박힌 더러운 반통일 오물짝을 꺼내들고 거기에서 무엇이 생기지 않겠는냐고 망상까지 하겠는가”며 격렬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약간 다르다는 것이 이 당국자의 전망이다. 북한이 지난해 여름부터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을 자제하며 남북경협 재개를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어 남북간 접점 찾기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31일 기자회견에서 “남북정상회담 가능성 열려있다”면서 상황과 조건만 맞다면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도 1일 발표한 신년공동사설에서 “북남관계를 개선하려는 우리의 입장은 확고부동하며 남조선 당국은 북남공동선언을 존중하고 북남대화와 관계개선을 길로 나와야 한다”고 천명했다.
특히 북한의 입장을 대외적으로 대변하는 재일조선인총연합(조총련) 기관기 조선신보는 한 걸음 더 나가 북한의 신년공동사설에 대해 “(북남)정상회담에 기초해 관계를 개선하려는 북한의 입장을 나타낸 것이며 올해 극적인 사변을 예감케하는 의지 표현’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정부는 일단 조만간 이 대통령의 제안을 북한에 전달하는 등 구체적인 추진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이 당국자는 “북한이 2008년 처럼 대놓고 거부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2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올해 공동사설에서 주민들에게 약속한 ‘인민생활 획기적 향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남측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라는 해석이다.
북한지역에 묻혀 있는 6.25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 역시 주무부처인 국방부를 통해 조만간 정부의 제안이 북측에 전달될 예정이다.
지난 2000년부터 6.25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이 정부 공식사업으로 추진된 이래 현직 대통령이 북한지역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을 제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은 ‘생존 국군포로 송환’보다 정치적 의미가 비교적 약하기 때문에 북측이 소극적으로나마 협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인 것으로 전해진다.
국방부는 6.25전쟁으로 국군 13만7천899명이 전사했고, 3만2천838명이 실종되거나 포로가 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사자 가운데 60%인 7만8천여명이 남한지역에, 30%인 3만9천여명은 북한지역에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머지 10%인 1만3천여명의 전사자는 비무장지대(DMZ)에 몰려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국방부는 2000년부터 시작된 유해발굴사업을 통해 남한지역의 주요 격전지에서 국군 전사자 유해 3천367구와 유엔군 유해 13구 를 발굴한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책연구기관 소속 연구원은 “북한 지역에서 전사자가 밀집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은 모두 북한이 전승지로 선전하고 있는 곳”이라며 “국군 전사자 발굴이 간접적으로는 자신들의 전승 성과를 선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북측이 완강히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그는 “북측은 자신들이 원하는 남북경협 기준이나 파격적인 식량지원등을 조건으로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면서 “북측의 요구를 어디까지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정부의 판단에 따라 남북상시대화기구 마련이나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의 성과가 결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경섭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이 남북관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인도적 지원을 병행하면서 북한을 설득한다는 원칙을 유지한다면 나름대로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오 연구위원은 “이 대통령이 6.25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을 북한에 공식 제안 했다는 자체만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면서 “상시 대화기구 문제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당국간 대화는 어떤 경우에도 중단되서는 안된다’는 점을 북측에 설득하고 합의를 이끌어 내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