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당은 인민과 한시도 떨어져 본 적이 없으며, 언제나 인민을 하늘처럼 섬기며 혁명을 전진시켜 왔습니다.”
지난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 열병식 및 평양시 군중시위에서 김정은이 연설한 내용의 한 대목이다. 이날 김정은은 일반의 예상을 벗어나 ‘인민’을 90여 회나 언급하며 남다른 ‘인민 사랑’을 과시했다.
김정은이 이 시점에서 ‘인민’을 화두로 들고 나온 데는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집권 4년차에 이르도록 그가 휘둘러온 잔혹한 칼부림의 기억을 떠올리면 영 뒷맛이 개운치 않다. 아니 뒷맛이 개운치 않은 정도에서 그친다면 차라리 다행이겠다. 25분 동안 이어진 김정은의 연설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어이없고 황당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워낙 자화자찬(自畵自讚)과 본말전도(本末顚倒), 후안무치(厚顔無恥)가 저들의 전매특허이자 브랜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즈음에서 그가 과연 ‘인민’을 내세울만한 염치가 있는지, 그가 조선노동당이 걸어온 자취를 제대로 알고 있기나 한 건지, 그 잘난 ‘주체혁명위업’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허다한 사건과 사례를 일일이 다 열거하는 것도 괴롭고 번거롭다. 그러니 몇 가지 예화만 되새겨보자.
1967년은 북한 역사에서 중대한 분기점이다. 형식적이나마 공산독재의 모양새를 유지해오던 북한 사회가 ‘수령제’라는 전대미문의 신정체제(神政體制)로 전락한 것이 바로 1967년이다. 이해 5월 김일성은 정치적 동지이자 강력한 지지 세력이던 박금철·이효순 등 갑산파를 일거에 소탕해 버렸다. 이와 동시에 김일성은 ‘인텔리 혁명’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중국의 모택동이 문화혁명을 시작하면서 지식분자들을 시골로 추방(追放)했던 것을 그대로 본 따 지식인들을 평양과 대도시에서 지방으로 쫓아내는 일대 깜빠니아(캠페인)를 전개했다. 이 광풍의 회오리 속에서 북한의 지식인과 그 가족들은 어느 날 갑자기 오직 머리에 ‘먹물’이 좀 들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낯선 오지로 내몰려야 했다.
지식인들을 혁명화·노동계급화 한다는 명분아래 전체 사회를 온통 들쑤셔놓은 이 ‘인텔리 혁명’으로 북녘 땅의 식자층은 죄인 아닌 죄인이 되었고, 불신과 저주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상황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북한에서 김일성과 그의 집안을 떠받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도서(圖書), 굳이 지식인이 아닌, 보통 사람 마음의 양식이 될 만한 교양서적까지도 모두 회수해 못 보게 하거나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북한판 갱유분서(坑儒焚書)였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당장 경제가 큰 타격을 받았다. 1971년부터 시작된 6개년계획부터 이후의 제2차, 제3차 7개년계획까지 허풍이 난무하고 조작과 허위 보고가 일상화되었다. 오늘날 북한경제가 저 모양 저 꼴이 된 것도 다 이때 그 씨앗이 뿌려진 것이다. 물론 김일성의 정치적 토대는 한껏 튼튼해졌다. 김일성은 일개 정치지도자에서 인민들의 정신세계까지 지배하고 통제하는 ‘신’의 반열에 올라섰다. 북한 사회는 이때부터 제정일치(帝政一致) 사회로 회귀하기 시작했다. 북한이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부자세습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도 이때 만들어 놓은 정치적 환경과 토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오늘날 김정은으로 3대 세습까지 판을 벌여놓고 ‘백두혈통’이니 ‘최고존엄’이니 하는 시대착오적인 말들을 ‘당당’하게 입이 올릴 수 있는 것도 ‘인텔리 혁명’의 ‘자랑스런 성과’인 셈이다.
김일성은 만년에 내놓은 회고록에서 ‘이민위천’(以民爲天)이 자신의 좌우명이라고 밝혔다. “이민위천이란 백성을 하늘처럼 여긴다”는 뜻이다. “소가 웃다가 꾸레미(꾸러미) 터진다”는 북한 속담이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길게 얘기할 것도 없다. 동족상잔과 부자세습, 인민의 노예화와 집단아사 …. 이런 것이 이민위천이란 말인가.
反인민적 행보에서는 김정일도 김일성에 결코 못지않다. 1993년 12월 제3차7개년계획이 실패로 결론나자 김정일은 엉뚱하게도 그 책임을 ‘인민의 잘못’으로 돌렸다. 그는 “우리 인민이 당(김정일)을 기만했다”고 인민 탓으로 돌렸다. 인민이 당을 기만했다니? “당과 인민이 혼연일체가 된 사회”라고 그토록 자랑해온 북한에서 가당키나 한 일인가 말이다. 그러고는 난데없이 “이제 인민은 군(軍)을 따라 배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귀에도 쟁쟁한 선군정치는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다. 선군정치는 막다른 상황에서 궁여지책으로 나온 처방이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김정일의 책임회피용으로 제시된 것이다.
김정은은 좀 다를까. 먼저 김정은의 이날 연설 한 대목부터 다시 보자. “우리 당에 있어서 인민들의 정치적 생명과 물질문화생활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볼보아주는 것은 한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제일중대사로, 본분으로 되어왔습니다.”
당이 인민들의 물질문화생활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돌보아주고 있다고? 그것이 소홀히 할 수 없는 제일중대사, 본분으로 되어왔다고? 전적으로 책임지고, 제일중대사·본분으로 여겨온 결과가 1990년대 중후반의 대아사(大餓死)이고 절대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오늘날의 북한 현실이란 말인가. 북한 전역에서 죽순처럼 생겨나 활성화되고 있는 시장(市場)은 또 뭐란 말인가.
김정은이 권력무대에 등장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악단(樂團)을 만드는 일이었다. 은하수관현악과 모란봉악단은 김정은이 최고지도자에 등극한 이후의 첫 작품이다. 그는 과거 아버지 김정일이 보천보전자악단과 왕재산경음악단을 만들어 흥청대던 것을 그대로 흉내 내기 시작한 것이다. 창전거리와 마식령스키장, 미림승마구락부, 서산골프연습장(평양 청춘거리) 등등. 김정일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내팽겨 치고 평양공화국 건설에만 골몰했다면, 김정은은 평양공화국도 버거워 창전공화국 치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민생을 책임진다는 어버이 수령과 어머니 당은 다 어디로 가고….
모르긴 해도 2000만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이 말하는 ‘책임’과 ‘제일중대사’를 기를 쓰고 사양할 것이 틀림없다. 어쩌면 인민들은 김정은의 연설을 듣고 속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제발, 우릴 책임 지지마!”
“조선로동당의 역사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영도 밑에 인민의 운명을 책임지고 조선혁명을 승리에로 이끌어온 자랑스러운 행로입니다”는 연설에서 보여준 김정은의 역사인식은 더욱 한심하고 형편없다. 허긴 그가 몰라서 그렇게 말했을까. 아닐 것이다. 그가 무슨 말로 어떻게 둘러대도 달라질 것은 없다. 역사는 세 치 혀로 바꿔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선노동당의 역사는 피로 얼룩진 피비린내의 역사, 인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무지의 성벽 안에 가둬놓은 ‘가두리의 역사’·‘우민화의 역사’라는 사실 정도만 얘기하자.
김정은의 연설에서 간과할 수 없는 단어가 있다. ‘주체혁명위업’이라는 말이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이 말을 두 번 사용했다. 종래의 관성에 비추어보면 상당히 절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그랬을까. 북한의 논리에 따르면, 주체혁명위업을 계승발전시켜 나가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존재하고, 숨 쉬며 살아가는 이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수령의 존재다. 왜냐하면 주체혁명을 계승발전시켜 나가는데 있어서 수령의 위치와 역할이 가장 중차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는 누가, 어떤 사람이 수령 또는 수령의 후계자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김정일은 생전에 자신이 후계자가 된 것은 수령(김일성)의 아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후계자로서의 자질과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해왔다. 북한의 고위 간부들이 연례행사처럼 치르는 ‘한 달 강습’의 핵심 주제도 이 내용이 거의 전부일 정도로 김정일은 이를 집요하게 학습시켰다. 김정일은 겉으로는 대범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세습 콤플렉스’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했다.
김정일이 후계자가 된 이후부터 죽을 때까지 부인하고, 부인하고 또 부인해온 혈통승계, 세습승계를 김정은은 하루아침에 엎어버렸다. 자신이 후계자가 되고, 수령이 된 것은 김정일 식으로 말해 ‘잘 나서’가 아니라, 김정일의 아들이고, 김일성의 손자이기 때문이라고 용감하게 ‘양심선언’ 해버린 것이다. ‘백두혈통’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주체혁명위업의 지도이념·지도사상은 주체사상이다. 주체사상에는 수령-당-대중의 삼위일체론에 근거한 승계이론은 있어도, ‘세습승계’·‘혈통승계’는 없다. 없는 정도가 아니라 부인하고 있다. 북한 사람들은 간부와 일반 주민을 막론하고 다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런데 김정은은 무슨 재주로 주체혁명위업을 ‘승리와 영광의 길’로 이끌겠다는 것인지. 그들의 경전(經典, 주체사상)이 그토록 금기시하는 ‘혈통승계’·‘세습승계’를 저질러놓고 어떻게 경전의 정신과 이상을 구현하겠다는 것인지.
그렇다고 주체혁명위업을 포기하겠다고는 더욱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스스로 외통수에 걸려든 것이나 다름없다. 25분간의 연설 속에서 ‘주체혁명위업’을 두 번밖에 언급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동안 간부들을 들볶다시피 해온 주체사상 학습을 김정은 등장이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연유도 여기에 있다. 마음에도 없는 ‘인민 사랑’, 구두선(口頭禪)의 ‘인민’ 타령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