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고 지친 평양 노동자들 족구로 활기 찾아








▲미국인 조지 윌리암스 씨가 평양 도착 후 첫 번째 방문지인 개선문. 다음날 4월 15일 이곳에선 김일성의 100번째 생일 축하 퍼레이드가 열렸다. /사진=조지 윌리암스

평양에 도착 했을 때는 북한 당국이 외부 세계에 비춰지는 북한의 이미지를 개선하는데 많은 신경을 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필자는 북한 방문 경험이 있는 사람을 통해 그가 1960년대 일루신을 타고 갔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 방문에서는 신형 투폴레프 기종을 이용했는데 덜커덩거리는 느낌도 없었다. 기내 음식 또한 먹을만했다.


평양으로 가는 비행기 옆 좌석에는 조총련 소속의 노신사가 앉았다. 그는 김일성에 대해 매우 열정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김일성이 해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했고, 남한이 “일본에서 사는 한국 사람들에 대해 한국인 취급을 해주지 않았던 시절” 위대한 수령님은 너무나 많은 것을 해주었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 2차 세계대전 때문에 일본으로 끌려갔다가 전쟁이 끝난 후 한국으로 돌아오려 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한다. 김일성의 도움으로 무료로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때와는 다르게 북한이 요새 일본학교에 주는 관심은 매우 작다고 말했다.


여러 언론에 보도됐듯이 평양의 순안공항은 새로 꾸며지고 있었다. 미완성된 공항으로 인해 많은 관광객들은 임시 입국장과 세관을 이용해야만 했다. 세관 관계자는 나에게 ‘아이팟 터치’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난 mp3 플레이어 라고 했고, 핸드폰이 아니라고 했다. 관계자는 나의 대답에 매우 만족한 듯이 그냥 보내주었다. 만약 그게 아이폰이라고 했더라도 북한으로 들고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눈에 띈 세 명 정도가 FM 라디오가 되는 ‘아이팟 나노’를 가지고 입국했다. 북한은 이것을 모른던가 별 상관 없다고 보는 것 같았다. 모든 외국인들이 세관신고를 마치고 모두 쾌적하고 에어컨이 틀어있는 시원한 버스를 타서 24km 거리의 평양으로 향했다. 


도로 양쪽에 있는 밭들은 모두 농사가 진척되지 않은 듯한 느낌이었다. 한 가지 이상했던 것은 아직 뿌려지지 않은 비료들이 밭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이 비료는 분뇨와 음식 폐기물로 구성되어 있었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화학비료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이러한 광경은 전국적으로 반복되는 그림이었다. 


그래도 긍정적인 것은 트랙터 몇 대가 사용 중이라는 점이었다. 낡은 구식 트랙터였지만 적어도 연로가 있다는 증거였다. 나는 긍정적인 일이라고 생각했고 북한이 수작업 또는 황소로만 농사를 짓는다는 생각을 바꾸게 됐다. 북한에 있는 동안 소를 많이 보았다. 하지만 소는 농사일을 돕는 데 쓰이지 않았고, 나무와 삼베 조각의 자루를 운반하는데 쓰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 에너지의 원천은 인간의 손이라는 것이 명백했다.


북한 정부가 낮은 아파트 건물을 짓는 바람이 불면서 도시가 넓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건축은 진행 중이지만, 짓는 과정은 매우 원시적으로 보였다. 공사가 곧 끝날 것 같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말할 필요도 없이 안전해 보이지 않았다. 기계적인 것은 최소한으로 보였다. 북한사람들이 새로운 건물에 이사하는 것을 왜 꺼려하는지 알 것 같았다.


평양에서의 첫 번째 방문지는 만수대도 아니고 김일성 동상도 아니고 개선문이었다. 개선문 자체는 멋있었지만, 활력 넘치는 장소는 아니었다. 내가 보기에는 개선문에 있던 사람들은 관광객 아니면 그곳을 지키는 보안 요원들뿐이었다. 매우 지루한 광경이었다.


광장 근처 지루해 보이지 않는 것은 김일성 경기장과 청소년 유원지였다. 그곳에선 아이들과 여성들이 공연 준비에 한창이었다. 또한 작은 박람회가 개최되고 있었다. 이동식 포장마차 같은 곳에서는 여러 가지 스낵, 감자, 옥수수, 치킨과 음료수, 맥주를 판매하고 있었다. 나는 맥주를 사면서 외화사용이 가능한지를 묻자 두 젊은 아가씨들이 공손하게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곳에 파는 음식은 대규모로 공급되고 있었고 장사도 잘 되는 것처럼 보였다. 주민들도 사람들도 행사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외국인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니어서 그런지 사람들은 나를 매우 조심스럽게 쳐다보았다. 불가피하게 사람들과 많은 얘기를 하지 못했지만, 나에게는 평양시민들을 처음으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들이 입은 옷은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몇 명의 사람들은 멋진 자켓과 최신 머리스타일을 하고있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지나다니고 얘기하며 놀던 아이들 몇몇이 디즈니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그려진 옷을 입고 있었다는 것이다.


영화 ‘굿바이 평양’ 에서 선화라는 여자아이가 한 말이 기억났다. “미키마우스 그려진 양말 하나쯤 착용하는 것은 괜찮아… 미키마우스를 아는 사람은 많이 없으니까…” 반대로, 이제 많은 사람들이 미키마우스 그림이 그려진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태양절 아침 군대 열병식을 옥류교 다리 끝에서 관람할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았다. 이곳은 평양에서 제일 좋은 장소 중 하나였고, 건설이 계속 진행 중인 걸로 보아 하루하루 더 아름다워지는 것 같았다. 대동강과 옥류관 바로 건너편에는 만수대 근처 전망 좋은 아파트 단지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매우 세련되게 보였다.


한 가지 거슬렸던 광경은 텐트치고 강둑에서 살고 있는 노동자들이었다. 아마 건설 노동자들일 것이다. 노동자들이 어떻게 사는지 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그들을 관찰했다. 그곳에는 화장실, 식당 또는 상담 공간이 있었다. 하지만, 곳곳에 앉아있는 남자들은 매우 힘들어 보였고 못 먹은 것 같았다. 태양절 열병식에 앞서 동원된 여성들에 비해 매우 상반된 모습이었다. 여성들은 활기가 돌았고 쇼를 위해 약간의 화장도 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환경에 매우 강한 적응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예상했던 대로,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 같았다. 쉬는 시간에 족구를 하며 매우 활기차게 즐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런 모습을 몇 번 더 지켜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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