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선생이 남녘 동포에게 남기고 간 지혜

오늘(10월 10일)은 고(故) 황장엽 선생 2주기이다.


선생은 1997년 2월 12일 ‘조국의 다른 한쪽’인 대한민국으로 남행하여 2010년 10월 10일 서거하였다. 선생은 한국에 오신 후 북한문제와 관련하여 많은 것을 남기셨다. 그중에서도 핵심적인 몇 가지를 추려본다.


첫째, 황 선생이 남행함으로써 북한의 실체-진실과 허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북한현대사 60년의 앞뒤 맥락을 비로소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북한판 수령절대주의 체제가 김정일에 의해 설계, 건축, 관리되었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이로써 적지 않은 사람들이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한 후에도 북한이 붕괴되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되었고, 결국 북한에서 ‘의미있는 변화’는 수령절대주의 체제에서 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둘째, 국민들로 하여금 북한을 막연하게 뭉뚱그려 ‘북한’으로 사고하지 않고, 북한정권과 2400만 북한주민을 분리해서 사고할 수 있게 해주었다. 북한정권은 변화의 대상이지만 2400만 주민들은 우리와 함께 손 잡고 미래를 개척할 대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셋째, 북한의 실체를 정확히 알게 됨으로써 북한인권 운동과 민주화 운동이 사회역사 진보의 역사적 정당성을 갖고 진행하게 되었으며, 동시에 자유, 인권, 민주주의, 법치의 가치를 세운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을 재확인하는 데 기여하였다.


선생은 남북간의 기본 모순이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 간의 모순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대 전체주의 간의 모순이라고 명료하게 정리해 주었다. 


선생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뭔가 그림이 잘 안 잡혀져 있는 것을 정확하게 그림을 그려주었다. 북한문제와 관련한 선생의 업적은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를 분명하게 제시하였다는 점이다.


선생의 북한문제 해결의 길은 북한 수령절대주의 체제의 변화-개혁개방-남북교류협력-북한의 경제 정치 교육 사회문화 등 전 분야의 재건-남북주민에 의한 민주주의적 합의 통일이다.  


지금도 일부 북한 연구자들이 내놓는 대북구상을 보면, ‘무엇이 문제인지를 정확히 모르니까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도 모르는 경우’를 목격할 수 있다. 이른바 ‘남북관계’를 연구하다 보니, 남북관계 그 자체에 어떤 모순들이 많아서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아직 있다. 이들에게 황선생은 당대 최고의 명의(名醫)의 처방’을 주었다. 


황 선생은 북한에 개혁개방 정부가 들어서면 이때부터 진정한 남북간 화해협력과 평화통일을 진행할 수 있다고 보았다. 북한 핵은 마땅히 제거되어야 하지만, 핵문제만을 겨냥해서는 북한문제를 풀 수 없다고 강조하였다.


김정일은 2011년 12월 17일 사망하였다. 2010년 10월 황 선생은 서거 직전에도 불과 1년 2개월 뒤에 김정일이 사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예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만약 황 선생이 살아있다면 어떤 방식의 대북전략을 내놓을지 참으로 궁금하다. 김정일 사망 후 김정일식 권력의 유일영도체계는 사실상 무너지고, 김정은 김경희 장성택 최용해에 의한 ‘비균등성 권력분점’으로 이행하였다.


중국의 대북 개혁개방 권유와 이명박 정부의 압박으로 북한정권은 생존을 위해 농업분야에서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북한군 하전사들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귀순하는 현상도 오랫동안 누적된 군대 내부 모순에 기인한 일종의 ‘파생 현상’이다. 리영호 총참모장 숙청과 군대 외화벌이를 내각으로 이전한 데 따른 ‘간접 요인’도 있을 것이다.  


황 선생은 북한군 하급부대의 보급이 안되고 있다는 사실은 생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김정일은 없어졌고, 절대권력은 분점되었으며, 중국의 개혁개방 압박은 늘어나고, 화폐개혁 실패에 시장은 커졌고, 군대 내의 오래된 모순은 해결의 길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내연(內燃)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황 선생의 대북전략은 어떨까? 아마도 늘 말씀하신 ‘투 트랙 전략’이 아닐까 싶다.


북한정권과 북한주민들을 분리하여 대북전략 트랙 A, 트랙 B를 진행하는 것이다. 북한정권과 당국간 대화는 수면 위아래로 진행하면서, 대북지원은 실제로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어 북한주민들의 변화를 지원하고, 북한을 개혁개방화 시장경제화 정보자유화로 촉진하는 전략일 것이다. 이를 위해 안보를 튼튼히 하는 가운데, 중국과 과감하게 협력하는 전략을 중요시할 것이다.


김정일 시기의 대북전략이 압박과 고립, 정보유입 등으로 수령절대주의 체제를 흔들어놓는 것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북한정권의 권력분화를 가속화하는 남북당국간 대화와 압박, 그리고 전략적 지원과 교류를 병행하는 방식을 고려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핵보유국 인정요구’ 등 북한정권의 생존전략을 국제공조로 무력화하면서, 경제분야에서 북중 관계를 파고 들며, 시장화 촉진을 위한 민간교류와 정보자유화, 북한인권 중시 정책을 황선생은 적극 고려할 것 같다. 


모든 것이 변화하듯 북한도 ‘변하고 있는 만큼’ 변하고 있다. 사회역사의 변화를 추동하는 데서 정확한 정세 판단과 실천의 타이밍(時中)이 가장 중요하다. 그 적절한 타이밍이 5년 내로 보이는데… 황 선생은 여기에 과연 동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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