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약 놀이로 경비대까지 혼비백산 만든 내 친구들…

▲ 북한 소(초등)학교 여학생이 학교가 끝나자 자기 키만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다. ⓒ데일리NK

“선배! 북한은 어때요? 이렇게 눈 오는 날 말예요? 거긴 눈도 많이 오고 뭔가 재미있는 추억도 있을 것 같은데?… ”

‘음, 추운 겨울날의 재미있는 추억이라.’

남한 친구들의 물음에 잠시 생각을 고른다. 뭐가 있드라?… 그래, 겨울이면 나무하러 다니는 게 일이지만,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일도 있지.

내가 살던 양강도 혜산시는 북한에서도 제일 춥고 눈이 많이 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영하 20도를 넘기가 일쑤지만 설날이라도 되면 술에 취해 동무들과 흔들거리며 거리를 돌아다니던 추억들도 있다.

300원이면 중국산 지총(명절 때 중국에서 터뜨리는 폭죽 알) 70알을 살 수 있다. 까짓것, 술 한 병 안 마실 셈 치고 한사람 백 원씩 내서 지총을 산다. 아이들도 젊은이들도 지총 터뜨리는 놀이를 참 좋아한다.

장난이 심한 친구들은 압록강 제방 길에 숨어 기다리고 있다가 얼음구멍에서 빨래하고 올라오는 아낙네들의 빨래함지 위에 지총 한 알에 불을 붙여 슬쩍 올려놓으면, 조금 뒤에 꽝! 혼비백산한 아낙네는 땅바닥에 쓰러지고 빙판길에 빨래가지들이 쫙 널린다.

조금 뒤엔 지총소리를 듣고 경비대 녀석들 총을 메고 씩씩 거리며 뛰어와 “어느 XX야! 누구야!” 왝왝 소리를 질러댄다. 악에 받친 아낙네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누가 그랬기에?’ 시침 뻑 따고 나몰라 하면서 숨어버리면 그만이다. 남한 사회에서는 위험한 행위로 경찰에 붙들려갈 수도 있지만 뭐 북한에선 그렇지 않다. 들키는 날엔 경비대 근무를 방해했다고 몇 대 얻어맞을 수는 있다. 그러나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

진짜로 재미있는 건 설날이다.

멀쩡하게 길옆에 서서 곱게 차려입고 돌아다니는 처녀애들을 노리고 있다. “이 놈 계집애들, 알랑거리며 다니지 마! 오늘 일 년 운이 쑥 빠지는 날이다” 귀밑을 덮는 머리에 멋을 부리느라 옷에 달려있는 모자도 쓰지 않은 멋쟁이를 고른다. 모자 속에 지총 한 알 불을 붙여 슬쩍 집어넣으면 잠시 후 가관이다.

“꽝!” 하는 소리와 함께 여자애들 무리는 사방으로 모두 흩어지고 곱게 분을 바른 처녀애들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된다.

지총 집어넣은 놈이 먼저 소리 지른다. “어느 새끼야? 처녀들 놀라지 않아, 너야? 아니면 너?” 서로가 번갈아 가며 딴청을 피우면 여자애들 쪽에서 악을 박박 쓰며 물러간다. “미친 XX들아! 똥수간(변소)에 빠져라.” 너무 심한 장난이라고 생각되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던 그 시절도 그립다.

2003년 1월 18일에는 인분과 얽힌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새해 ‘공동사설’이 나오고 1월 20일까지 매 공장들과 인민반들에서 한 사람당 300kg씩의 인분(人糞)을 무조건 바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근데 ‘물감자’ 같은 우리 공장 지배인 동지와 초급당 비서동지께서 설날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인분을 퍼낼 변소를 미리 점령하지 못했다. 다른 직장들은 설전에 미리 인분 바칠 것을 예견해 주변의 변소들을 자기들의 소유로 정하고 인분들을 퍼내고 있는 중인데 말이다.

나, 참… 변소는 많은데 우리 공장에서 똥을 퍼낼 변소는 없다. 공장에서는 매 개인당 자체로 인분과제를 해결하라고 닦달인데 우리는 공장과제 절반도 못했다. 당장 1월 20일 기관장회의(공장 지배인 비서들 회의)에서 검열 하는 날이면 인분과제를 수행하지 못한 우리 지배인, 비서동지가 목이 달아날지도 모른다.

다급해진 지배인, 비서가 공장 작업반장들을 들볶아댄다. 그러자 반장들이 우리에게 선포하기를, “농장에 가서 사업하든 어데 가서 훔쳐 오든 작업반 인분과제를 해결하는 놈은 2월 16일(김정일 생일)까지 휴가를 준다!”

‘흐흐흐~ 장군님 탄생일까지 휴가라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휴가를 타내기 위해 서로가 정찰을 다닌다. ‘어디 가야 똥을 도둑질 할 수 있지?’ 그러던 중 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선영 누이가 우리에게 귀중한 정보를 줬다.

제지공장 마당에 인분을 쌓아 놓았는데 경비가 허술하다는 것이다. 친구와 함께 가 보았더니 판자로 된 울타리 너머 공장 마당에 인분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주머니에 담아 놓은 것을 보니 내일쯤이면 농장에 실어갈 것이 분명했다.

오늘 밤에 해치워야 한다. 공장 자동차 운전수인 친구를 불러 제지공장 인분을 훔쳐 낼 방법들을 연구했다.

그날 밤 9시 30분. 한국 같으면 초저녁이겠지만 북한은 그 시간이면 거리에 사람 그림자도 찾아보기 힘들다. 제지공장 경비실 앞에 선영누이와 경옥이가 썰매를 끌고 갔다. 경비실에는 환갑이 넘어 보이는 경비원과 젊은 청년 한 명이 있었다.

미리 짜놓은 각본대로 선영이와 경옥이가 경비원들과 협상했다. 술 두 병을 주겠으니 인분 네 마대(주머니)만 달라는 것이었다. 안주 감으로 땅콩 한 봉지도 미리 준비했다. 술을 본 경비원들이 쉽게 응했다. 서너 마대쯤이야 표시가 날까 하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짜식들, 걸려 들었다!’ 우리가 준비한 술은 선영이 엄마가 집에서 특별히 빚은 50%짜리 술이다. 선영이네 집에서 세 시간동안 술잔을 주고받으며 주패놀이(카드놀이)를 했다. ‘이젠 경비원들 술에 취해 자겠지’ 하고 나와 친구가 경비실에 접근해보니 아닌 게 아니라 코 고는 소리가 요란하다.

운이 좋게 우리가 작업(?)을 시작하려고 하니 솜뭉치 같은 눈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공장차를 몰고 마당에 들어섰다. 경비원들이 잠에서 깬다고 해도 수적으로 우리가 우세하니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처녀애들까지 동원되어 30분 동안 마대(자루)를 열심히 주워 담으니, 승리자동차(3톤 적재의 북한산 자동차)를 다 채울 수 있었다. 인분을 실은 적재함 위에 타고 대담하게 공장을 빠져 나오는데도 경비원들은 어찌나 깊이 잠들었는지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밤이 깊어지며 눈이 더욱 세차게 내렸고 바람까지 불어서 흔적도 남지 않을 것이다.

아침에 공장 창고에 쌓아 놓은 인분을 보니 기분도 흐뭇했다. “짜식들! 술 두 병이 공짜인줄 알았어? 지금쯤 죽어라 혼나고 있겠지? 흐흐흐… ”

눈이 오니 그때가 생각난다. 올해도 초등학교 학생들까지 총 동원되어 인분 모으기를 한다는 소식들이 전해지고 있다.

그날의 동무들… 지금도 어딘가에서 인분을 훔치려고 열심히 주변을 살필지도 모른다.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오겠지. 통일 되는 날이면 함께 온 거리에 폭죽을 터뜨리며 날리는 눈송이를 즐기자! 울면서 웃으면서 술도 실컷 마셔보자! 친구야!!

김호영(가명 양강도 혜산시 2005년 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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