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상봉 “제사까지 모셨던 오빠가 살아있다니…”

제60주년 광복절인 15일 오전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대구 중구 달성동)에서 이뤄진 남.북한 이산가족 화상상봉에서 북에 있는 오빠 김경식(73)씨를 만난 김기복(68.여.경북 울진군 온정면)씨는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는 듯 말끝을 흐렸다.

화상을 통해 50여년간 헤어져 살았던 늙은 오누이는 호적에 오른 이름이 아니라 어릴 적 집안에서 불렸던 이름으로 서로를 확인한 뒤 예정돼 있던 2시간보다 훨씬 짧은 45분만에 담담하게 대화를 마쳤다.

그러나 경식씨는 가족들과 헤어져 있던 북에서 생활한 긴 세월에도 잊어 버리지 않은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해 고향이야기를 하며 여동생과 한 핏줄임을 확인했다.

또 경식씨는 북쪽에서 대학까지 마치고 결혼까지 해 4남매를 두고 훈장까지 받았으며, 방이 3개나 딸린 아파트에서 유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하며 여동생을 안심시켰다.

김씨 남매가 헤어진 것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어느 여름 날.

기복씨는 “남매 중 셋째였던 오빠가 한국전 발발 당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학업을 포기한 뒤 집안일을 돕던 중 집안 마당에서 잠을 자다 갑자기 사라졌다고 기억을 되살렸다.

이후 일제 말기 강제징용에 끌려가 행방불명이 된 장남과 전쟁 통에 행방이 묘연해진 셋째 아들을 걱정하다 아버지는 화병으로 숨졌고,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형제들도 하나 둘씩 세상을 등졌다.

이후 세상에 혼자 남게된 기복씨는 조카들과 함께 생활하며 이미 세상을 떴을 것이라 생각하고 18년전부터는 경식씨의 제사까지 모셔왔다고 한다.

기복씨는 “짧은 대화였지만 오빠가 북쪽에서 건강하고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해 안심이 된다”며 “‘하루 빨리 통일을 이뤄 만나자’는 오빠의 마지막 말처럼 통일이 빨리 오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화상상봉장에는 일제 때 강제징용을 갔다가 실종된 경식씨 큰 형의 자녀인 김정식(65)씨와 순덕(62.여)씨가 자리를 함께 하며, 오랜 기억 속의 작은아버지 모습을 되새겼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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