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 차관보 ‘선물보따리’ 가져올까

북한과의 이른바 ‘핵 프로그램 신고 담판’을 위해 3일 방북한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과연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폐쇄적인 평양의 특성상 그의 동정이 외부로 많이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일단 4일 현재까지는 순탄한 일정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힐 차관보는 3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신화통신 등 평양 주재 일부 기자들과 만나 핵프로그램 신고 등 “미국과 조선(북)이 이행해야 할 의무”에 관해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협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가 보도했다.

신화통신도 힐 차관보의 도착사실을 전하면서 그가 미국은 부시 대통령의 임기 중에 한반도 비핵화를 완전히 실현하기를 희망하며 북.미 관계 정상화의 전제는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6월 방북해 북한 측과 합의한 이른바 ‘비핵화-관계정상화’의 포괄적 해결원칙을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시 말해 북한이 10.3합의에 규정된 대로 자신들이 해야 할 의무를 이행하면 미국도 뒤지지 않고 테러지원국 해제 등의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힐 차관보는 도착 첫날 곧바로 불능화 작업이 진행중인 영변으로 가 미국의 기술팀으로부터 불능화 상황을 보고받고 현지 상황을 직접 시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부터는 5일까지 주로 평양에서 김계관 부상과 본격적인 회담을 하며 현안을 논의할 것으로 외교소식통들은 보고 있다.

북.미 간 논의의 출발이 되는 10.3합의에는 북한이 해야할 조치로 핵시설 불능화와 핵 프로그램의 신고를 올해 말까지 하도록 돼있다. 특히 최근 현안이 되고 있는 신고 문제와 관련, 10.3합의는 ‘북한은 2.13합의에 따라 모든 자국의 핵 프로그램에 대해 완전하고 정확한 신고를 2007년 12월31일까지 하기로 합의하였다’고 명시했다.

따라서 힐 차관보는 이 규정을 들어 ‘완전하고 정확한 신고’를 해야 하며 신고 대상에 모든 핵시설과 핵물질, 핵활동을 다 포함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가장 핵심적 사안은 물론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관련 의혹이다. 2002년 10월 촉발된 UEP 의혹이 확실히 풀리지 않는 이상 미국내에서 ‘과연 5년 넘게 그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뭐했느냐’는 비난이 쏟아질 것이 분명한 상황이다.

이미 힐 차관보는 지난 1일 “북한이 UEP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이 문제를 돌파할 수 있으며 만약 감추려 한다면 문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 뒤 “우리는 북이 (UEP와 관련) 무엇을 했는지 인정하고 무엇이 진행됐는지를 해명하고 관련 자재 등을 처분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추출된 플루토늄의 총량도 핵심현안에 속하며 미국 일각에서 제기하는 시리아로의 핵 물질 이전설에 대한 문제도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

문제는 북한의 태도다.

조선신보는 “우리(북)는 6자회담 합의에 따라 연내 무력화에 대한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지난달 30일자 조선중앙통신사 보도를 상기시켰다. 10.3합의 채택 이후 북한은 착실하게 할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영변에서 진행되는 불능화 작업과 함께 신고 문제에 있어서도 `연말까지’ 자신들이 해야할 신고서 제출 등을 하겠다는 의지로 읽혀진다.

하지만 신고서를 제출하는 것보다는 신고서에 어떤 내용이 담기느냐가 중요하다고 외교 소식통들은 강조한다. 결국 힐 차관보와 김 부상은 신고서에 담길 내용을 놓고 담판을 벌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외교소식통들은 일단 북한이 힐 차관보를 어렵게 초청했다는 점을 생각할 때 모종의 선물이 건네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동안 UEP 관련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없는 것을 있다고 할 수 없다’는 태도에서 벗어나 ‘미사일이나 다른 재래식 무기 등에 사용했다. 미국측이 보고 싶으면 보게할 수도 있다’는 정도의 내용을 전달함으로써 힐 차관보에게 워싱턴의 상부에 ‘보고거리’를 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힐 차관보가 김계관 부상 뿐 아니라 UEP 해명 등에 매우 소극적인 군부 인사들과도 면담을 가질 것이라는 관측이 현실화하면 이런 과정을 거쳐 북한이 힐 차관보에게 나름의 성의를 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북한의 선물에 대해 워싱턴의 조야가 ‘우호적인 반응’을 보여준다면 힐 차관보로서도 그만큼 부담이 적어질 수 있다.

반대로 의회내 강경파를 포함해 미국의 반응이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쪽이라면 힐 차관보의 어깨가 무거워질 수 밖에 없다.

그런 만큼 힐 차관보는 적어도 UEP가 핵무기 제조용으로 사용되지 않았음을 말해줄 ‘증거’에 입각한 확실한 해명을 강력히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측이 적절한 선에서 성의를 보일 경우, 그리고 북한이 6자회담에서 신고 문제 등을 놓고 더 많은 것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면 힐 차관보는 북한을 다시 협상장으로 견인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6자 수석대표회담이 열릴 베이징으로 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공식 6자 수석대표회담 역시 당초 예정된 6일부터 개최되거나 하루 이틀 늦어진 시점에 열릴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최악의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북핵 외교가의 분위기다.

북한이 UEP 문제에 있어 매우 소극적인 해명으로 일관할 경우 미국내에서 ‘지난 5년간 북한이 고농축우라늄(HEU)을 생산하도록 방치한 결과’라는 엄청난 비난이 쏟아지게 될 가능성이 높고 이는 곧 6자회담 전반에 어두운 그림자가 될 수 있다.

이럴 경우 한국과 미국 정부가 임기말로 향하면서 북핵 문제에 대한 장악력이 갈수록 떨어질 것이라는 점과 맞물려 6자회담이 상당기간 공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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