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 방북 이후…북핵 로드맵 어떻게 되나

“김정일 정권이 결심한다면 북한과 미국의 관계정상화 논의가 극적으로 전개될 수 있는 국면이다.”

북핵 문제에 정통한 정부 고위 당국자는 21일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의 전격적인 방북의 의미를 묻은 질문에 ’한반도 정세의 큰 변화’ 가능성을 화두로 던졌다.

힐 차관보의 방북 가능성이 간간이 제기돼오긴 했으나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가 해결되자 마자 북한이 그를 평양으로 초청한 것은 간단치 않은 의미가 있다는 게 북핵 외교가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특히 부시 대통령이 지난해부터 직접 전면에 나서서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공개한 터여서 북한이 이에 호응하는 ’대담한 결단’을 내릴 경우 한반도 정세는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변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 당국자는 “힐 차관보가 지난 18일 서울에서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협의 후 ‘올 연말까지 북한과 관계 정상화를 하는 방안을 협의했다’고 말한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힐 차관보는 당시 ’완벽한 비핵화’를 전제로 하면서도 ‘연내 관계정상화’란 표현을 구사했다. 그동안 미국의 고위 당국자들이 북한과의 관계정상화 의지를 피력해왔지만 ’연내’라는 구체적이고 매우 가까운 시점을 특정한 점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때 ’악의 축’으로 지칭했던 북한과 과감하고 극적으로 관계정상화를 도모하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의지가 갈수록 강해지고 있고 북한도 힐의 방북 초청으로 미국에 호응하는 모습을 과시하고 있는 국면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힐 차관보가 북한에서 그의 파트너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 또는 강성주 제1부상과 현안을 놓고 깊숙한 협의를 하는 것은 ’새로운 로드맵의 전개’를 상징할 것으로 보인다.

힐 차관보와 북한 고위 당국자 간 협의에서는 우선 2.13 합의 이행을 위한 단계별 실천내용이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평양합의’가 나올 지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북.미 협의를 보다 세밀하게 논의하기 위해 7월초에 베이징(北京)에서 6자 수석대표 회동이 열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7월초 회동이 성사되면 BDA 문제로 지난 4개월간 개점휴업 상태였던 6자회담 프로세스가 복원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 경우 2.13합의에서 초기조치로 규정된 비핵화와 이에 상응하는 에너지.경제지원을 위한 실무그룹회의도 잇따라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한국과 미국 등은 BDA 사태로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2.13합의 이행을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오는 26일께 국제원자력기구(IAEA) 실무대표단이 입북해 북한측과 핵시설 폐쇄를 위한 합의를 도출해내면 비핵화 시간표가 매우 구체적으로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IAEA 실무대표단과 북한측의 협의결과는 추가로 파견되는 IAEA 검증감시단이 즉각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7월 중순까지의 일정은 IAEA 실무대표단의 입북과 북한과의 협의, 이어 베이징 6자 수석대표회동 또는 비공식 회담, 그리고 6자회담 실무그룹회담 등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6자회담 정식 전체회의가 7월 중.하순께 열리면서 협상 에너지를 끌어모을 것으로 보인다. 2단계 핵폐기 조치에 해당되는 핵 불능화와 이에 따라 대북 에너지 지원, 북.미 관계정상화 방안 등 현안에 대한 협의가 6자회담에서 집중 진행되면 2.13 합의에서 규정한 ’궁극적 핵폐기’의 전망도 그만큼 밝아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 에너지는 6자회담 참가국의 외교장관 회담으로 연결될 전망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박의춘 북한 외무상이 한자리에서 ’관계정상화를 지향하는’ 의지를 모으는 장면은 상징성 만으로도 상당한 평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 외에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과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까지 합세하면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현안으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외교소식통은 “6자 외무장관 회담이 열리고 한국전쟁 교전 당사국인 남북한과 미국, 중국의 외무장관간 4자회동이 성사되면 이는 곧 북핵 폐기 문제 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해 큰 이벤트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양제츠(楊潔지<遞자에서 책받침 대신 대죽>) 중국 외교부장이 다음달 2~4일 북한을 방문하는 것도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4자회담은 장관급을 넘어 최고수뇌부 수준으로 격상될 가능성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역사적 의미를 지닐 것으로 평가된다.

한반도 내부에서는 남북 정상회담의 현실화도 예상할 수 있다.

이런 일련의 흐름은 한반도에 본격적으로 평화체제 구축노력이 전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예측을 불허하는 북한이 향후 핵폐기 과정에서 의외의 요구를 제기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외교소식통은 “현재 상황을 정리해보면 일단 북한은 2.13 합의의 초기조치 이행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고 보여지며 이는 핵시설 폐쇄의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2단계인 핵불능화 단계에까지 북한측이 적극적인 협상의지를 유지할 지 불투명하고, 이는 북한과 미국간 관계정상화 협상과 긴밀하게 연관된다고 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2.13합의를 넘어 궁극적인 북한 핵폐기를 유도할 수 있는 전략마련이 시급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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