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 서울방문 결산..`미사일 해법’ 조율

“상정할 수 있는 모든 현안에 대해 폭넓게 의견을 교환했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2박3일간의 서울 방문이 끝난 9일 정부 당국자는 이른바 `미사일 국면’을 맞아 한국과 미국간 의견조율이 광범위하게 이뤄졌음을 강조했다.

미국 정부의 ‘미사일 특사’ 성격을 띤 힐 차관보는 그의 임무의 중요성을 반영하듯 서울에서 한국측 주요 파트너를 모두 만났다.

직접적인 파트너인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8일 오전부터 1시간여 만난 뒤 오찬까지 함께 했고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도 예방했다. 그리고 9일에는 송민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과 이종석 통일부 장관을 차례로 만났다.

평소부터 협의해온 외교부 출신 인사 뿐 아니라 그동안 대북 문제에 있어 현 정부의 철학을 대변해온 이종석 장관과의 면담이 특히 관심을 모았다.

일련의 접촉에서 한미 양국은 진지한 입장조율을 한 것으로 평가됐다. 그 결과 는 “중요한 것은 한 목소리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는 힐 차관보의 발언으로 요약됐다.

이 발언 속에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제재조치를 놓고 그동안 표출됐던 미묘한 시각차가 어느정도 정리됐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힐 차관보가 이 장관과의 면담이 끝난 뒤 “한국은 대북지원을 검토해 유보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표명했다”고 전한 것은 미국의 곱지 않은 시각 속에서도 끝내 성사된 남북 장관급 회담에 대한 일정정도의 양해가 느껴진다.

다시 말해 기왕에 열리기로 한 만큼 북한을 압박해 6자회담이라는 협상장에 나오게 하는 수단으로 활용해달라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6자회담과 관련된 힐 차관보의 의중은 전날 천영우 본부장과 반기문 장관과의 면담 이후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그는 “6자회담에 북한이 나오기만 하면 그 틀안에서 (북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양자대화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은 6자회담이라는 원칙이 지켜진다면 그 형식에서는 다소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미국 정부의 방침을 표현한 것으로 외교소식통들은 보고 있다.

따라서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6자회담 비공식회의가 이 시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오는 10일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평양으로 건너가 11일 김계관 북한측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만날 예정이어서 북한의 선택에 따라 6자회담의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힐 차관보의 서울행은 6자회담의 모멘텀을 확인한 것 외에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의미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다시말해 북한이 미국과의 `대결’을 택할 경우 추진할 대북 조치의 내용도 한미간에 조율됐다는 것이다.

미국은 오래 전부터 북한의 미사일 발사 후를 대비한 ‘대응 시나리오’를 마련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관계자는 “어차피 힐 차관보는 미국의 정책방향을 4개국에 두루 설명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작업이 1차적 목적”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대북 조치는 유엔 안보리를 통한 대북 제재, 미국과 관련국이 협의해서 추진할 조치, 미국 스스로 취할 수 있는 제재 등이 폭넓게 포함돼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과 관련된 조치로는 ▲남북 장관급 회담 재고 ▲대북 경제지원 재검토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등에 대한 조정 등 광범위한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이미 추진하기로 한 남북 장관급회담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한 대로 미국측의 `양해’를 전제로 한국 정부가 대북 설득의 자리로 활용하기로 의견이 조율된 것으로 보인다.

만일 북한이 한국정부의 경고 메시지를 무시할 경우 향후 남북채널을 유지해야 하는 지를 놓고 추가적인 한미 협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유엔 차원에서 대북 결의안 채택을 추진하는 동시에 1999년 클린턴 행정부 시절 해제했던 대북 재제 조치를 복원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미사일이나 핵 관련 물질을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 선박의 동해상 이동을 차단하는 등 물리력을 동원한 봉쇄작전도 검토하는 등 다양한 조치를 상정해놓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과는 이미 구체적인 대북 제재의 내용을 숙의하는 단계로 접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의 대북 제재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는 역시 한국과 중국이다. 이 가운데 민간 및 정부 차원의 남북경협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한국의 협조가 필수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외교부 당국자가 “힐 차관보가 베이징에서 1박한 반면 서울에서 2박이나 한 것은 그만큼 한국과의 입장조율이 중요했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정책을 펴야 하는지에 대해 한미간에는 근본적인 `철학의 괴리’가 존재하고 있다.

분단국가의 일원으로서 북한을 통일의 상대방으로 인식하는 한국과 대량살상무기의 국제적 확산을 막으려는 미국의 목적이 다른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현상이다.

문제는 한미간 입장조율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하고, 조율된 정책을 얼마나 효과있게 추진하는냐다. 이를 위해 미국과 파열음없는 협의를 해나가는 외교적 역량도 중요한 상황이다.

또 북한이 한미간 균열을 노린 `위협전술’을 계속 시도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고비고비마다 한미간에는 긴밀한 외교협의가 있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외교부의 또 다른 당국자는 “힐 차관보의 4개국 순방이후 미국 정부가 구체적인 대북 조치의 내용을 공개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약간의 입장차이를 극복하고 통일적인 메시지를 알리는 외교적 노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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