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선물에 北 골머리 앓는 속사정은?

김정일에게 선물을 설명하는 노 대통령

노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자리에서 김정일에게 ‘대장금’ ‘겨울연가’ ‘말아톤’ ‘황진이’ ‘취화선’ 등 여러 편의 남한 드라마와 영화를 선물했다. 그러나 회담이 종료된 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북 매체에서 선물 내용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김정일이 노 대통령에 준 송이 선물이 우리 언론에 크게 보도된 것과 대조적이다.

2000년 1차 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진돗개를 선물하자 회담 종료 다음날인 16일부터 북한 매체들은 “김정일 동지께 김대중 대통령이 남조선에서유명한 진돗개 한 쌍을 선물로 드렸다”고 바로 보도했던 것과도 비교되는 부분이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 조선신보를 비롯한 언론매체는 선물 전달과 관련해 10월 3, 4일 이틀 동안 선물을 주었다는 사실 보도만 반복해서 전했을 뿐 그 내용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이 선물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말 못할 사정이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북한 당국은 주민들에게 남한 드라마, 영화를 ‘황색 녹화물’ 이라며 시청과 유통을 절대 금지하고 있다. 북한 당국의 강연제강이나 주민지시 상당부분이 불법 녹화물을 보지 말라는 내용이다.

대북 인권단체인 좋은벗들(이사장 법륜)은 지난달 북한 소식지(제90호)를 통해 “평양을 비롯해 평성, 원산 등 지역에서 불법 CD관련 소유나 유통의 적발시 강력히 처벌한다는 내용의 포고가 내려졌다”고 전했다.

북한민주화위원회(위원장 황장엽)가 지난달 6일 공개한 북한 조선인민군출판사가 병사·사관용(부사관)으로 제작 배포한 ‘학습제강’(교육자료)에는 자본주의 사상 유입을 막아내기 위해 인민군을 사상적으로 교양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문건은 “적들의 방송과 이색적인 출판선전물, 녹음녹화물을 보거나 듣지 말아야 한다”면서 “적들은 소리방송 및 TV방송을 통해 잘 가공된 ‘소식’들과 모략적인 ‘자료’들로 비방중상과 악선전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탈북 대학생 심재천(28) 씨는 “북한 집권층은 자본주의 사상, 문화 침투를 막기 위해 주민들 속에서 생활총화, 강연회 등 사상교양을 나날이 강화 하고 있다” 면서 “2002년경에는 녹화테입이나 남한 드라마 CD를 돌려가며 보는지 체크하기 위해 수시로 대학생들의 가방을 수색했다” 말했다.

실지로 북한에서는 남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적발 된 사람들을 교화소(교도소)나 노동단련대에 보내고 심한 경우 정치범수용소에 수감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이후로 김정일은 당, 보위부, 보안성 등에 ‘황색바람’ (북한에서 자본주의 문화침투를 일컫는 말)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모기장’을 든든히 치라고 지시를 수차례 내렸다.

하지만 당국의 강력한 통제와 처벌에도 불구하고 북한 주민들의 남한 드라마에 대한 선호는 식지 않고 있다.

북한 소식통에 의하면 중국에서 불법 복제하여 북한으로 밀반입 시키는 남한 드라마, 영화 CD의 개수는 매해 수만~ 수십만 장을 뛰어 넘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 소위 남한풍으로 불리는 한류가 거세다는 소식은 우리 정부 당국자들 입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북-중 국경을 넘나들며 남한 드라마CD 밀매로 많은 돈을 벌었다는 한 탈북자는 자신이 북한 장사꾼들에게 넘겨준 CD만 해도 몇 만장은 될 것이라고 했다. “지금 농촌 사람들도 한국 드라마를 못 본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에서는 이미 노 대통령이 선물한 우리 영화 상당수가 퍼져있다. 노 대통령의 선물이 한 발 늦었다는 탈북자들의 지적까지 나온다.

북한 매체들이 노 대통령의 선물 내용을 공개하지 못하는 말못할 사정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주민들에게 절대 보지 말라고 금하고 있는 남한 영화를 ‘잘 보시라’는 말과 함께 선물로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할 경우 북한 당국만 망신을 당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 탈북자는 “노 대통령이 황색바람 차단을 위해 골머리를 앓는 김정일에게 ‘황색 정품(正品)’을 선물한 셈”이라며 “북은 선물을 받고도 속이 뒤집히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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