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史교과서 여전히 수정주의적 관점서 못 벗어나

6.25 전쟁 64주년을 맞아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들에 나타난 6.25 전쟁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고등학교 8종 한국사 교과서와 중학교 9종 역사2 교과서이다. 내용을 보면서 한국의 역사 교과서가 여전히 좌파 수정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6.25 전쟁을 규정하는 시각으로는 크게 전통주의와 수정주의 그리고 ‘내인론’과 ‘외인론’이 있다. 전통주의는 ‘냉전의 기원’을 소련의 팽창정책에서 찾는 반면 수정주의는 오히려 미국의 공격적 행동에 소련이 방어적-수세적 대응을 하였다고 주장한다. 6.25 전쟁과 관련해서도 전통주의는 소련의 책임을 강조하고 수정주의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야욕’이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초기 전통주의와 수정주의는 다같이 외인론적 관점을 견지하였다. 그러나 추후 내인론이 대두되면서 신전통주의는 소련의 스탈린과 김일성에 전쟁의 책임을 두는 반면 신수정주의는 미국에 책임을 두고 6.25 전쟁이 ‘민족해방전쟁’이라는 관점으로까지 나아갔다. 특히 브루스 커밍스는 내인론에 결정적 비중을 두면서 ‘한국 전쟁’은 내란과 혁명으로 시작된 내전 혹은 혁명전이라거나 남침유도설을 주장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6.25 전쟁과 관련 대체로 좌파 수정주의적 관점은 남침유도설이나 내전확전설 등으로 나타났다. 중고등학교 교과서들은 ‘애치슨 라인’에 대해 소개함으로서 미국이 김일성의 남침을 유도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서술을 하거나 혹은 옹진반도 등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 간에 교전이 많았음을 소개하면서 내전이 6.25로 확대된 것인양 설명하고 있다. 6.25 전쟁은 소련의 한반도 적화 전략에 따른 김일성의 불법 남침 전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러나 교과서들은 이 같은 관점을 분명히 드러내기보다 여전히 수정주의적 관점에 치우친 기술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수정주의적 관점은 가령 해방전후사를 인식하는 데 있어 “계급적 민족적 견지에서 새로운 사회를 추구하려 했던 한국 민중들을 한 축으로 하고, 새로운 세계질서 재편과정에서 한반도에서 자신의 제국주의적 이해를 관철시키려 했던 미국의 이해를 또 다른 한 축으로 하는 대립이었다”(정해구, ‘해방8년사의 총제적 인식’, ‘해방전후사의 인식4’, 한길사, 1989.)는 식의 논의를 통해 접할 수 있다.


6.25 전쟁의 국제전 성격과 관련 교학사 교과서는 “소련의 한반도 적화 전략”을 서두에서 기술함으로써 소련의 책임과 역할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반면 금성 교과서는 “미군을 주축으로 하여 16개국 군대로 구성된 유엔군이 참전함으로써 6.25 전쟁은 국제전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p.378)고 기술하고 있다. 천재교육 역시 “… 유엔군의 참전으로 전쟁은 국제전으로 확대되었으며, …”(p.313) 라고 기술하고 있다. 즉 소련의 적화 전략은 제외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의 참전으로 비로소 국제전 성격을 띠었다는 것이며 이는 냉전의 기원을 미국의 야욕에서 찾는 수정주의적 관점과 닿아 있다. 6.25 전쟁에서 소련의 국제전 성격은 누락하고 있는 것이다.


구태여 6.25 전쟁의 국제전 성격을 강조하고자 한다면 소련의 한반도 적화 전략을 출발점으로 하여 설명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교학사 교과서만이 소련의 적화 전략을 언급하고 있고 리베르스쿨이 “소련의 외교문서”를 소개하고 있을 뿐 다른 모든 교과서들이 이를 제외하거나 제대로 다루지 않고 있다. 교학사만이 “소련도 공군 병력을 위주로 침략 전쟁을 지원하였다”라고 소련이 처음부터 참전하였음을 나타내고 있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 기준에서 제시한대로 “불법 남침”임을 직접 표현하고 있는 교과서도 리베르스쿨 뿐이다. 다만 두산동아는 “국제연합은 북한의 불법적인 남침을 침략행위로 규정화고 한국에 군사 지원을 결의하였다”(p.279)고 기술하고 있다.     


고등학교 한국사 모든 교과서들이 ‘애치슨 라인’을 취급하고 있으며 한결같이 본문 뿐 아니라 별도의 꼭지를 두어 설명하고 있다. 그만큼 비중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애치슨 라인은 남침유도설의 주요 근거로 취급되는 사항이다. 애치슨 라인을 소개할 수는 있으나 어떻게 위치시키느냐에 따라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 가령 교학사 교과서는 “김일성은 남침 계획이 수립되자 1950년 6월 25일 전면적으로 남한을 침공하였다. 미군이 철수하였고 애치슨 라인 선언으로 인하여 전격적으로 남한을 침략하기 좋은 때라고 판단하였다”(p.312) 라고 기술하고 있는데, 금성 교과서는 “… 애치슨은 성명에서 한국과 타이완을 미국의 극동방위선, 이른바 ‘애치슨 라인’에서 제외한다고 밝혀 큰 혼선을 불러일으켰다…북한 지도부는 전쟁을 일으키면 큰 어려움 없이 승리할 것으로 판단하였다. 애치슨 선언은 이와 같은 북한 지도부의 확신에 큰 영향을 미쳤다”(p.377)고 기술하고 있다. 리베르스쿨은 “이러한 애치슨 선언은 미국이 한반도의 전쟁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p.343)라고 기술하고 있다. 


내전확전설을 뒷받침 하는 근거로서 금성 교과서는 “38도선 일대에서는 남북한 사이에 수백 회에 달하는 크고 작은 교전이 일어나기도 하였다”(p.377)고 기술하고 있다. 미래엔은 “남북은 북진 통일과 적화 통일을 내세우며 옹진 반도를 비롯한 38도선 부근에서 잦은 무력 충돌을 빚고 있었다”(p.316)고 쓰고 있다. 두산동아는 “1949년 1월부터 10월까지 38도선을 경계로 벌어진 교전만 500회를 넘겼다. 옹진 지역에서만 이미 전사자가 6000여명을 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북한은 서로 통일을 주장하였다”(p.278)고 기술하고 있다. 이외에도 비상교육, 지학사, 천재교육 등이 대동소이하다.


중학교 역사2 교과서 9종은 예외없이 비슷한 형태의 기술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6.25 전쟁의 발발을 기술함에 있어 당시 냉전과 남북 양측의 통일 요구 분위기, 휴전선 상에서의 남북 교전과 ‘애치슨 라인’, 미국 및 유엔 참전으로 인한 국제전 성격을 부각하는 수정주의적 관점이 기본이 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모든 교과서가 비슷한 방식의 서술을 하고 있다. 가령 지학사 교과서는 “남한과 북한에 이념과 체제가 다른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반도에는 전쟁의 위험성이 높아졌다. 남북한 정부는 각기 북진 통일과 적화 통일을 내세웠고, 38도선 부근에서는 자주 무력 충돌이 일어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일성 등 북한의 지도부는 한시바삐 무력을 써서라도 통일하지 않으면 앞으로 통일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 판단하고 소련의 지원을 받아 군사력을 키웠다”고 기술했다.   


6.25 전쟁의 발발 및 책임에 대해 김일성이 주도하고 소련이 승인하며 중국이 지원한 원인과 책임을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6.25 전쟁을 ‘내전’의 연장에서 이해하며, 소련의 의도를 제외하거나 마치 미국이 빌미를 제공한 것처럼 서술함으로써 6.25 전쟁의 원인과 발발, 전개를 오도하는 인식을 준다면 이는 문제가 심각하다. 2013년 한국에 왔던 브루스커밍스는 “누가 먼저 사격하였는지 찾지 말라”는 말을 반복했다. “1948년 5월부터 1950년 6월까지 옹진반도나 개성의 상황에 6.25 전쟁의 기원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소련의 문서가 공개되고 중국의 문서도 공개되고 있어 6.25 전쟁의 모습은 자료를 통해 뚜렷해졌다. 


전쟁의 영향에 대해서도 고등학교 한국사 금성 교과서는, 이승만 정부에 대해서는 “반공주의를 내세워 정치적 반대 세력을 억압하거나 정권의 부패와 무능함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탄압하였다”고 쓰면서 북한에 대해서 “전쟁 책임을 물어 박헌영 등을 간첩 혐의로 체포”, “김일성 유일 지배 체제가 자리 잡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정도의 기술을 하여 비교가 된다. 


6.25전쟁을 올바로 기술함으로써 우리는 이 나라와 자유민주주의의를 지키기 위해 산화하신 영령들에게 그나마 최소한의 예를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어느 일간지의 여론조사에서는 대학생 10명 중 4명이 6.25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 모른다는 사실이 있었다. 6.25 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조차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런 현실이 과연 끔찍한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고 분단의 현실에 놓인 국민의 모습이라면 이는 참으로 문제가 크지 않은가. 그러나 멀리 찾을 것도 없이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역사 교과서에서부터 우리는 반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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