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센 담배공장 당 비서가 우리공장 노린다”

▲ 순평완구공장 여성 노동자가 곰인형 제작에 쓰일 천을 재단하고 있다 ⓒ데일리NK

재단은 천의 결을 따라 재단하여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경험 부족으로 자주 천의 결이 다르게 나와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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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는 견본을 가지고 김명선 사장과 공장지배인에게 원리부터 가르쳐 가면서 시행착오가 없도록 노력한 보람으로 짧은 시간에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물인형에 눈의 위치가 가장 중요함에도 한쪽 눈은 제 자리에 잘 부치는데 나머지 한 쪽은 자리표시를 해줘도 왜 그렇게 잘 안 되는지 알 수 없었다.

곰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이미 사팔뜨기가 되어 필자를 쳐다보는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스운지 모른다. 지금도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난다. 일하는 여자 공원들에게 사시 눈을 한 곰 한 마리를 들고 공개적으로 보이면서 한바탕 웃게 하지만, 만든 사람은 부끄럽고 민망해서 고개를 들지 못한다. 움직이지는 않지만 살아 있는 듯한 모습이어야 하는데 그런 면이 미숙하다.

필자가 공장 안에 들어가면 여성 노동자들은 잔뜩 긴장되어 고개도 못 들고 눈을 한번 제대로 마주치질 않는다. 그래서 잘못된 바느질을 수정해 줄 때도 나는 그 사람의 손만 보고 말을 한다. 잘 한 것은 칭찬도 해 주고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은 심정인데 야속하다.

매월 1회 정기적으로 선적을 할 때마다 필자는 제품 따라 서울과 평양을 거의 매월 오갔다.
한번은 공장에 몇 가지 문제가 생겼다며 급히 평양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제품도 걱정 없이 잘 나오고 선적도 제때에 잘 되기 때문에 오랜만에 미국에서 쉬고 있는데 한숨이 나왔다.

통신이 안 되니 즉시 전화로 알아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겨우 일주일 머물다 다시 서울과 북경을 거쳐 6일 만에 평양에 도착했다. 다음날 공장에 가보니 재단일꾼의 실수로 천의 결을 잘못 재단을 했는데 이것을 미처 발견치 못하고 곰 천 마리를 만들었다는 거다. 곰의 크기는 30cm x 20cm이고 임가공 비용은 1,000달러다.

“노동자들 먹을 비타민 사달라”

곰 등 부분의 결이 다르니 색깔조차 다르다. 어쩔 수 없어 그 곰은 따로 뒀다가 나라행사 때 공장일꾼들에게 한 개씩 나누어주고 당 간부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하도록 조치했다. 대신 가공비용 송금할 때 1,000달러를 공제하고 원자재에 대한 손해 배상은 물지 않기로 합의 해줬다.

또 한가지는 요구사항이었다. 공장 실내에 먼지가 많아 일꾼들의 건강에 해로우니 비타민을 공급해 달라는 것이다. 그 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화가 났다. 일 할 때 마스크를 쓰고 일을 하라고 수 천개를 이미 제공해줬다. 그런데 왜 사용하지 않고 이제 딴 소리냐, 진공청소기는 죽 써먹을 거냐고 따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청소를 하라고 지시했지만 따르지 않았다. 이들은 기계(진공청소기)가 신기하고 아까워서 아끼느라 모셔두는 모양새다. 고장 나면 고칠 사람 없다고 아껴두면 어떡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람이 병원 안 가면 병 안 생기는 줄 아느냐, 누가 그런 문제를 제기했느냐? 사장이 그 비상한 생각을 했느냐”고 따져 물었다. 당 서기가 그런 말을 하더냐? 공장 일꾼들이 요구하더냐? 실수를 거듭하다가 이제 겨우 제품이 잘 나오고 있는데, 이런 정도의 먼지는 먹어도 안 죽는다고 몰아 부쳤다.

미국의 필자가 운영하는 봉제공장에서 일 하는 미국인과 맥시코인들이 300명이 넘는데도 마스크를 안 쓰고 비타민 안 먹어도 단 한 사람도 병원에 간 일이 없고 죽은 사람도 없다. 필자도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이런 환경에서 5년을 일했어도 보다시피 이렇게 건강하다. 영양제 비타민도 안 먹었다. 결국 야단만 하고 없던 일로 돌렸다.

그런데 또 한가지 문제는 실수로 손가락이 하나 잘려 나간 일꾼에 대한 보상 문제가 제기됐다. 이곳 노동자들은 보험에 들 수도 없다. 이럴 경우 국가에서는 어떻게 처리하느냐고 물었다. 대답이 없다. 그래서 처리 문제를 사장에게 일임을 했다.

봉제완구공장 노리는 힘센 담배공장 지배인

또 한 가지 문제는 공장을 옮겨야겠다는 것이다. 이유는 우리가 다른 곳에 새로운 공장을 건설한다고 하니, 현재의 이 공장부지에 새 건물을 건설하여 담배공장 기업소 측과 같이 사용하면 어떠냐고 제안해온 것이다. 그래서 당분간 마땅한 다른 건물로 이사를 가야겠다는 것이다.

필자는 물었다. “새로운 공장부지로 건설해서 나가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이 자리에 건설하여 같이 사용하는 것이 좋은가”라고. 그랬더니 하루 속히 공장을 건설해 옮기자고 한다. 그럼 왜 이런 요구가 나왔느냐고 물었다.

김명선 사장의 대답은 이렇다. “현재 담배공장의 당 서기장이 힘이 센 사람이다. 우리공장이 잘 되니까 자주 공장에 와서 구경을 하더니 새 공장을 지어 나가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 그냥 여기 빈 땅에 공장을 지어 하나씩 운영하자”고 제의를 하더라는 거다.

“제 생각에는 이 공장을 먹으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우리 사장의 판단은 이러다가 먹힐 것만 같은 예감이란다. “무슨 소리냐? 김경희 동지가 특별히 김명선 사장에게 이 일을 맡겼고, 그리고 사장이 나하고도 굳은 약속을 했지 않나?”고 되물었다.

김 사장은 공화국의 봉제완구공장과 어린이들을 위해 이 공장을 책임지고 성공시켜 은퇴할 때까지 끝까지 나와 함께 일하겠노라고 약속했다.

필자는 “만일에 당에서 그런 의견이라면 나는 공장을 문 닫겠다고 강력히 주장할 테니 걱정 말고 옮길 다른 공장을 알아보라. 그 대신 국가에서 공장건설에 요구되는 시멘트와 철재를 하루속히 받도록 해요”

새로운 공장 부지 정지작업과 토목공사를 하면서 제기된 문제는, 철근과 시멘트는 북한 측에서 책임지고, 내장공사와 통신 전기시설은 필자가 책임지기로 합의했다.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북측은 생산품을 남포까지 운반하는데 필요한 3톤짜리 트럭과 5톤짜리 트럭을 각각 1대씩 요구해 왔다.

삽으로 공장터 닦는 건설 노동자들

생산품 운반 이외에 공장 건설에 필요한 자재를 운반하는데 남의 회사트럭을 빌려 사용하니 사용료를 줘야 하고 그것도 항상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서 공사에 차질이 생긴다는 것이다. 나는 공장건설 진도를 봐가면서 계획을 세우기 위해 공사현장에 갔다. 토목공사를 삽으로 한창 진행 중인데 보기가 참 딱하다.

허허벌판에 땅만 확보해놓고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건물 건설은 자기네들이 하겠다고 했으면 건설에 필요한 제반 장비까지 책임지고 공사를 해야 하는데 형편이 그렇지 못하다. 자금사정만 해결된다면 건설 장비를 왕창 넣어 주고 싶은 심정이 간절하다.

최신장비 없이 건설작업은 잘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은 장비 하나라도 더 얻으려고 수작을 부린다. 또 돈이 해결된다손 치더라도 공사 진행사항을 점검해 가면서 다음의 자재나 설비를 가져가야지 미리 갖다 놓으면 그 장비가 다른 곳으로 새나간다.

지금은 어려우니 제품을 부지런히 만들어 실적을 좀 올려놓고 돈벌이가 제대로 될 때 트럭을 사도 늦지 않으니 불편 하드라도 참고 견디자.

차차 해결하자. 당장 필요한 것은 현재의 공장에서 옮겨야 한다면 내가 경공업 부부장 동지를 만나 의논해야 되겠으니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하여 만났다. 저녁식사를 같이 하면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문제점을 아느냐고 했더니 전혀 모르고 있다.

담배공장 내부에서 자기네들끼리 그런 욕심을 내고 있는 것 같다고 한다.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여러분들에게 약속한 것은 꼭 지키니까 잡음이 나지 않도록 부탁했다. 나는 작은 카메라 하나를 건네주며 건설 현장 진도사항을 사진으로 찍어 앨범으로 만들어라 부탁도 하고 새로 옮길 공장 환경과 그리고 공장 건설에 대한 협조도 간절히 부탁했다.

그동안 지나가는 말로 임가공료 좀 올려달라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중국과 비교할 때 오히려 값이 비싸 임금을 내려야 할 처지인데도 동족이라는 애정으로 중국보다 조금 높게 가격을 지불했던 것이다.

중국과 비교할 때 동일한 시설과 동일한 종류의 봉제완구를 주문하여 일을 시켜보면 중국은 1년 후 160명 기준으로 매월 평균 60만 달러 정도의 수출제품이 생산되면서도 매월 생산량이 올라가는데 반에, 평양에서는 1년 후 240명 기준으로 월 20만 달러 정도의 제품이 겨우 겨우 생산되었다.

똑 같은 조건에서 생산량의 차이가 이렇게 많이 나기 때문에 경제원칙으로 따진다면 이것은 사업이 아니고 기술자 양성소(?)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는 도저히 경쟁력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북한 땅에서는 최초로 생긴 단 하나의 봉제완구공장이고 국가의 관심사라 나는 최선을 다 하는데 상대 측에서는 약속대로 시기를 맞추어 협조를 만족스럽게 해 주지를 않아 모든 것들이 불편했다.(계속)

김찬구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필자약력> -경남 진주사범학교 졸업 -국립 부산수산대학교 졸업, -LA 동국로얄 한의과대학졸업, 미국침구한의사, 중국 국제침구의사. 원양어선 선장 -1976년 미국 이민, 재미교포 선장 1호 -(주) 엘칸토 북한담당 고문 -평양 순평완구회사 회장-평양 광명성 농산물식품회사 회장 -(사) 민간남북경협교류협의회 정책분과위원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경남대 북한대학원 졸업-북한학 석사. -세계화랑검도 총연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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