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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21일 평양을 방문했다. 이번 방북은 방코델타아시아(BDA) 동결 자금이 북한 계좌에 이체된 직후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힐 차관보는 1박 2일간의 방북 기간 동안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과 김계관 외무성 부상 등을 만나 2·13합의의 조속한 이행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26일 방북 예정인 국제원자력기구(IAEA) 실무대표단의 역할과 활동 범위와 관련한 미국 측의 입장도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방북은 IAEA실무대표단을 초청한 지난 16일을 전후해 뉴욕의 북·미 채널을 통해 극비리에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힐 차관보가 북한을 전격 방문함에 따라 BDA 자금 이체 문제로 4개월여 간 공전해 온 2·13 합의 이행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미북간 협의에 따라 미 행정부가 힐 차관보의 방북을 최종 결정하고 이를 우리 정부에 통보한 날짜는 지난 19일인 것으로 전해졌다. 힐 차관보는 당시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과 조찬을 하는 자리에서 방북 계획을 설명했다는 것.
힐 차관보의 이번 방북은 현직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로는 처음이다. 미 국무부 차관보 자격으로도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차관보 이후 4년8개월 만이다. 특히 힐 차관보는 18일부터 중국, 한국, 일본 등을 방문한 직후 이뤄진 것이어서 관련국들의 목소리까지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힐 차관보가 부시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친서’나 ‘구두 메시지’를 김정일에게 직접 전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김정일과의 면담이 성사될 경우 미국은 2.13 합의 이행에 막 돌입한 북한에 더 강한 ‘압박’이나 ‘회유’ 카드를 제시하며, BDA 문제로 잃어버린 지난 넉 달 간의 시간을 만회하기 위한 포석을 확보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북한 측에서 힐 차관보의 방북을 적극적으로 요구했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지난해 6월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비롯한 공식·비공식 접촉을 통해 힐 차관보의 방북을 꾸준히 요구해 왔었다.
그동안 미국은 북한의 불성실한 합의 이행에 반발해 방북 러브콜에 일절 대응하지 않았지만, 북한이 IAEA 대표단을 초청하고 2.13 합의 이행에 돌입하겠다는 자세를 보이자 태도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장은 21일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힐 차관보의 방북은) 실질적으로 북한이 더 절실하게 원하고 있었다”며 “북한은 테러지원국 해제, 적성국교역법 적용 제외 등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빨리 추진하고 싶어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 실장은 “북한은 이외에도 전력 공급의 대외의존성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경수로 제공 문제를 들고 나올 수 있다”며 “미국과의 대화를 통해 대북 지원과 관련한 남북관계를 풀어나가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강원식 관동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은 BDA 문제가 해결됐으니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쇄 등 상응 조치들을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할 것”이라며 “미국은 북한이 이행해야 할 추가 후속 조치들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북한을 압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이 날 “북한이 BDA 동결자금의 해제 작업이 완료되기 전에 IAEA 실무대표단을 초청한 것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적대정책의 전환 의지를 확인했기 때문”이라며 “조선은 미국의 정책적 결단에 바로 호응할 용의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미 국무성 차관보 크리스토퍼 힐과 그 일행이 21일 비행기로 평양에 도착했다”며 힐 차관보의 방북 소식을 신속하게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