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대북 `원칙’ 재확인

이명박 대통령이 13일 기자회견에서 한 북한 관련 발언은 ‘비핵.개방 3000’ 구상을 통해 밝혀온 ‘원칙’을 유지하면서 북의 대남 도발은 의연하게 대처한다는 기조를 재확인한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이 정부 대북정책을 비난하며 잇달아 도발적 행동에 나선 이후인데다 ‘총선 변수’가 사라지고 핵신고와 관련해 북.미간 진전 조짐이 보인터라 대통령이 뭔가 새로운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하는 예상도 있었지만 원칙을 재확인하는데 방점이 찍혔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대화문 열어두겠다..단, 북도 달라져야한다’ = 이 대통령은 이날 최근 남북관계의 성격을 “지난 10년간의 기존 틀이 새로이 정립되는 조정 기간”으로 규정하면서 “북한의 도발적인 언동들에 대해서도 그러한 관점에서 원칙을 갖고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핵화와 남북관계 발전의 확고한 연계’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남북관계 관행 정립’ 등이 새 대북정책의 기조임을 확인하는 한편 북한의 최근 반발을 일종의 ‘성장통’으로 보겠다는 점도 은연중 분명히 했다는 해석이다.

이 대통령이 “6자회담을 통해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협력해 나갈 것”이라면서 “우리는 북한 주민의 생활에도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 대목에서는 북을 향해 양면적 시그널을 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즉 남북경협 발전과 대규모 대북지원의 전제 조건 차원에서 ‘비핵화 우선 해결’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북한 주민을 향한 인도적 지원의 가능성은 열어두겠다는 메시지였다는 분석이다.

그리고 이 대통령이 “북핵 문제의 해결과 북한주민의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면, 정부는 언제든지 대화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언급한 대목은 북측이 인도적 지원 문제와 관련한 대화 제의를 해올 경우 응하겠다는 뜻을 거듭 시사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다만 이 대통령이 “이제는 북한도 진정성을 갖고 대화에 나서는 한편, 새로운 국제 질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변화해야 한다”고 말한 대목을 두고 많은 전문가들은 ‘의연한 대응기조를 유지하며 남북 대화의 적기(適期)가 오길 기다리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해석했다.

전체적으로 오는 18~19일 한.미 정상회담을 통한 대북정책 조율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 가겠다는 세부 전술은 밝히지 않은 채 의도적으로 모호한 톤을 유지했다는 해석도 가능해 보이지만 일단 비핵화와 북한의 변화를 촉구하는 ‘원칙’을 재확인했다는게 대체적인 평가인 것이다.

동국대 고유환 교수는 “아직은 정부가 대북정책의 각론은 모호하게 가져가면서 원칙적인 입장 이상을 내 놓지 않으려는 것 같다”면서 “지금 우리가 북한을 향해 먼저 적극성을 보이면 대화를 구걸하는 것 처럼 보일 수 있다는 우려를 한 듯 하다”고 분석했다.

◇‘통미봉남’ 가능성 일축 = 이 대통령은 또 대미관계를 강화하고 남한은 따돌리는 이른 바 ‘통미봉남(通美封南)’을 북한이 채택하더라도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우선 이 대통령은 “통미봉남 전략은..성공할 수 없다”면서 “새 정부는 미국과 전통적 동맹관계 뿐 아니라 대북 핵문제 전략도 함께 해나갈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대통령의 발언에는 북한이 통미봉남을 시도하더라도 철저한 한.미 공조를 통해 봉쇄할 수 있다는 믿음이 내포돼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과거 ‘핵을 가진 자와 악수할 수 없다’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강경 기조로 인해 남북대화는 경색되고 북.미는 제네바합의(1994)를 통해 제1차 북핵위기를 봉합하면서 정부는 비핵화 논의에 개입하지 못한 채 경수로 건설비용만 떠안아야 했던 점은 우리 외교가의 ‘트라우마’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북핵 문제를 다자틀에서 해결하자는 기조하에 6자회담 구성을 주도한 것이 미국이며 한국의 새 정부는 핵문제 해결을 남북관계 발전의 전제로까지 내세우고 있는 만큼 양 측이 대북정책에 관한 한 철저히 공조할 것이기에 과거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 우리 정부 당국의 인식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우리 정부의 ‘비핵.개방 3000’ 구상이 최종 핵폐기 단계에서 대북 보상을 위한 부담공유 부분에서 적지않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미국이 남측과 철저한 공조를 유지할 수 밖에 없으리라는 분석도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마저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에 찬성토록 만든 2006년 북한 핵실험은 북핵 문제를 이미 국제문제로 만들어 놓았기에 북한의 통미봉남 시도는 더 이상 통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게 정부 당국의 인식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 가운데 “남북관계는 다른 나라와 북한과의 관계라기보다 특별한 관계임을 인정치 않을 수 없다”고 한 대목은 남북관계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출 것임을 강조한 이 대통령의 그간 발언 기조에 비춰 의외였다는게 대체적 평가다.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남북문제도 배타적 민족주의로는 해결할 수 없으며 민족 내부의 문제인 동시에 국제적 문제로 봐야 한다”고 언급한 것과 비교할 때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대통령의 이 발언이 앞으로 남북대화가 전개될 때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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