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 차관보 訪北, 북핵 뒷걸음질 막을까

북한이 불능화 조치를 취한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하겠다고 선언한 가운데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내주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온 북핵 문제는 지난 6월 말 북한의 북핵 신고서 제출 및 조지 부시 대통령의 북한 테러지원국 지정해제 방침 의회 통보 등으로 순항하는 듯했으나 최근 북한의 핵시설 불능화 복구선언으로 다시 교착상태에 빠졌다.

이에 따라 힐 차관보의 방북 카드가 갑자기 `후진기어’ 상태에 놓인 북핵 문제의 뒷걸음질을 막고 북핵 문제가 다시 전진하는 계기를 마련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힐 차관보의 방북은 그동안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던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시점에서 주목을 끄는 이유는 북한이 힐의 방북을 전격 수용했기 때문.

북한은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해제가 지연되자 영변 핵시설 원상복구 방침 발표, 핵시설 재가동 준비완료 선언, 감시 카메라 및 봉인 제거 요구, 국제원자력기구(IAEA) 검증팀 강제출국 명령 등 단계적으로 대미 압력 수위를 높여 왔다.

북한이 이처럼 점차적으로 행동 단계를 높여가자 미국 내에선 북한의 의도를 둘러싸고 여러 분석이 엇갈렸다.

협상용 카드라는 낙관적 분석에서부터 조지 부시 행정부와 협상을 깨려는 것이라는 비관적 견해도 나왔다.

더욱이 북한의 영변 핵시설 재가동 선언 시기와 맞물려 북한 최고 지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병설이 나돌면서 북한 군부가 김 위원장 유고를 틈타 핵폐기 합의를 원점으로 돌리려는 것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북한의 힐 차관보 방북 수용을 계기로 일단 현단계로서는 북한의 의도가 파국보다는 협상에 쏠려 있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제 관심은 미국과 북한이 어떤 카드로 난관에 봉착한 현국면을 헤쳐나갈 것이냐는 것.

힐 차관보는 이번에 북한을 방문하면 핵신고 내역 검증문제와 영변 핵시설 재가동 움직임 중단,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문제 등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도 힐 차관보가 북한 측에 어떤 중재안을 내놓을지 관심이다.

북한 핵신고를 둘러싸고 북미 간에 샅바싸움이 한창일 때인 지난 2007년 12월 힐 차관보는 북한을 방문, 부시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보내는 친서를 전달해 사태를 진전시킨 바 있다.

이에 따라 힐 차관보의 방북 보따리에 여론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그동안 미국은 북한의 강경자세 급선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먼저 핵신고 내역에 대한 검증체제에 합의해야 북한을 테러지원국 지정에서 해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협상의 여지가 없는 듯 보이기까지 했다.

다만 미국 정부가 일각에선 대북 중유제공 중단 등 강경 주장이 터져나왔지만 지금으로선 북한이 핵합의 내용을 준수토록 하는 게 중요하다며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도록 신중한 입장을 밝혀온 게 긍정적인 신호였다.

또 미국 내 일각에서 미국이 북한에게 과도한 검증조건을 내세우고 있다는 비판론도 제기되고 있어 미국 정부의 입장변화 여부도 관심사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26일 미국 정부가 중국, 러시아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모든 핵의혹 시설에 대해 사전통보 없이 언제든지 접근토록 요구하고 당초 합의에도 없던 핵검증 문제를 테러지원국 지정해제와 연결시켰다고 비판했다.

이런 점에서 미국이 북핵 검증 요건을 완화, 북한이 이를 수용하면 북한을 테러지원국 지정에서 해제하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연일 대미 압박 수위를 높여온 북한이 어떤 조건을 내세우며 북핵 문제 뒷걸음질을 멈출지도 궁금증을 낳고 있다.

북한이 힐 차관보를 받아들인 것은 북한 입장에서도 북핵 협상을 파국으로 몰고가 미국의 차기 행정부로 넘기는 것보다 부시 행정부에서 계속 이 문제를 진척시키는 게 실리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유추된다.

일단 책임 있는 북미 당국자가 직접 얼굴을 맞대고 협상할 기회를 갖게 됐다는 점에서 북핵 문제가 다시 순항하는 계기를 만들지 주목된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