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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문건에는 이들이 납북자가 아니라 의거입북자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이 스스로 한국 국민을 납치했다고 표기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들의 명단을 따로 분류해 관리해온 것은 자신들의 납치사실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이번 명단 확보를 계기로 억류되어 있는 국민들을 구출하기 위한 활동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10년 전과 비교해 납북자 문제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은 겉으로 보기엔 조금 나아진 것처럼 보인다. 납북피해자 구제법안이 마련됐고, 통일부 산하에 납북자 전담 부서 설치가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 납북된 사람들을 구출해오기 위한 노력은 오로지 가족들의 몫이다.
당국에선 현실 가능성과 남북관계 관리를 이유로 북한 당국에게 당당하게 납북자 송환을 거론하지 않고 있다. 납북자 송환을 강력히 요구할 경우 북측이 회담 자체의 판을 깰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경지역을 통해 주민들을 구출하는 활동을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번에 공개된 납북자들의 명단 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어떤 사람은 북한 당국의 회유 공작을 거부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있고, 정치범수용소에서 고된 노역 속에 죽어간 사람도 있다. 반면에 목숨을 부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북한 당국의 회유에 따르는 척 하는 사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가 여전히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사실이다.
과연 이들이 절망의 땅에서 무엇을 가장 많이 생각했을까? 바로 가족과 조국인 대한민국이다. 헤어진 가족들이 가장 많이 보고 싶었을 것이고 조국인 대한민국이 하루라도 빨리 자신을 구해주길 빌고 또 빌었을 것이다. 그렇게 빌면서 숱한 사람들이 이미 세상을 떠났고,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복지 논쟁이 한창이다. 대체적인 방향은 국민의 기본 생활은 국가에서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러나 국가의 존재 이유이자 국민의 가장 중요한 권리인 생명권도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논쟁은 우습게만 들린다.
이번 음력설을 맞아 일본의 마쓰바라 진 납치문제 담당상은 대북 라디오방송인 시오카제를 통해 북한 땅에 있는 일본인 납치피해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모든 수단을 통해 한시라도 빨리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전력을 기울일 테니 희망을 잃지 말고 반드시 살아달라는 내용이다. 나는 이 방송을 듣고 희망을 가졌을 일본인 납치 피해자보다는 우리 조국은 뭐하냐며 절망에 빠졌을 대한민국 납북 국민들의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류우익 통일부 장관이 우리의 대북방송에 출연해 대한민국이 반드시 당신들을 구출해내겠다고, 반드시 살아만 있어달라고 호소하는 건 너무 지나친 욕심일까? 북한 당국에 억류되어 있는 국민들을 구출할 각오조차 못하는 정부라면 국민들에게도 많은 것을 바라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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