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는 무슨? 대통령 오래 해먹으려는 수작이지”

북한은 내달 7일 평양에서 최고인민회의 제12기 4차 회의를 소집한다고 밝혔다. 최고인민회의는 북한의 최고 주권기관으로 우리의 국회에 해당하기 때문에 다루어질 ‘의제’ 등에 주민들의 관심이 집중될 것으로 예상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최고인민회의는 대의원들이 모여 전년도 예산을 결산하고 새해 예산을 편성한다. 국방위원회와 내각 등의 조직·인사 정비 등도 안건으로 오르지만, 김정일의 의중을 확인하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가해 실질적으로는 김정일의 지시를 추인하는 ‘거수기’ 역할을 할 뿐이다.   


때문에 주민들은 최고인민회의에 관심이 없다. 다만 뒤따르게 될 생활상의 불편을 고려할 뿐이다. 최고인민회의 개최 소식이 전해지면 북한 주민들은 일단 ‘열차 이용이 힘들어지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최고인민회의가 소집되면 철도성에서는 일주일 전부터 차표를 제한할 데 대한 포치가 내려진다. 포치에 따라 주민들의 열차 이용이 제한되고 회의 참가자들(대의원)을 위한 전용 칸(량)이 만들어진다. 최고 주권기관의 회의가 열리는 것에 따른 ‘주민 선전용’ 모양새 갖추기다.


대의원들은 회의시작 전날까지 평양에 도착해 사전등록을 마치면 되지만, 전력난 등에 따라 열차를 불규칙적으로 운행하기 때문에 보통 일주일 전에 집을 나선다.


대의원들을 위한 전용 기차 칸이 만들어져 평상시보다 좌석이 줄었을 뿐 아니라, 이 기간 열차표 검사도 강화되기 때문에 일반 주민들은 역에서 열흘 정도까지 열차를 못 타기도 한다. 극소수의 열차표가 판매되지만 이마저도 돈 있고 안면 있는 사람들의 몫이 된다.


북한 주민들은 최고인민회의를 한다고 하면 아예 여행을 포기한다. 어쩔 수 없이 열차를 이용해 장사에 나서는 사람들은 장기간 열차표를 구하지 못해 불만이 고조된다. 언제 열차가 운행될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역 앞에서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열차를 타지 못한 주민들은 “회의는 무슨 회의냐? 만날 회의를 해도 해결되는 게 뭐 있냐” “대통령(김정일 지칭) 오래 해먹으려는 수작이지, 백성들을 위한 회의가 아니지 않느냐?” 는 등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기도 한다.


한편 5년마다(1992년 4월 이전에는 4년) 실시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와 지방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 대한 주민들의 태도도 나날이 변해가고 있다. ‘100% 투표율에 100% 찬성률’도 이제 옛말이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아무리 먼 곳에 장사를 갔다가도 무조건 선거에 참가해 투표하고, 당일에는 춤을 추며 함께 선거일을 즐겼지만, 지금은 오히려 선거일 전에 식량 구입을 구실로 선거구역을 떠나는 이들이 많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선거 참여에 대한 북한 당국의 단속도 심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인민반별로 모여서 투표했기 때문에 투표율이 높았다. 투표를 안 할 경우 ‘반동분자’로 낙인찍혀 비판대에 오르기 때문에 주민들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참가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심각한 식량난에 따라 탈북자들이 많았지만 투표율은 100%로 보고됐다. 인민반장이 자기반 선거명단에 100% 참가를 표시해 동당에 보고하고, 이것이 도당을 거쳐 중앙당으로 집계되기 때문에 ‘100% 투표, 100% 찬성’이란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2000년 11기 대의원 선거 때 일이다. 고난의 행군 시기 탈북해 중국에서 돈벌이를 하던 함경북도 김책시 신평동에 살던 자매가 입북하다가 국경경비대에 잡힌 일이 있었다. 조사과정에서 자매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 참여하려고 조국으로 돌아왔다고 진술했다.
 
당연히 처벌이 예상됐지만 대의원선거 실태를 보고 받던 김정일이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 돼 “대의원 선거에 참가하려고 처벌을 각오하고 어머니 품에 들어오다니…참, 우리 인민들이 최고사령관에게 얼마나 충실한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고 하면서 무죄를 선포한 일도 있었다.


당시 이 같은 소식이 입소문을 타면서 탈북해 중국에서 떠돌던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큰 처벌 없이 용서받았던 일도 있었다. 한 때나마 그 사건으로 주민들의 선거의식이 높아졌다는 풍문이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계속된 식량난에 선거를 추동할 인민반장들까지 장마당으로 내몰리면서 최고인민회의에 대한 관심은 급하락하고 있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선거보다 하루 먹고사는 게 더 중요하다’며 장마당에 나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단속기관에선 선거 당일 장마당에 진을 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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