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외교 “ARF ‘외교실패’ 수용못해”…“北이 오만한 행동”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의장성명에 ‘금강산 피살사건’과 ‘10·4정상선언’ 관련 문구가 동시에 삭제된 데 우리 정부의 외교력 부재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것에 대해 정부와 여당이 뒤늦게 수습에 나서고 있다.

유명환 장관은 28일 오전 여의도 한나라당에서 열린 최근 외교 현안과 관련한 최고위원회의 보고 직전 기자들과 만나 “완전히 실패한 것(외교)이라는 지적을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며 “다자간의 협상 방식에 대해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유 장관은 “의장성명은 회의의 종합된 의견을 담기도 하지만, 관련국의 의견을 참작한다”며 “북한이 강력히 반발했고, 우리도 10·4정상선언이 회의에서 논의되지 않는 만큼 이를 반영해 줄 것을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유 장관은 이날 보고에서 “ARF 참석에 앞서 금강산 문제와 관련한 발언을 할 지 성명에 포함시킬 지에 관한 정부내 논의가 있었고, ARF에서 남북이 대결하는 양상을 피하기 위해 발언을 ‘로 키(low-key)’로 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고 윤상현 대변인이 전했다.

유 장관은 “또한 ARF 의장성명에 금강산 문제를 포함시킬 지에 대해서는 사전 교섭은 하지 않되, 상황을 봐가면서 무리가 없을 경우 추진키로 했다”며 “북한과 충돌을 빚으면서까지 굳이 이를 의장성명에 포함시키는 것은 당초 목표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는 “‘10·4 정상선언에 기초한 남북대화’ 라는 표현은 북측에 의해 향후 선전자료로 활용되고 국제사회에서도 원용될 가능성을 감안, 금강산 문제와 함께 존치시키는 것 보다 모두 삭제하는 게 옳다는 결정에 도달, 동시 삭제를 수용키로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나라당 윤상현 대변인도 27일 논평을 통해 “관광객 피살사건은 인류가 함께 공분하는 인권유린, 파괴의 사건이고 10·4선언은 남북한 간 정치 문제”라며 “그럼에도 북한이 금강산 사건의 삭제를 요구한 것은 국제사회로부터 지탄받아 마땅한 오만한 행동”이라고 북측의 태도를 비판했다.

윤 대변인은 “이번 일은 국제사회가 북한의 생떼쓰기에 또 한번 당한 꼴”이라며 “한번만 더 생각하면 능히 이해할 일을 또 하나의 정략적 시빗거리로 삼는 야당의 태도도 점잖지 못하고 경박한 처신”이라고 주장했다.

정옥임 제2정조 부위원장도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간담회를 갖고 “금강산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관심을 보이면서 자연스럽게 성명 초안에 담겨 있었고, 북한은 10·4선언을 넣겠다는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참여한 듯 하다”며 “사실은 성명 초안에 훨씬 강력한 워딩으로 들어갔다가 톤 다운돼서 실렸다”고 설명했다.

또한 “한국 정부는 10·4선언에 관해 모든 것을 삭제하라고 요청한 적이 없고 단지 ‘10·4선언에 기초하여’를 빼달라고 한 것”이라며 “아무리 구속력 없는 성명이라지만 10·4선언에만 기초한다는 것은 정부에 상당히 부담되지 않겠느냐는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북한의 치밀한 외교전을 파악하지 못한 채 10·4선언이 성명에 포함되는 것을 막지 못한 우리 외교력에 미숙한 대응에 대한 비판 여론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금강산 피살’ 사태 해결을 위해 ‘국제 공조’를 내걸었던 정부가 북한측의 전략을 파악하지 못했을뿐 아니라 현지 외교가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 실제로 ARF 의장국인 싱가포르는 한국의 새 정부가 10·4선언에 갖고 있는 원칙을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의장성명을 뒤늦게 고쳐 외교무대에서 결례를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별다른 소득도 남기지 못했다는 점에서 ‘외교 라인’의 총체적 부실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