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개혁’ 北 절박감 드러내…정권 충성도↓

17년만에 전격 단행된 북한의 화폐개혁이 향후 북한 경제 및 사회 전반에 미칠 파장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은 12월 1일을 기점으로 구화폐와 신화폐를 100:1의 비율로 교환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1인당 교환가능한 액수는 가구당 15만원이며, 1가구당 30만원까지 적금으로 예치 가능토록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의 화폐개혁은 건국 이후 총 5차례 이뤄졌는데, 북한의 체제 정비 강화 시점과 일치된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화폐개혁도 북한 3대세습과 핵협상 등의 문제가 상존한 시점에서 전격적으로 실시됐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17년만의 화폐 개혁…인플레 잡기 위한 ‘임시방편’


북한이 17년만에 화폐 개혁을 단행한 것은 임금과 생필품 가격을 대폭 인상한 2002년의 7·1 경제관리 개선조치 이후 생겨난 인플레이션을 잡기위해서다. 100대 1의 비율로 화폐를 교환해 시중 통화량을 줄이고, 물가를 낮추기 위한 조치라 할 수 있다.


북한 경제는 지난 1990년대를 기점으로 회생불능의 상태에 빠졌다. 원자재 부족과 생산시설 노후 등으로 인해 생산활동은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졌고, 수요와 공급의 극심한 불균형 상태를 가져왔다. 배급이 중단된 후 주민들이 자생적으로 형성한 시장을 통해 현금 유통이 확대됐고, 공급량의 부족은 자연스럽게 인플레이션 현상을 가져왔다. 


조동호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인플레의 요인을 쌓아왔다”며 “북한 당국은 7·1 조치 이후 주민들에게 각자 알아서 먹고 살라고 했다. 이후 중국에서 원자재를 수입한거나 나름대로 장사행위를 통해 돈이 돌기 시작하면서 물건 값도 올라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돈이 많으면 물자 공급에 비해 수요가 커지고, 당연히 물가가 오르게 된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물자 공급을 늘려야 하지만, 북한으로서는 그럴 여력이 없다. 또한 일반 경제 체제에서는 국가가 돈을 흡수하기 위해 이자율을 올리는 금리정책을 취하지만 북한은 이 마저도 쓸 수 없기 때문에 화폐 개혁이라는 방법을 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도 “인플레란 기본적으로 생산에 비해 돈이 많은 상태를 말한다”며 “화폐량을 줄이면 물가가 떨어지고 인플레를 억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이 화폐 개혁이라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는 임기응변적 조치에 불과하고 실물적 효과는 없다고 봐야 한다”며 “화폐 개혁을 실시한 그 시점에는 일시적으로 물가가 떨어지겠지만 북한이 만들어내는 생산량이 적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유지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물 생산 부분, 금융시스템 부분의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일시적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최수영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인플레를 억제하기 위한 근원적 해결책은 물자 부족을 해결하는 것”이라며 “화폐개혁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당장은 효과가 있겠지만 북한의 물자 부족 현상은 지속적인 것이기 때문에 결국 시간이 지나면 예전 상태도 돌아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시장’ 통제 효과…北 계획 경제 강화 의지


이번 화폐 개혁은 표면적으로는 인플레 억제라는 경제 목표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비춰지나, 정치적인 요인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번 화폐개혁은 150일, 100일 전투에 이어 북한 당국이 계획 경제·공식 경제를 정상화시키는 과정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지난 4월부터 잇달아 노력생산운동을 벌이며 노동력을 계획 경제에 다시 포함시키는 조치들을 취해왔다.


또한 경제난으로 인해 활성화 된 시장의 자본주의 요소를 억제하기 위한 조치로도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은 지난 2005년부터 시장 통제 정책을 취하려고 했으나 주민들의 반발 등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혀 왔다. 따라서 이번 화폐 개혁을 통해 시장을 통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현금 유통을 억제하고, 상거래 활동을 축소시키겠다는 복안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조 교수는 “화폐 개혁을 통해 ‘계획 경제를 정상화시키겠다’는 북한 당국의 강력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며 “북한은 150일 전투라는 이름으로 국가의 통제 밖에 있었던 노동력을 계획 부분에 포함시켰다. 이번에는 돈을 계획 경제의 범주 안에 포함시키기 위해 화폐 개혁이라는 방법을 쓴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 당국은 계획 경제가 무너지면서 어쩔 수 없이 시장을 보조적인 수단으로 활용했지만, 시장은 점차 확대 양상을 보이고 물리적인 통제 정책도 실행에 옮겨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는 “화폐 개혁을 하면 시중에 유통되는 돈의 규모가 작아지기 때문에 장사가 축소될 수 밖에 없고, 결국은 계획 경제를 정상화시키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 연구위원도 “북한 당국의 입장에서는 거래와 교환, 화폐 유통 등을 통해 소통의 장소가 된 시장이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며 “시장의 활성화는 정도가 넘어서면 체제의 위협 요소로 작용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를 억누르려고 하는 것도 화폐 개혁의 목적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체제에 충실한 중산층의 ‘정권 신뢰’ 무너져”


전문가들은 이러한 화폐정책은 정권에 충성을 바치는 중산 계층에 대한 타격으로 돌아와, 오히려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을 높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충격을 줘서라도 풀려 있는 돈을 환수하겠다는 이번 화폐개혁은 북한이 그만큼 절박한 상태라는 것을 보여준다”며 “절박한 시도이기는 하지만 실물 경제 면에서는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올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좋지 않은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북한 당국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게 될 것”이라며 “화폐 개혁은 달러를 많이 갖고 있는 상류층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북한 화폐를 주로 보유하고 있는 일반 주민들에게는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로 인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확대되고, 체제에 충실한 일반 사람들은 정권을 믿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한편, 조 교수는 “핵심은 화폐개혁과 함께 물자공급도 늘릴 수 있느냐는 것”이냐며 “여기에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먼저 북한이 요 근래 플러스 성장을 했고, 150일 전투 등으로 나름대로 물자 공급 능력에 자신감이 생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부적 공급 능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외부의 지원이나 남북경협 등에 대한 희망이 반영된 것 같기도 하다”며 “북미대화나 6자회담 진전 등 핵문제가 잘 풀려나가리라는 것을 염두해 둔 조치라면 향후 북한이 지금보다 유화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도 가능하다”고 조심스럽게 관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