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김정일 사망설’…언론이 똑똑해야 나라가 산다

때아닌 ‘김정일 유고설’로 서울과 베이징 외교가에서 한바탕 난리법석을 치른 모양이다.

26일 어느 언론사에서 ‘김정일 유고 의혹’이 제기되면서 청와대, 국정원, 국방부 등에 기자들의 문의전화가 빗발치는 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소동의 발단은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김정일의 군부대 방문’을 보도하면서, 한 곳이 아니라 이례적으로 두 곳의 군부대 방문을 보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북한 매체는 김정일의 신변안전을 위해 시차를 두고 대외활동을 보도해 왔는데, 이날은 동시에 두 곳의 군부대 방문을 보도하자 어느 언론사가 ‘뭔가 수상하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급기야 ‘김정일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는데 북한당국이 외부에 이 사실을 위장하기 위해 두 곳의 군부대 방문을 보도했을 수 있다’는 헛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언론사에서 의혹이 제기되자, 다른 언론사들도 ‘김정일의 신변에 이상이 없느냐’며 잇따라 국정원에 문의했다고 한다. 또 한국 기자들이 ‘김정일 유고설’을 취재한다는 소문이 돌자 정신이 번쩍 든 외신기자들도 덩달아 취재에 나섰고 급기야 소문이 베이징 외교가로 퍼져, 베이징 정보 소식통들이 손에 쥐가 날 정도로 전화번호를 눌러댔다고 한다.

물론 이 소동은 국정원이 ‘사실무근’임을 확인해주면서 가라앉았지만, 소동의 과정을 보면 좀 황당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27일자 어느 일간지는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방문하는 시점에 북한이 한국과 중국을 상대로 ‘김정일 유고설’을 흘림으로써 김빼기 내지는 물타기를 시도한 ‘심리전’일 가능성이 있다”는 베이징 정보관계자의 견해를 인용했다.

참 한심한 일이다. 그 ‘정보 관계자’가 누군지 알 수 없지만 실제 그런 말을 했다면 그 사람은 ‘정보 관계자’가 아니라 만화에 등장하는 ‘바보 사립 탐정’이거나 ‘소설가’로서 매우 우수한 자질을 가진 사람일 가능성이 더 높다. ‘심리전’이 됐건, ‘속임수'(詭道)’가 됐건 만약 북한당국의 누군가가 ‘김정일 유고설’을 흘렸다면 그는 불과 1~2시간 내 체포될 것이고 필요에 따라 공개처형될 수 있다.

북한은 수령절대주의 국가다. 수령은 곧 국가이며, 인민이다. 북한의 공식 수령은 김일성이고, 김정일은 수령의 대리인, ‘장군님’이다. 물론 지금 북한에서 김정일의 절대권위가 많이 손상됐지만 체제 운영의 형식은 수령주의 그대로다. 김정일의 지시와 말씀에 따라 그대로 움직인다. 따라서 ‘장군님의 유고설’을 퍼뜨린다는 행위 자체가 곧 ‘공화국을 뒤엎으려는 반란죄’나 ‘미제고용 간첩죄’가 되며, 끝내 ‘3대(代) 멸족’으로 가게 된다. 따라서 ‘심리전의 일환’으로 김정일 유고설을 퍼뜨렸다는 주장은 그 사람이 낮술에 엄청 취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말’로써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무슨 이론적으로 설명할 것도 없이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 7월까지, 근 50년 동안 북한당국이 ‘대남 심리전의 일환’으로 김일성 유고설을 흘린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따라서 ‘심리전의 일환으로’라는 말은 사실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기 공상’일 뿐이고, 이런 ‘공상’을 해부해보면 결국 ‘북한의 수령절대주의가 현실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가에 무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간단히 말해 지금 북한의 체제운영 단 한가지 목적은 ‘장군님(=수령=혁명의 수뇌부) 결사옹위’다. 이것이 알파요 오메가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실 이번 소동의 발단도 ‘공상’에서 시작됐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김정일의 군부대 방문은 대체로 인근 별장(특각)에서 2~3주간 김정일이 실컷 놀다가 하루 이틀 짬을 내서 방문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 이것이 노동신문 등에 김정일의 군부대 방문 사진 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미국 정보기관들은 이 같은 김정일의 동선(動線)을 이미 언론에 알린 바 있다. 따라서 군부대 방문은 부차적인 것이고, 특각 방문이 주목적인 셈이다.

어느 언론사가 조선중앙통신이 김정일이 두 곳의 군부대를 동시에 방문한 사실을 보도한 것을 ‘수상하다’고 착상한 것 자체는 탓할 게 못된다. 북한을 담당하다보면 그런 실수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소동을 계기로 언론사 북한담당 기자들이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북한체제는 거대한 ‘프로파간다'(propaganda=선전) 체제다. 구공산권 자체가 거대한 프로파간다 사회였다. 거의 모든 파시즘은 반드시 거대한 프로파간다가 있어야만 생존이 가능하다. 북한은 구공산권보다 훨씬 더하다. 게다가 김정일은 1964년 당사업을 시작한 이후 선전분야에서 산전(山戰) 수전(水戰) 공중전에 우주전(98년 발사한 미사일을 ‘인공지구위성 광명성 1호’라고 선전)까지 거친 사람이다. 쉽게 말해, 김정일은 선전 공갈 분야에서 전세계에서 단연 톱 클래스다. 지금 김정일을 좀 흉내내려는 녀석이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도인데, 필자가 보기에 김정일의 상대가 되기는 어렵다.

하여튼, 북한 선전매체가 김정일의 동정을 보도하면, 그것이 대내용(북한주민용)으로 어떤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김정일의 군부대 방문 보도는 첫 번째가 대(對)북한주민 선전용이다. 김정일이 군부대 방문 보도가 던지는 메시지는 김정일이 주민들에게 ‘우리는 지금 (준)전시 상태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전군, 전민은 나를 중심으로 일심단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군부대 방문 보도 자체가 북한주민 프로파간다의 일환인 것이다.

두 번째가 대외 선전용이다. 특히 남한과 미국에 던지는 메시지다. 지난 50여년 해온 ‘한반도는 아직 군사분쟁 중’임을 계속 환기시키고 ‘우리를 건드리면 좋지 않다’는 메시지의 연장선에 있다.

따라서 이번 소동의 원인이 된 ‘두 군데 군부대 동시방문’도 그런 선전 차원에서 이해하면 ‘김정일 유고설’이라는 ‘자기 공상’을 제어하는 데 일정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김정일 유고설’ 소동을 보면 언론이 똑똑해야 나라가 똑똑해진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기자들이 사회적 사명감을 크게 가져야 한다. 기자가 똑똑해야 나라가 사는 것이다.

그 나라의 국민 수준은 대체로 그 나라의 언론수준 및 정치수준에 비례한다. 민주주의 수준이 낮은 나라는 언론도 수준이 낮고 따라서 국민들 수준도 낮다. 해외여행을 가서 그 나라의 전체 수준을 알려면 TV 프로그램을 살피면 도움이 된다. 프라임 타임에 뉴스가 얼마나 자주, 또 긴 시간으로 편성돼 있는가, 다큐멘터리, 교양물, 드라마, 코메디 등의 비율은 어떤가 등을 따지면 그 나라 국민들의 수준을 대강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미디어 내용의 수준이 곧 그 나라의 수준이 되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가 꼭 그랬다. 방송을 비롯한 언론이 무능하니 나라가 어려워진 것이다. TV에서 연예인들이 국민들을 ‘가르치는’ 지경까지 우리사회가 곤두박질 쳐졌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무능한 KBS 사장 한 명을 아직도 내보내지 못하고 있다. 말을 해서 듣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 우리 사회가 ‘공공의 매’를 들든가, 검찰이 나서서 벌주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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