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는 타민족 학살…김정일은 자기 국민 학살”

최근 탈북시인 장진성 씨가 1990년대 중반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기를 아주 사실적이면서도 섬세하게 표현한 시집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가 많은 화제를 모으고 있다.

2004년 장 씨는 써놓은 70여 편의 시를 가슴에 품고 두만강을 건넜다.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도 이때 써놓은 작품이다. ‘데일리엔케이’는 10일 한국에 입국한 지 4년이 지나서야 우여곡절 끝에 첫 시집을 낸 장 씨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장 씨는 인터뷰가 시작되자마자 “무조건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 시들과 함께라면 갈 수 있다는 용기가 있었다”며 탈북을 결심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이 시들은 장 씨가 1999년 평양시 동대원구역 시장에서 직접 목격한 불우한 모녀의 실제 이야기다. 한국에서는 누군가에 의해 UCC동양상으로 재구성돼 160만 명이 볼 정도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출판 10여일 만에 이미 6천여 권의 시집이 팔렸고, 4쇄까지 돌릴 정도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책을 구입한 독자는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는 시집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서점에서는 제목에 끌려 우연히 집어 든 사람들이 한 두 편 시를 읽으면서 구입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는 시집을 펴낸 이유에 대해 “히틀러는 타민족을 학살한 폭정이었다면 김정일은 자기 국민을 학살한 폭정이다.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서는 다른 정의를 찾을 수 없었다”며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그 이유를 밝혔다.

또, “처음엔 인터넷에 수기를 올렸는데, 남한 국민들의 따뜻한 인정을 느꼈다. 댓글을 보면 많이 울었다는 사연도 있었다. 감동이 있고, 인정이 살아있는 이런 나라에 눈물의 호소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시집을 냈다”고 말했다.

장 씨의 시를 읽고 나면 이 책은 시집이 아니라 북한의 르포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이 책을 부디 읽지 마시고, 읊지도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우리의 반쪽, 저 북한의 고통을 함께 슬퍼하고 동정해 달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장 씨는 이번 시집 출반을 계기로 한국에서 쓴 시를 모아 또 한 권의 시집을 낼 계획이라고 한다. 일본판 시집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아직 북한에 남은 가족의 신변 보호를 위해 장진성 씨의 구체적 사연과 사진을 올리지 못한 점 양해바랍니다.

[다음은 시인 장진성 씨와의 인터뷰 전문]

-시집 출간이 10일됐다. 반응이 어떤가?

“현재 교보문고와 인터파크에 베스트셀러로 등록되어 있을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4쇄까지 찍은 상태이고 6,000부 가량 판매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시집이 근래 이 정도 반응을 보인 것은 없었다고 들었다.

어제는 경기도 중소기업 사장이 우연히 시집을 보고 본인만 읽을 수 없다고 판단해 인근 중학생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싶어 100권을 구입했다며 연락이 왔다.

어느 탈북자는 전화를 해서 시의 내용이 본인의 사연과 비슷하다며 5분 동안 통곡하다가 끊는 경우가 있었고, 이 시집을 보기 전에는 북한의 실상을 알 수 없었다며 대한민국이 얼마나 행복한 나라인가를 알았다는 내용의 이메일도 받았다.”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예상했는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다. 책을 사지 않아도 빌려서라도 봤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이렇게 책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소개되니 감사할 뿐이다.

처음 ‘김은주’란 필명으로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 수기를 인터넷에 올렸다. 오해가 있었는지 김은주의 수기를 장진성이 시로 만들어 출판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북한에서 나올 때 북한에서 지은 시를 가슴에 품고 두만강을 넘었다고 했다.

“무조건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 책과 함께라면 갈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다.

두만강을 건너면서 가장 괘씸했던 것은 그 짧은 두만강을 넘지 못해 평생 갇혀 살고 억압받아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가장 분했다.”

-시집을 펴내게 된 계기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자기 국민들을 전쟁도, 자연재해도 아닌 평화 시기에 300만 굶어 죽인 나라가 북한이다. 아직도 정부가 존재한다는 것은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일이다. 300만 아사자를 낸 시기를 ‘고난의 행군’이라고 말하는 나라가 북한이다. 히틀러는 타민족을 학살한 폭정이었다면 김정일은 자기 국민을 학살한 폭정이다.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서는 다른 정의를 찾을 수 없었다.

또, 처음엔 인터넷에 수기를 올렸는데, 남한 국민들의 따뜻한 인정을 느꼈다. 댓글을 보면 많이 울었다는 사연도 있었다. 감동이 있고, 인정이 살아있는 이런 나라에 눈물의 호소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시집을 냈다.

책을 낸 이유의 또 하나는 좌파 10년 정부에 대한 항거였다. 2004년 한국에 들어와 많이 실망했었다. 북한의 ‘우리민족끼리’ 전략에 말려 좌파정부 10년은 북한 진실을 가리는 데 일조했다.”

-북한식 표현으로 성분이 좋은 집안 출신 아닌가? 북한체제에 회의를 품게 된 이유는?

“정권에 복무하면 복무할수록 속성을 알게 된다. 일반 주민의 현실과 정권과의 괴리되는 현상이다. 북한의 김정일은 두 가지 모습이다. 신으로서 김정일, 개인의 김정일이다.

나는 의례원(김정일 초대소)에서 근무자를 한 사람을 알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그를 통해 개인 김정일의 복잡한 여자관계, 부화방탕한 생활 등 그의 사생활이 썩고 병든 자본주의의라는 것을 알게 됐다.”

-북한에서 김정일이 총애하던 시인이라고 알려졌는데

“북한은 경제상황이 어려워 애들에게 공급하는 책이라든지, 작가에게 필요한 원고지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종이라는 것이 북한에서는 귀하디 귀한 것이다. 그래서 소설가는 북한에서 성공하기 힘들다. 출판된다 해도 종이가 없어 제한된 공급에 돈 주고 사볼 사람도 없다.

그래서 정치가 김정일은 시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체제를 유지를 위해 시인들을 신임하고 찬사하는 경우가 있다. 시는 다른 것에 비해 신속하고, 감정 자극을 통해 정치의식을 주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일과 직접 만난 적도 있었다는데

“두 번 만났다. 식량난이 있기 전에 처음 만났을 때는 신을 만난다는 자부심을 갖고 만났다. 그런 기회를 갖게 된 것이 행운 자체였기 때문이다.

식량난 이후에 김정일을 또 만났는데, 그때는 존경하는 마음이 아니라, 저 한사람만 없다면 하는 생각을 계속하게 됐다. 2,200만 주민들의 굶주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호의호식하고 있는 모습에 저 한 사람 때문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북한 내부에서 체제 이완 현상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데, 북한 핵심계층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보는가?

“과거 간부들은 고지식했다. ‘당과 수령을 위해서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살았던 사람들이다. 간부들도 세대교체가 되면서 사람들은 자기 안위를 생각하게 된다. 거기서부터 비리와 사심이 발생하는 것 같다.

사실 북한 간부들이 내적으로는 가장 먼저 변해 있다고 본다. 겉으로는 정권에 복무하며 자기 안위를 지키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언제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정권을 버릴 것이라 본다.”

– 북한 안에서 북한 실상을 써낸 시를 쓰기 쉽지 않았을 텐데..

“북한의 많은 작가들은 김정일 체제 안에서 그런 시를 쓸 수 있는가라고 물어 오는 사람이 있더라. 또 가지고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사명감을 가질 수 있는가라고 생각하더라.

북한에서 많은 작가들은 몰래몰래 체제를 비판하는 작품을 쓰고 있다. 그게 적발되어 정치범 수용소로 간 경우도 있었다. 나는 그게 작가의 양심이라고 생각한다. 보편화된 진실을 얘기하지 않고서는 울고 웃을 수 있는, 감동이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없다. 북한에서 작가야말로 양심과 갈등이 많은 사람들이다.

‘낙서’라는 제목의 시를 쓴 적이 있다. 정말 진실된 시를 쓰고 싶은데 체제를 찬양하는 시만 쓰라고 하니, 쓰기 싫어 낙서가 하고 싶다는 생각에 낙서라는 시를 만들었다.

그야말로 보편화된 진실을 얘기하지 않고서는 진실된 웃음도 울음도 있을 수 없다.”

– 북한이 대규모 아사 사태를 겪은 지도 10년이 지났다. 그 사이 한국 내에도 북한의 실상이 알려지긴 했지만 여전히 대다수가 북한문제에 무관심하다. 이런 모습을 보고 절망감을 느끼지 않았나?

“남한 사람들이 북한을 너무 이념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북한의 현실을 현실로 보지 않고, 정치적 잣대로 이해하려 했다. 여기에 앞장섰던 게 지난 10년 정부였다. 북한의 진실을 가리려고 하지 않았나. 덮으려고 덮으려 해도 뚫고 나오는 진실조차도 허위로 덮으려 했다.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북한은 더 이상 충격이 아니라고 인식하는 것 같다. 충격이라 할 때 호기심과 충동이 나오는데 북한의 우리민족끼리 전략과 좌파정권 10년이 진실을 진실로, 현실을 현실로 인식하지 못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정부 차원에서도 고민이 많을 것이다. 새 정부가 이념이 아닌 실용을 우선한다고 하니 북한문제도 있는 그대로 보편적으로 봐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