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 북핵 신고 시한 설정 배경과 전망

북핵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10일 비핵화 2단계 조치 이행시한을 ’한국의 차기 정부가 들어서기 전’으로 설정해 관심을 끌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이 2월25일 거행되는 점을 감안하면 일단 그 때까지 현재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핵시설 불능화 조치는 물론 북.미 간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는 핵 프로그램 신고도 마무리돼야 한다는 미국의 의지를 밝힌 것으로 읽힌다.

나아가 10.3합의의 이행시한이었던 지난해 12월31일을 넘긴 상황에서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다는 절박감도 느껴진다.

새해들어 미국에서는 존 볼턴 전 유엔 대사를 비롯한 강경파들이 “북한의 핵폐기는 커녕 시간만 허비하고 있다”는 비난을 퍼부으며 대북 협상 기조에 불만을 피력하며 협상파인 힐 차관보와 그의 상관인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을 압박하는 양상이다.

결국 힐 차관보로서도 ’북한의 결단’이 없으면 더이상 인내해 나갈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밝힌 것으로 외교가는 받아들이고 있다.

새로운 시한으로 ’한국의 차기정부의 출범 전’, 다시 말해 2월 말을 제시한 것은 여러 가지 함축된 의미가 있어 보인다.

우선 현재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핵시설 불능화를 위한 11개 조치 가운데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는 폐연료봉 제거가 그때쯤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1월 착수된 불능화는 폐연료봉 제거를 위해 기술적으로 대략 100일 정도가 필요하다는 북한의 설명을 감안할 때 2월 말에는 끝날 수 있다.

한 소식통은 “어차피 불능화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만큼 불능화가 마무리될 때까지 현안인 핵 프로그램 신고를 제대로 하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문제는 북한이 과연 미국이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핵 프로그램 신고를 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현재 북한은 쟁점인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관련 의혹을 부인하고 있으며 지난 4일에는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핵 신고를 11월에 이미 했다’거나 ’수입 알루미늄관을 이용한 군사시설을 참관시켰다’는 논리를 폈다.

물론 미 국무부는 다음날인 5일 ’아직 북한의 정확하고 완전한 핵 신고를 받지 못했다’고 일축했다.

특히 북한은 현재 신고의 핵심이슈인 UEP 의혹에 대해 “알루미늄관을 수입은 했지만 UEP와는 관계없는 용도”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한이 당시 담화에서 끝까지 미국을 비난하지 않고 협상의지를 밝힌 만큼 북한을 설득할 여지가 있으며 이를 잘 활용하는 것이 협상 모멘텀 유지에 유리하다는 게 한국과 미국의 판단인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한국과 미국이 1월 중순 이후 베이징(北京)에서 비공식 6자 수석대표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북한의 태도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전략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과거 북한이 일본인 납치 사건을 과감히 인정했다가 일이 오히려 꼬인 점을 의식해 ’신고의 결단’을 못내리고 있을 가능성을 감안해 미국은 1월 회담이 열리면 매우 유연하게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한이 여전히 비타협적인 자세로 나올 경우 상황은 더욱 꼬일 수 있다. 아예 1월 비공식 6자 수석대표회담이 열리지 않거나 열리더라도 별 성과없이 끝날 경우 북핵 협상이 전반적으로 냉각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힐 차관보가 이런 상황을 감안해 2월말을 2차 시한으로 제시한 것은 북한을 압박하고 결단을 이끌어내려는 승부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향후 북핵 협상의 전망에 대해 외교가의 시선은 엇갈린다.
북한이 4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기존의 논리를 강조하면서도 여전히 협상의지를 내비친 것을 보면 6자회담이라는 협상구조가 쉽게 붕괴되지 않을 것이라는 시선이 우세하다.

힐 차관보도 이를 의식해 9일 심윤조 외교부 차관보와 만난 뒤 기자에게 “북한이 쉽게 6자회담에서 발을 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북한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등장 이후 차기 한국 정부에 대한 비난을 삼가고 있는 것도 긍정적인 조짐으로 보인다.

힐 차관보가 10일 중국으로 출발하면서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비핵화 2단계를 끝내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그렇게 된다면 2월 말 한국에 새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그 다음 단계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평가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북한이 한국의 새정부가 들어서는 과도기를 활용하려거나 아예 대선국면으로 접어든 미국내 상황을 감안해 시간 끌기에 들어가려할 경우 상황은 급격히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힐 차관보가 제시한 2차 시한인 2월말까지 북한이 긍정적인 결단을 내리지 않을 경우 북핵 협상은 그야말로 ‘고비’에 처할 것으로 예상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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