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에 도끼 보낸 ‘테러 협박범’ 아직도 못 잡나?

탈북자로 위장한 후 수년동안 간첩활동을 벌여온 원정화(34)씨가 구속됐다.

원씨는 군 간부들과 접촉해 군사기밀을 빼내고, 대북정보원 암살도 기도했다. 불행중 다행으로 원씨는 큰 공작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원씨가 빼냈다는 군사기밀 중에는 크게 눈에 띌만한 것이 없는데다, 정보원 암살은 실행조차 하지 못한 채 포기했다. 원씨는 결국 한국에 입국한 지 7년만에 검거됐다. 그러나 한국판 마타하리 사건으로 불리며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 여간첩 원정화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원정화는 중국에 거점을 둔 국가보위부 대남사업요원들로부터 전 조선노동당 비서 황장엽(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의 소재를 파악하라는 지령을 받았다고 한다. 2006년 4월, 탈북자 김모 씨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만나 북한 인권 현실을 지적한 것을 본 중국의 보위부 간부는 “이 새끼는 조국을 배반하고 남한에 갔으면 조용히 살지 조국을 팔고 다닌다. 황장엽이나 이놈은 불에 태워 죽여야 한다”며, 원정화에게 황 선생의 거처 파악을 지시했다고 한다.

다행히 원씨는 황장엽 전 비서의 소재파악에는 실패했고, 원씨는 소재 파악에 실패했다고 보위부 간부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보위부 간부는 “너는 왜 그렇게 요령이 없느냐. 마음이 해이해진 것 아니냐. 황장엽의 위치를 찾는 데까지 찾아보라”고 거듭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북한 대남 공작부서가 왜, 황장엽 위원장의 소재를 파악하려고 했겠는가. 좀 더 구체적인 수사결과를 지켜봐야 알겠으나, 짐작컨대, 기회가 오면, 황위원장에 대한 암살을 시도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노무현 정부 시절, 황장엽 위원장은 남한내 친김정일 운동세력들로부터도 여러 차례 협박을 당했다. 수사 당국의 소극적 대처 때문에 황위원장에 대한 협박범들이 아직까지 잡히지 않았다. 원정화 사건은 황위원장에 대한 북한의 위협이 단순한 공갈이 아닐 가능성을 높인다. 김정일이 친히 탈북자로 위장해 대남 공작활동을 강화하라는 지시를 내렸다지 않은가.

황장엽 위원장은 1997년 2월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 그리고 함께 공부하고 일했던 수 천 명의 제자와 지인들의 희생을 무릅쓰고 망명을 결행했다. 잔인한 폭력과 기만 속에서 고통 받는 인민을 위해 누군가는 나서서 비판하고 저항해야 한다는 양심 때문이었다. 노동자 농민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노동자 농민을 위한 이상사회를 건설해 놓았다고 선전하는 ‘미친 사회’를 구원해야 한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남한 동포들과 힘을 모은다면 김정일 독재를 끝내고 인민을 살릴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황선생은 우리가 북한의 개혁개방과 민주화를 끌어내는 데서 커다란 역할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정치적 파트너다. 그가 김정일 정권과 대남공작원들에게 생명을 잃는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으니, 한편으로는 황장엽 선생의 활동을 적극 보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철저하게 황 선생의 신변안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황장엽 선생이 망명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었다. 망명 당시 75세였던 그의 나이도 86세가 되었다. 지금도 그는 “나에게는 죽을 권리도 없다. 마지막 힘을 다해 투쟁할 의무만 있을 뿐이다”고 말하며 김정일 독재 반대 투쟁의 맨 앞에 서 있다. 그는 모든 것을 바쳤고, 최선을 다해 투쟁하고 있다. 이제 우리 차례다. 황장엽을 지켜야 한다. 황장엽에게 투쟁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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