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은 北 ‘아동학대’도 ‘포용’하겠다는 것인가

▲평양 시내에서 체조 연습을 하고 있는 북한 어린이들 모습 ⓒ연합

노무현 대통령이 결국, 정상회담 기간에 북한의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기로 결정했다.

청와대가 밝힌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초청 측인 북측의 입장을 존중하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 대결적 관점에서 벗어나 상호 체제 인정∙존중 차원에서 접근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얼핏 듣기에는 그럴듯하다. 그러나 꼼꼼히 따져보면, 관람을 반대하는 국민이 받아들일 수 없는 논리다.

첫째, 국민의 상식을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해석한 논리다. 초청 측의 입장을 존중하자는 ‘원칙’ 자체야 무엇이 문제겠는가? 그러나 초청자가 동포 수백만을 굶겨 죽인 전력에다 여전히 그들의 자유와 권리를 허락하지 않는 독재자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단순한 주객(主客) 관념으로 상대방의 호의를 간주하지 말고 그 내면을 꼼꼼이 살펴야 한다는 말이다.

아리랑은 그런 독재자가 자국의 아이들을 학대해가며 만든 공연이다. 더구나 공연의 내용이 전쟁으로 미국을 몰아내고 선군정치 따라 한반도 전체의 통일을 이루자는 내용이 주요 골격이다.

어떻게 어린 아이들 수 만명의 고사리 손을 1년 동안 닥달해 만든 공연을 박수치며 볼 수 있단 말인가. 초청자 측의 입장을 존중하자는 일반적 원칙이 적용될 수 있는 한계를 넘는다는 것이 우리가 가진 상식이다.

둘째, 민주주의와 인본주의에 반하는 위험한 사고방식에 기초한 논리다. ‘과거의 대결적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에는 적극 동의한다.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북한 사회가 위기에 직면하면서 남북한의 체제 대결 시대는 끝났다. 문제는 대결적 관점에서 벗어나 새로 얻어야 할 관점이, 왜 하필 수령군사독재체제를 인정하고 인권유린을 방조하는 관점이냐는 것이다.

과거의 체제대결 관점에서 아리랑 공연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다수 국민이 대통령의 ‘아동학대’, ‘선군전쟁’ 공연관람을 반대하는 사상적 기초는 인간존중정신과 민주주의다.

‘민주개혁’의 간판을 쓴 현 정부가 국민의 인본주의와 민주주의 의식을 시대착오적인 ‘대결적 관점’이라고 싸잡아 매도하고, 수령군사독재체제를 인정하고 나아가 존중해야 한다는 어설픈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이율배반이며 국민이 받아들일 수 없는 논리다.

셋째, 잘못된 현실 진단에서 비롯된 논리다. 청와대는 남북관계의 본질을 ‘분단구조에서 평화의 길을 열어가는 문제’라고 보고 있다. 남북 관계를 개선해 평화의 길을 열자는 것이 대통령과 정부의 ‘한반도 전략’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반도 문제의 전부가 아니다. 김정일과 평화의 러브샷을 마신다고 해서 평화가 열리는 것도 아니다.

한반도에는 김정일 정권과 2천3백만 북한 주민들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적대적 모순도 존재한다. 북한 주민과 김정일 정권의 모순은 남북 정권 사이의 관계 개선 문제 보다 선차적일뿐더러 한반도 미래를 규정하는 폭발력이 훨씬 크다.

오늘날 한반도 문제의 핵심은 남북한 관계문제가 아니라 북한 자체의 문제다. 따라서 현단계 한반도의 가장 큰 숙제는 김정일 군사독재정권을 끝내고, 북한을 민주화하는 것이다.

독재정권은 본성적으로 주민의 권리와 이익을 제한해야 생존할 수 있다. 독재정권은 주민과의 이해관계가 배치되기 때문에 항상 갈등이 존재한다. 아리랑 공연도 체제선전을 위해 주민들의 피와 땀을 갈취하는 노예공연에 불과하기 때문에 주민들의 원성의 대상이 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독재자가 만든 아동학대 공연을 관람하는 행위를 ‘포용’이나 ‘전략적 관점’이니 하는 말로 미화 시켜서는 안된다. 대통령의 관람 결정은 민주화 운동경력을 가진 인권변호사 출신이라는 대통령의 경력에도 하등 어울리지 않는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인권을 유린하고 선군을 찬양하는 공연에는 참가할 수 없다는 것이 민주국가 대통령의 소신’이라는 말로 당당하게 관람 요청을 거절하라. 그것이 대한민국 인권 대통령의 의무이자 북한 주민에 대한 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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