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 방북 물 건너 가나

11월 초로 예정된 제5차 6자회담을 앞두고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방북 성사 여부가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최근 힐의 입장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들은 9일 “힐의 방북 계획과 관련, 활발하게 이용됐던 뉴욕 채널이 뜸해진 상태”라고 밝혀 북핵 폐기 조건과 관련한 미ㆍ북간의 여전한 입장차로 힐의 방북을 위한 사전 여건이 조성되지 않고 있음을 시사했다.

힐 차관보는 지난 6월에 이어 제4차 회담에서 공동 성명을 이끌어 낸 뒤 또다시 방북 의지를 피력, 외교가의 주목을 받았다.

힐 차관보는 그간 기자 회견에서나 하원 청문회 등 공개 석상에서 5차 회담 이전에 북한과 직접 협상할 의지를 거듭 표명했으며, 이를 위해 국무부는 한때 하루에 3~4차례씩 뉴욕 채널을 통해 전화 통화를 하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수일 전 부터 이런 움직임이 뜸해졌다고 외교 소식통들은 전한다. 소식통들은 “힐이 방북해서 북한측으로 부터 핵 폐기 이행에 관한 확실한 대답을 받아내지 못하는 한 그의 방북행은 어렵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예측하고 있다.

한 소식통은 “북한은 힐로부터 핵폐기 이전 경수로 지원 약속을 받아내려 하지만 미국은 핵 폐기 이후에 경수로 지원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면서 “힐의 방북은 현재로서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미국이 6자회담이 북-미간 양자 협상으로 이행되는 것 처럼 보이는 것 조차 극히 꺼리는 상황에서 힐의 방북은 그같은 단계를 더 넘어서는 것”이라면서 “미국이 아무런 소득없이 방북을 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와관련, 힐 차관보는 지난 6일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청문회에서 “현재 방북계획은 없다”면서 “그러나 만일 방북을 통해 6자회담 과정에서 미국의 이익을 증진할 것이라는 확신이 설 경우 방북할 것”이라고 답했다.

국무부 관리들은 힐 차관보의 방북 문제를 뉴욕 채널을 통해 협의한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구체적인 진전 사항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힐이 방북하게 되면 미 국무부 고위 관료 방문으로는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전 차관보에 이어 근 3년 만에 이뤄지는 것이다.

켈리 전 차관보는 당시 북한측으로 부터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혀 파장을 낳았었다.

국무부의 한 관리는 “힐 차관보의 방북 여부가 언론에 초미의 관심을 끌면서 언론사들이 너도 나도 방북 취재 신청을 해놓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리는 그러나 “힐의 방북이 성사되더라도 지난 2000년 10월 미국의 장관급 인사로는 처음이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의 방북 때와는 달리 취재 기자들의 동행 취재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힐 차관보가 장관급이 아니어서 전세기 이용도 어려운데다, 예기치 않은 사태가 발생할 것을 북한이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것.

올브라이트 전 장관의 방북 때는 북한을 오랜 협상 끝에 겨우 설득해 처음 1백명에서 25명으로 제한해 기자들의 동행 취재가 허용됐었다.

당시 북한에서 구호활동을 펴온 독일인 의사 노어베르트 폴러첸 씨는 동행 취재 방문중이던 미국 기자를 허가 받지 않은 지역으로 안내했다는 이유로 추방 명령을 받았다가 독일 정부의 항의로 추방을 면한 일이 있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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