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개헌반대 한나라 이기적이고 정략적”

노무현 대통령은 11일 “개헌 논의 과정에서 당적 문제는 야당이 개헌에 전제조건으로 요구한다면 고려할 수 있다”면서도 “개헌이 부결돼도 임기 단축은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를 통해 언론과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는 임기단축 가능성에 대해 “개헌 부결을 불신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노 대통령은 “개헌안에 제 신임을 걸었을 때 불신임이지, 저는 여기에 제 신임을 걸지 않겠다”면서 “대통령의 책무로서 이 권한(개헌 발의권)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신임을 걸 이유는 없다. 남은 국정을 착실하게 마무리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옛날 개헌 역사가 당시 집권자, 독재자들의 집권연장을 위해 이뤄졌기 때문에 지금도 개헌하면 현 집권자의 정치적 이해관계로 보는 것 같다”며 그러나 “다음 정부에서의 개헌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제안하는 것이지, 저에게 관련된 게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일단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를 맞추는 개헌을 해놔야 정치적으로 안정 된다”며 “20년간 헌법 논의를 하기 위한 1단계 헌법 개정 작업이 이번에 제안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선 주자들도 비난

지난해 2월 출입기자 산행에서의 ‘개헌문제는 대통령 소관을 넘어섰다’고 언급한 것과 지금의 입장이 바뀐 이유를 묻자 노 대통령은 “지난 2월에는 개헌을 제안해도 되기 어렵다 판단하고 있었다”며 “되기 어려운 일을 자꾸 벌리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라 생각했다”고 답했다.

이어 “실제 당시에 개헌할 생각이 있다고 이야기했더라면 지난 한 해 개헌논의가 무성했을 것이다. 그러면 국정 운영에 지장이 있었을 것”이라면서 “당시 생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대답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날 노 대통령은 작심한 듯 한나라당과 같은 당 대선 주자들을 향해 독설에 가까울 정도로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노 대통령은 “개헌이 되면 다음 대통령은 안정된 입지를 갖고 대통령을 할 수 있고, 다음 대통령이 개헌문제, 임기를 걸어놓고 개헌문제에 매달리지는 않아도 된다”면서 “왜 굳이 개헌문제를 안고 가려느냐”고 힐문했다.

노 대통령은 또 “한나라당이 여론의 지지에 앞서간다 해서 (개헌을)못하겠다 하는 것 아니냐. 앞서가는데 왜 자꾸만 (대통령이) 복잡한 것을 꺼내려 하느냐는 것”이라며 “다음 대선과 관계가 없는데, 혹시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에 (개헌을) 못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너무 이기적이고 정략적”이라고 날을 세웠다.

노 대통령은 조선∙중앙∙동아일보를 향해 “2004년과 2005년에 사설과 기자칼럼으로 개헌이 필요하다고 썼다. 어떤 신문은 2006년 말이나 2007년 초가 적기라고 했다”며 “지금에 와선 모두 안 된다고 한다. 이것이야 말로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냐”고 따져 특정 언론에 대한 반감을 그대로 드러냈다.

선거구제 개편과 관련해선 “개헌과 선거구제 모두 한나라당이 반대하지만, 선거구제는 일정 지역에서의 독점권을 가지고 있는 정당에 결정적 이익이 걸려있다”며 “다른 큰 교환 조건이 없는 한 설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개헌카드를 들고 나온 것이 정략적이라는 지적에 대해 “반대의 이유가 분명치 않다. 무슨 정략이냐고 물으면 설명이 안 된다”며 “그렇기 때문에 대화가 가능하다고 보고, 개헌을 반대하는 정치 세력이 명분을 잃어 국민적 지지를 통해서 입장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한나라 “국민 70% 반대… 개헌추진이 반(反)민주”

노 대통령의 기자 간담회 이후 여야의 반응은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열린우리당은 “개헌이 정략적이 않다는 것을 증명한 회견”이었다고 평가한 반면, 한나라당, 민주당, 민주노동당은 모두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상호 열린당 대변인은 “대통령의 순수성이 재확인 된 회견”이라며 “개헌을 추진하기 위해 임기단축 등의 카드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확언한 것은 그만큼 개헌이 정략적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왜 지금 개헌을 해야 하는지를 충분히 국민에게 납득시킨 회견이었다”면서 “당으로서는 개헌추진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야당도 적극 동참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개헌을 받아들인다면 탈당할 수도 있다고 말한 것 역시 정략적이고, 지금 당장 탈당을 한다고 해도 순수하게 볼 수 없다”며 “국민의 70%가 반대하는 개헌을 계속 추진하는 노 대통령이 오히려 반(反)민주적”이라며 개헌 논의 중단을 촉구했다.

나 대변인은 특히 “노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이 편안하게 운영하도록 지금 개헌을 추진한다고 했지만 나중에는 또, 개헌 논의가 국정에 영향을 안 준다고 말하고 있다”면서 “대통령 스스로 자기 모순에 빠져 있다”고 꼬집었다.

이상열 민주당 대변인은 “개헌의 전제 조건으로 탈당을 요구하면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지만, 이 말은 곧 현재 상황으로는 탈당하지 않겠다는 뜻”이라며 “개헌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보여주지 않아 실망스럽다”고 밝혔고, 박용진 민주노동당 대변인도 “자기 주장만 앞세운 실망스러운 회견”이라고 평가 절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