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대북발언, 아직은 원칙론에 `무게’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음을 강조하면서도 대화의 조건은 변함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한 정부 관계자는 17일 `유연성’과 `원칙’ 사이를 오가는 이명박 대통령의 최근 대북 발언들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우선 이 대통령은 19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관계와 관련, 이전보다 다소 유연해진 듯한 발언을 잇달아 했다.

이 대통령은 13일 기자회견 질의응답에서 “기본적으로 남북관계는 다른 나라와 북한과의 관계라기 보다 남북간 특별한 관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또 현지시간 15일 뉴욕에서 가진 동포와의 대화에서도 “남북관계는 특수한 관계”라며 “다른 나라와 북한과의 관계와는 다르게 우리는 동포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재차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앞서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남북문제도 배타적 민족주의로는 해결할 수 없으며 민족 내부의 문제인 동시에 국제적 문제로 봐야 한다”며 북한이 강조하는 `우리 민족끼리 정신’을 경계한 바 있다. 이때도 “민족 내부의 문제인 동시에..”라는 말을 했지만 무게 중심은 `국제적 문제’쪽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였다.

또한 이 대통령은 최근 별다른 조건이나 요구사항을 달지 않은 채 대북 인도적 지원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는 지난 13일 “우리는 북한 주민의 생활에도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언급한 뒤 “북핵 문제의 해결과 북한주민의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면 정부는 언제든지 대화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뉴욕에서는 “북한에 대해 인도주의적으로 도움을 주는데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고 보다 직설적으로 말했다.

인도적 지원은 핵문제와 연계하지 않지만 북한도 다른 인도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지만 최근 대통령의 발언은 지원 의사를 밝히는 쪽에 치중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이 같은 발언을 하면서도 동시에 남북관계에서 북한의 태도 수정을 요구하는 `원칙론’을 잊지 않았다.

13일 “북한도 진정성을 갖고 대화에 나서는 한편, 새로운 국제질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고 15일에는 “과거와 달리 위협적인 발언 때문에 북한을 도와주고 협상하는 것은 앞으로 없다”고 못박은 것이다.

최근 대통령의 `남북관계의 특수성’ 언급과 인도적 지원 발언에 대해 정부 안팎에서는 총선이 끝나면서 대북정책에 운신의 폭이 넓어진 만큼 서서히 남북관계를 풀어가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비핵화 우선’ 및 비정상적 관행의 정상화 등 정책의 원칙은 유지하면서도 접근 방식은 유연하게 가져 가려는 의지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작년 북핵 10.3 합의 이후 정체기를 보낸 비핵화 프로세스가 최근 북.미 싱가포르 회동을 계기로 진전 조짐을 보이면서 한.미, 남북, 북.미 관계의 병행 발전이라는 목표를 위해서라도 남북관계를 관리해야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최근 발언을 지켜본 전문가들은 대체로 남북관계의 관행을 바로 잡겠다는 대통령의 의지와 그 의지가 반영된 남북대화의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보고 있다.

원칙이 워낙 선명한 까닭에 `남북관계의 특수성’ 발언 등은 별로 부각되지 않는 양상이라는 얘기다. 또 대통령의 발언에는 북한 주민과 당국을 분리해 접근하려는 의지가 보인다는 분석도 나온다.

결국 우리 국민은 물론 북한 또한 이 대통령의 `유연해진’ 발언들 보다는 함께 나오는 `원칙론’에 눈길이 더 쏠릴 가능성이 높다는 게 상당수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북한 전문가는 “현 정부의 남북관계 운영 구상을 장사에 비유하면 종전에는 시장에 물건을 내놓을 생각이 별로 없었던 것 같고 이제는 물건을 내 놓았지만 가격을 놓고 흥정할 생각은 없는 상태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