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노동과 굶주림…죽음도 두렵지 않아

마일.


특이한 이름 때문에 교화소에서 유명했던 이 사람은 2004년 여름, 같은 감방 사람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해서 죽은 사람이다.


마일은 고향이 무산이다. 그의 키는 160cm 정도의 왜소한 체격이었으나 성질이 사납고 포악하기 그지없어 죄인들 속에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또한 인간성도 교활하여 웬만한 보안원들을 슬슬 가지고 노는 정도였다.


한마디로 똑똑한 사람이었으나 교화소에서는 지나치게 똑똑해도 오래 살지 못한다. 죄인들은 물론 보안원들까지 갖고 놀던 마일은 결국 보안원들의 음모로 허약병에 걸려 공무반으로 전방되었다가 그곳 반원들에게 맞아죽고 말았다.


특이한 이름과 포악한 성격 때문에 교화소 내에서 마일을 모르는 죄인들은 거의 없었다. 죄인들에게는 그가 허약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마일은 본래 차 수리반 소속이었다. 마일은 나와 신입반 시절을 같이 보낸 사람이었고, 비슷한 시기에 티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내가 자기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동생 취급을 해서 그와 원래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2002년 마일이 낙후자반으로 쫓겨 갔을 때 우리 둘의 관계는 조금 풀렸다.


마일은 차 수리반에서 반장을 뒤에서 조정하며 반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공무반에서 일반 죄인으로 생활을 하던 무산 출신 장송식이 차 수리반장으로 오면서 마일의 생활은 순탄치 않게 되었다.


장송식은 키가 170cm가 넘고, 체격이 좋았으며, 부모가 돈이 많았기 때문에 교화소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차 수리반장이 됐다. 같은 고향 출신으로 서로 마음이 잘 맞을 것 같았으나,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서서히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했다.


장송식은 마일을 자기 밑으로 굴복시키려고 하였고, 마일은 장송식의 약점을 잡아 계속 담당 보안원에게 고자질을 하였다. 결국 두 사람의 관계를 껄끄럽게 여기던 차 수리반 담당 보안원은 마일을 낙후자반으로 쫓아냈다.


장송식과의 기싸움에서 패한 마일은 낙후자반으로 쫓겨 갔지만 계속해서 보안과와 교화과 보안원들에게 장송식의 생활을 고자질했다. 결국 장송식은 2과 2반으로 쫓겨 갔다가 훗날 부모님이 돈을 써서 병보석으로 석방됐다.
 
장송식이 차 수리반장에서 쫓겨 난 후에도 마일은 차 수리반으로 돌아가지 못했으나 낙후자반에서는 티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티 자리에 오른 마일은 다시 거들먹거리며 못된 짓을 일삼았다.


마일은 우연히 교화소 철문으로 들어온 개를 잡아먹은 일로 자기 형기에서 3년이 더해졌다. 또한 다른 죄인과 동성연애를 하는 것이 들통이 나 9년이 추가돼 총 형기가 15년으로 늘었다.


교화소에서 살아나갈 희망을 잃은 마일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마구잡이 생활을 시작했다. 보안원들에게 대놓고 욕을 퍼붓거나 툭하면 자기 반 죄인들을 구타해 일주일에 한 번씩 독방에 끌려갔다.


독방 출입이 잦아지니 당연히 허약병에 걸리게 되었다. 잡부조장의 이야기에 따르면 원래 마일이 좀 거칠긴 해도 남자다운 기질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남자다운 기질이 도를 넘어서 수십 년간 죄인들을 다루어 온 교활한 보안원들의 상상조차 뛰어넘게 된 것이다.


하루는 독방에 갇혀 있던 마일이 자기에게 욕을 해대는 교화과 보안원의 얼굴에 침을 뱉은 적도 있었다. 화가 난 보안원이 권총을 뽑아 들고 쏴 죽이겠다고 하자 마일은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이 없이 가슴을 풀어헤치고 “쏴라, 쏴라, 이 개새끼야!” 하면서 보안원을 조롱했다.


전거리 교화소가 생긴 이후로 마일처럼 대놓고 보안원들을 조롱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교화소에서는 사람의 정신이 망가지는 순간, 그틈을 비집고 죽음의 그림자가 찾아온다.


어느 날 갑자기 마일이 공무반으로 전방됐다. 공무반 담당 보안원은 보안원들도 도리질을 할 만큼 성격이 거칠고 포악한 사람이었다.


보안과와 교화과가 토론한 끝에 마일을 공무반 담당 보안원에게 맡겨 버린 것이다. 마일은 공무반으로 전방된 첫날부터 반원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했다.


아마 공무반 보안원의 지시였을 것이다. 보안원들에게도 기가 꺾이지 않았던 마일이 반원들의 집단폭행에 기가 꺾인 것을 보면 공무반 담당 보안원의 교활성이 마일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나 보다.


마일이 보안원들을 조롱하며 대들었던 태도는 보안원 자신이 직접 손찌검을 하지 않고서는 분이 풀릴 수 없는 행동들이었다. 하지만 공무반 담당 보안원은 자신이 직접 마일을 때리거나 욕하는 일 없이 감방 죄인들을 동원하여 집단폭행을 가했다.


아마 공무반에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는 죄인들이 몇 명이라도 있었다면 마일이 같은 죄인들에게 맞아서 처참하게 죽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마일 역시 쌓이고 쌓인 분노와 원한 때문에 선택했던 자기의 죽음이 같은 감방 동료들에게 맞아죽는 개죽음이었을 줄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공무반에서 보안원들의 집중 감시대상이 된 마일이 하루 종일 똥지게를 나르던 모습은 아직까지도 잊혀지 않는다. 그에게 밥 한 덩이라도 갖다주고 싶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허약 3도에 들어 거의 해골이 다 된 그의 얼굴에는 그래도 자신만만한 기색이 넘쳤고 가끔 나와 마주칠 때마다 의미 있는 미소를 보여주곤 했다. 나는 그의 미소 속에서 죽기 직전까지도 짐승 같은 보안원 새끼들에게 굴복하지 않겠다는 그의 배짱을 읽을 수 있었다.


교화소의 죄인들은 대부분 죽는 것보다 힘든 노동과 굶주림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악’만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들 고향의 가족들을 생각하며 버텼다. 한마디로 자신의 죽음은 두렵지 않지만 짐승우리 같은 교화소에서 죽는 것은 아무 가치도 없는 개죽음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마일은 결국 개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나는 그 이후로 공무반과 인연을 끊고 살았다. 교활한 공무 담당의 음모에 부화뇌동해서 같은 죄인을 자기 손으로 때려죽인 그들과 상대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와 가까운 반장들과 티들은 공무반장과 그 반원들을 같은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았다. 우리가 그렇게 하니 반원들도 공무반장이 찾아오면 “개새끼야, 우리 반장 없다는데 왜 자꾸 찾아와서 지랄이야?”라며 박대했다.


일요일에 강당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일이 있으면 반장 딱지를 단 사람들은 앞쪽 의자에 앉게 되는데 공무반장만은 반장 딱지를 달고도 구석에 앉아서 봐야 했으며, 공무반의 자리는 늘 가장 뒷자리였다. 공부반 죄인들은 온 교화소 죄인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면서 속으로 많이 괴로웠을 것이다.


마일!


그가 만약 일본제국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큰 영웅이나 독립투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결국 교화소에서 죄인들의 몰매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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