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개혁이 김정일 체제에 미치는 위험성

북한의 화폐개혁 실시는 지난해 11월 30일 북한전문 매체 데일리NK에 의해 세계에 처음 알려졌다.


북한 당국의 입장을 대외적으로 대변해온 재일조선인총연합(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그로부터 나흘 후 평양발 기사를 통해 “11월 30일부터 국가적인 조치에 따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은행이 발행한 새 화폐와 지금까지 써오던 낡은 돈을 바꾸는 화폐교환사업이 전국에서 일제히 진행되고 있다. 거주지들에 조직된 화폐교환소에서 6일까지 사이에 진행된다”고 전했다. 우리 정부는 이 보도가 나와서야 북한의 화폐개혁을 사실로 확인했다.


조선신보는 이어 “교환비률(율)은 100대 1로 한다. 전반 가격수준은 국가적으로 가격조정조치를 취한 2002년 7월 1일의 수준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화폐교환 액수에 상한선이 있다는 사실은 공개하지 않았다. 북한 내부소식통들에 따르면 4인가족 기준으로 50만원(구화폐)까지 교환이 가능하다. 그 이상의 보유 현금은 휴지조각이나 마찬가지다. 화폐개혁 실시 이후 당국은 노동자와 농민에게 1600원~4000원 사이에서 임금을 지급했다.


농민들에게는 생산 성과에 따라 1년치 임금을 일시불로 지급했다. 100:1로 화폐를 교환하고 임금을 이전 수준으로 지급하면서 노동자 농민은 임금이 기존에 비해 100배 상승한 효과를 누렸다. 이는 물가를 안정시키고 노동자, 농민의 소득은 증대시키려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의도가 들어있다.


북한 당국이 화폐개혁을 실시한 의도는 이 교환액수 상한선과 농민 노동자 임금 지급에서 잘 드러난다. 당국은 주민들이 시장을 통해 자발적으로 축적해온 자본을 박탈하고 국가의 재정 능력을 확대해 노동자 농민에 대한 통제력 강화를 시도했다.


즉, 시장세력으로부터 자본을 환수해 노동자, 농민에게 베풀어 부를 재조정 하는 방식이다. 이는 시장세력을 위축시키고 노동자 농민의 국가 의존도를 늘리기 위한 시도이다.


이는 북한 당국의 시장 장악에 앞서, 국가에 의지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자생적인 사고방식을 바꿔놓기 위해서다. 시장세력 탄압 배경에는 국가보다는 시장, 김정일 보다는 돈을 중시하는 사회 풍조가 체제유지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북한이 화폐개혁을 실시한 지 두 달이 넘어가고 있다. 그 사이 시장은 통제됐고 물가와 환율은 폭등했다. 화폐개혁 이전 쌀 1kg이 2500원 선에서 거래됐기 때문에 디노미네이션(액면 절하)을 실시하면 가격은 25원이 된다.


북한 관리가 화폐개혁 당시에 물품 가격은 2002년 7.1 조치 당시에 근거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를 조합하면 쌀값은 25원~45원 사이에서 결정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 쌀값은 고공행진을 거듭하면서 350원에 거래되고 있다. 환율은 1달러에 400원 수준이다. 환율도 화폐개혁 이전과 비교하면 10배 정도 뛴 상태다.


물가가 폭등하면서 임금지급 당시의 월급인상 효과도 이미 사라졌다. 평균 임금이 신화폐로 2000원인 노동자도 월급으로는 쌀 7kg 밖에 사지 못한다. 당장 노동자 집단거주 구역에서 식량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또 물가를 안정시키고 노동자, 농민에게 안정된 생활력을 국가에서 보장하려고 했던 의도 또한 실패로 귀결되고 있다. 북한 당국은 2월 4일 시장 물품가격 상한선을 전격 발표했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이 발표가 무시되고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고 주민들은 전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기본적으로 시장활동은 국가가 계획하고 의도한 활동이 아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국가와 자신을 분리하며 개인주의적 성향을 높인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화폐개혁은 시장활동을 해도 국가의 통제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키고 언제든지 국가가 시장 활동에 개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북한의 의도는 정반대의 효과를 낳고 말았다. 먼저 북한 주민 다수는 돈을 벌어서 먹고 살고 있다. 돈이 있으면 식량도 살 수 있고 난방도 보장할 수 있으며, 입당도 가능하고 아이들을 좋은 학교에 보낼 수도 있다.


생존의 수단인 돈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의 좌절감은 매우 컸다. 화폐개혁으로 인한 심리적 좌절감이 북한 당국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며 최근 북한 관리들에 대한 보복 폭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북한 당국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조치가 당국과 지도자에 대한 뿌리 깊은 불만으로 이어지고 만 것이다. 또한 상승하는 물가와 환율은 북한 당국의 정책 신뢰도에 대해 회의감을 높이면서 결국은 주민들이 더욱 시장에 매달리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결국 북한 당국과 김정일이 의도한 것은 시장세력의 자본을 몰수하는 일차적인 효과를 거두었지만 북한 당국과 화폐에 대한 구조적인 불신을 만들고, 시장을 통해 먹고 사는 계층, 이른바 중산층을 체제 불만세력으로 만들어 버린 부작용을 불러오고 말았다. 바로 이 점에서 화폐개혁의 체제에 가져올 위험성이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