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의 발언과 한반도 평화협정 논의

미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지난 4차 6자회담에서 한반도 평화협정 구상이 논의됐다고 밝혀 관련국간 현재 논의 수준과 향후 진전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7일 워싱턴의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에서 힐 차관보의 평화협정 발언은 4차회담 개막을 전후로 북미를 포함해 관련국 간에 논의가 있었으나 6자회담은 그 성격상 평화협정 논의를 위한 적절한 틀이 아닌 만큼 추후 핵문제가 해결되면 별도의 회담 틀을 만들어 협의하자는 말로 요약된다.

정부 당국자는 “지난 13일간의 4차회담 기간에 관련국 간에 논의는 있었지만 6개국이 모두 참가하는 전체회의에 올려진 적은 없으며 한마디로 거론된 수준이라고 봐야 한다”고 전하고, “그러나 힐 차관보가 공개석상에서 평화협정을 거론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아직은 그 수준은 미미하지만, 공개 발언을 계기로 북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평화구축 논의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북한은 6.25 전쟁이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으로 종결된 이후 반세기가 넘게 “정전협정은 평화를 보장할 수 없는 빈 종잇장”이라며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새로운 평화 보장체제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북한은 특히 4차회담 직전인 지난 달 22일에도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평화체제 수립은 조선반도(한반도)의 비핵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노정”이라며 “평화체제 수립 과정은 반드시 조(북).미 평화공존과 북남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환경조성에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전환되고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해소되면 한반도 비핵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북한의 주장이다.

북한은 지난 4차회담 장에서 이런 논리를 평화협정 당사자가 될 수 있는 한국,미국, 중국에 게 설파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비록 원론적인 수준이기는 하지만 힐 차관보가 공개적으로 평화협정 논의 가능성을 거론하고 논의 의지를 비쳤다는 점은 향후 북핵 6자회담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거론 자체만으로도 북한의 핵포기 선언을 이끌기위한 유인책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어 “미 행정부는 북한이 핵포기를 선언하는 ‘말 대 말’ 합의가 이뤄지고 이를 이행 수준으로 높인 ‘행동 대 행동’의 단계로 들어서 상응조치가 구체화되는 단계에서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별도의 포럼을 만들어 평화협정 관련 논의를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그러나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은 북한의 핵포기를 유도하는 것이 돼서는 안되며 북한의 핵포기보다 평화협정 체결이 먼저 오게 되면 문제가 꼬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평화협정 논의의 출발점은 조만간 속개될 4차 6자회담의 공동문건이 될 공산이 커 보인다.

지난 회담에서 중국이 제시했으나 평화적 핵이용권 보유를 둘러싼 북한의 반발로 일단 채택되지 못한 6개항의 공동성명 문건에도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 문제를 논의한다’는 내용의 문구가 들어 있었고, 속개되는 회담에서 공동문건이 채택될 경우 이 문구가 그대로 포함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평화협정과 관련한 미 행정부의 스탠스는 우리 정부의 입장과 부합한다”며 “미 행정부는 북한과의 평화협정 논의를 관계정상화와 연결지을 것으로보이며 6자회담이 아닌 북미간 별도의 채널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실 평화협정 체결과 관련해 남북한 간에도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 남북 모두 불안정한 정전협정 상태를 조속히 평화협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데 이견이 없다.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은 8.15 민족대축전 기간인 14일 “이제부터 우리는 본격적으로 분단과 정전상태를 청산하고 평화체제를 만들려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고, 15일에는 “평화를 통해 번영을 누리고 번영을 통해 평화를 공고히 해 한반도의 대결과 정전상태를 종식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가자”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럼에도 절차를 포함한 방법론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북측은 평화협정 문제를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로드맵에 집어넣으려는 입장으로 보이며 우리측은 북핵문제가 해결국면에 접어들 때 자연스럽게 별도 트랙을 통해 논의될 수 있는 사안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핵심현안인 북핵문제 해결이 선행돼야 평화체제 구축논의가 실질적으로 가능하다는 점에서 평화협정 체결문제는 현재로선 ‘먼 비전’일 수 밖에 없다.

이달 말 속개 예정인 4차회담에서 북핵문제와 관련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결단 여부가 주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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