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회로 끝난 협상…향후 과제와 전망

지난 18개월간 9.19 공동성명 이행의 발목을 잡았던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가 마지막 해결의 순간까지도 암초로 작용하면서 결국 제6차 6자회담의 휴회를 초래했다. `가장 이른 기회’에 갖기로 했을 뿐, 차기 회담 일정도 잡지 못했다.

미국 일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불법행위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BDA 북한자금 2천500만달러를 ‘전액반환’하는 결단을 이끌어낸 미국내 협상파의 입지가 약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비정상적인 협상태도로 일관한 북한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되는 등 자칫 협상의 모멘텀이 약해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본국훈령’에 따라 본격협상을 거부한 김계관 부상 등 북한대표단이 ‘BDA 문제만 해결되면 현안 토의에 적극 임한다’고 언급해왔다는 점에서 BDA 문제가 조만간 해결되면 협상이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낙관론도 나오고 있다.

또 북한의 전형적인 협상전술을 재확인한 수확을 바탕으로 보다 면밀하고 계획적인 향후 협상 대응전략을 마련할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있다.

◇ BDA 암초로 현안 집중 논의 불발 = 지난 19일 미측이 BDA에 묶인 북한 자금 2천500만달러를 북측에 전액 반환한다는 방침을 발표하면서 협상장 주변에서는 ‘드디어 BDA 망령에서 벗어나는구나’는 기대감이 팽배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북한이 BDA 자금 반환 절차가 완결될 때까지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서지 못하겠다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다. 북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부상은 숙소인 주중 북한대사관에서 완전 칩거에 들어갔다. 물론 일부 실무급 인사들이 형식적으로 몇차례 양자회동 등에 응하긴 했으나 이는 전형적인 ‘사보타지(태업)’ 행위였다.

결국 비핵화 로드맵 마련과 그에 따른 상응조치 협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초기단계 60일 안에 해야할 핵시설 폐쇄.봉인, 그 다음 단계인 핵시설 `불능화’ 및 핵프로그램 신고에 대한 시간표를 만들겠다는 당초 기대는 빗나갔다.

특히 초기 60일 안에 이뤄질 신고 대상 핵 프로그램 목록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지 못함으로써 제2차 북핵위기를 야기한 고농축우라늄(HEU)의 실체 문제를 둘러싼 논의도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번 회의에 앞서 한국과 미국 등은 핵폐기 절차에 가급적 빨리 돌입하자는데 의견을 모으고 북한의 협상자세를 보면서 ‘초기조치인 폐쇄가 이뤄지면 곧바로 불능화 조치에 착수한다’는 방안을 제시할 계획이었으나 실무그룹회의에서 그 취지만을 설명했을 뿐이었다.

이와 함께 초기단계 이후 불능화 단계까지 북한이 받게 될 중유 95만t 상당의 지원을 비핵화의 이정표와 어떻게 연결할지에 대한 논의도 미뤄졌다.

당초 확정하려던 6개국 외무장관 회담 일정과 의제도 확정하지 못한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나마 이번 회기 중 BDA 문제가 최종 해결되면 핵시설 폐쇄.봉인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단 수용 등 초기조치를 이행하겠다는 북한의 의지를 재확인한 것은 성과로 여겨진다.

BDA 문제를 사전에 철저하게 대비했더라면 이번 회의의 성과를 담은 문서에 구체적으로 북한이 취할 초기조치의 내역과 그에 따른 상응조치가 명시적으로 담겼을 것이란 게 정부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또 6개국이 모두 참가하는 ▲에너지.경제협력 ▲비핵화 ▲동북아평화안보체제 분야 등 3개 실무그룹들이 이번 회담 직전인 15~17일 각각 1차 회의를 갖고 본 궤도에 올라선 것도 나름의 성과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향후 과제와 전망 = 허탈하게 끝나버린 회담을 바라보면서 그동안 목소리를 죽여온 미국의 강경파 등이 협상구도를 흔들려고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자국인 납치 문제를 부각시켜야 하는 일본내 일부 세력이 협상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상황을 조장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이번 사태는 해프닝’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오히려 파행 속에서도 북한이 60일 안에 이행해야할 핵시설 폐쇄.봉인과 IAEA 감시단 입국 등에 협조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점이나 실무급이긴 하지만 북한 대표단 일부가 지속적으로 협상장에 고개를 내민 점은 북한의 `기대’를 엿볼 수 있게 한 장면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BDA 문제가 해결되면 핵시설 가동중단을 시작으로 초기조치 이행에 북한이 공식 착수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오히려 이번 해프닝을 만회하기 위해 보다 속도를 내는 북한의 움직임도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초기조치 이행단계로 넘어갈 경우 우선 북측과 IAEA의 협의를 통해 핵시설 폐쇄.봉인의 시기 및 대상 등에 대한 협의가 순조롭게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협의에서는 우선 영변 5MW 흑연감속로와 재처리시설인 방사화학실험실 등 1994년 제네바합의시 동결대상이었던 5개 핵시설의 가동중단 절차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어 10명 이내로 예상되는 IAEA감시단이 북한에 입국하면 감시단 입회하에 북측은 핵시설 폐쇄를 진행하고 IAEA 감시단은 핵시설에 대한 봉인 조치를 이행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절차는 4월14일로 규정된 초기조치 시한(60일) 안에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그에 따라 초기조치 이행이 끝나는 대로 열기로 한 6자 외무장관 회담도 큰 변수가 없는 한 성사될 전망이다.

2단계로 상정되는 ‘불능화’ 단계에 대한 전망에 대해서도 낙관론이 우세하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회담을 끝내면서 “우리는 올해 안에 핵시설이 불능화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핵시설을 연내 불능화하기 위한 (초기조치) 다음 단계 시간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 뒤 “BDA 문제로 지연되긴 했지만 초기조치 이행이 계획보다 늦어지는 것은 아니며 북한을 포함한 모든 참가국들이 2.13합의 이행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불능화가 연내에 가능하다는 말은 이에 상응하는 에너지.경제지원과 함께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거나 적성국 교역법 적용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북.미 관계정상화를 위해서도 진전된 조치가 있을 수 있다는 말로 연결된다.

결국 앞으로 각국은 허망하게 날려버린 이번 회기를 만회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다만 이번 협상과정에서 보였듯 예기치 않은 변수로 협상의 진전이 어려워지는 상황을 충분히 감안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평양 수뇌부의 경직된 태도, 이로 인해 재량권을 상실한 북한 대표단, 이를 바라보는 각국의 불쾌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경우 자칫 6자회담 전체 국면이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외교소식통들은 보고 있다.

한 소식통은 “이번 협상의 특징은 시한을 정해놓고 구체적인 조치를 이행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북한측이 줄다리기 전술을 구사할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면서 “이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면서 `되돌릴 수 없는’ 불능화단계까지 이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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