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한미공조 절실 파병연장”…대선정국 ‘뇌관’ 떠올라

노무현 대통령은 23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이라크에 파병된 자이툰 부대의 임무 종결 시기와 관련, “지난해 약속한 완전 철군의 시한을 내년 말까지 한번 더 연장해 달라는 안을 국회에 제출하려 한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TV로 생중계된 담화를 통해 “이번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대통령으로서 저 자신의 고민도 많았다”며 “철군 시한 연장에 대한 반대 여론이 더 높다는 것을 알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국익에 부합하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자이툰 부대의 병력을 올해 말까지 절반 수준으로 감축하고, 나머지 병력의 철군 시기를 내년 12월까지로 하는 단계적 철군안을 국회에 제출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23일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현재 이라크에는 한국을 비롯해 27개국 17만8천여명이 주둔하고 있다. 이중 미국이 16만5천여명으로 가장 많고, 영국 4천900명, 그루지아 1천900명, 한국 1천200여명, 호주 900명, 폴란드 800여명 순이다.

노 대통령은 “2003년 자이툰 부대를 파병할 당시 여러 가지 고려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었다”며 “북핵문제가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비화될 수 있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한미공조의 유지가 긴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또한 “전시작전권 전환, 주한미군 재배치, 전략적 유연성 문제 등 한미관계를 재조정하는 데 있어서도 긴밀한 한미공조가 필요했다”며 “지난 4년 간 이들 문제가 진전된 과정을 돌이켜 보면, 이러한 선택은 현실에 부합한 적절한 것이었다”고 자평했다.

노 대통령은 “지금은 6자회담이 성공적 결실을 맺어가는 국면에 있다”며 “남북관계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고,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라며 “이 모두가 미국의 참여와 협력 없이는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려운 일들”이라며 한미 간 긴밀한 공조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자이툰 부대의 파병연장에 있어 노 대통령은 한미동맹의 중요성 뿐만 아니라 경제적 측면도 고려됐음을 밝혔다.

그는 “경제적 측면은 당초부터 파병의 목적이 아니었다”면서도 “지난해부터 우리 기업의 이라크 진출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역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지금 철수하면 그동안 우리 국군의 수고가 보람이 없는 결과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의 이 같은 자이툰 부대 파병 연장 방침과 관련, 대선을 얼마 앞둔 정치권에선 ‘파병연장 득실’ 논쟁이 일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선후보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정부의 자이툰 부대 파병 연장 방침에 대해 즉각적인 찬성 입장을 밝혔다.

이 후보는 이날 강재섭 대표 등 당 고위관계자들과의 회의에서 한나라당이 이라크 파병 연장 동의안에 찬성해줄 것을 당부했다고 나경원 대변인이 전했다.

나 대변인에 따르면, 이 후보는 “미국뿐 아니라 이라크 정부가 한국군 주둔을 원하고 있고, 자원외교 및 양국의 미래 경제협력이라는 국익에도 부합하고, 한국군 주둔 지역이 이라크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이라는 이유를 들며 파병 연장 찬성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와 당 지도부는 정부의 자이툰 부대 파병연장 요청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나서 향후 대선 정국에서 주요 쟁점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정 후보는 22일 저녁 선대위원장단 첫 회동을 갖고 손학규·이해찬·김근태·오충일 공동선대위원장단과 함께 5인 명의로 자이툰 부대 파병연장 반대 합의문을 채택했다.

이들은 합의문에서 “대통령과 정부가 한·미동맹 등을 고려해 자이툰 부대 파병 연장 동의안을 제출한 취지는 이해하지만, 지난해 국회가 파병 기한을 1년만 연장하기로 한 국민과의 약속은 존중해야 한다”면서 “자이툰 부대는 이라크로부터 철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당이 비록 여당은 아니지만 사실상 ‘정신적 여당’을 자임해왔고, 정 후보도 당 대선후보 확정 이후 청와대와의 관계 개선을 모색해왔던 점을 고려할 때 대선 정국에 적지않은 파문이 일 전망이다.

이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대선후보 선출 이후에도 20% 지지율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정 후보측이 전통적 범여권 지지층의 결집을 위해 승부수를 띄웠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범여권 지지층의 경우 이라크 파병 자체에 반대하는 여론이 높다는 것이 고려됐다는 것이다.

또한 정 후보의 경우 정책적 차이를 이유로 노 대통령과 자연스런 차별화를 꾀할 수 있고, 특히 이명박 후보가 파병 연장안에 ‘찬성’입장을 밝힌 만큼 자연스럽게 양자구도를 형성하면서 ‘평화개혁세력 대 수구보수세력’ 간의 대결로 전환시킬 수도 있다는 계산도 엿보인다.

이와 함께,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도 “파병 연장은 곧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것”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으며,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도 “국회는 3년여간 자이툰 부대 파병으로 국민께 혼선과 부담을 드린 점을 반성하고 파병연장 방침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반대하고 나섰다.

반면 민주당 이인제 후보는 23일 정 후보와 신당이 일부병력 파병연장, 바꿔 말하면 단계적 철군이라는 정부 입장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순전히 선거전술상의 ‘잔꾀’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이인제 후보는 “정부의 고심어린 결정을 존중하고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파병 연장에 찬성한다”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있어 미국의 도움이 필수불가결하다”고 밝혔다고 유종필 대변인이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