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상봉 생색내기, 보는 사람이 더 답답

이산가족 화상상봉이 15일 아침 오전 7시 40분을 기해 남북 적십자 총재들의 화상대화를 시작으로 막을 올렸다. 8시부터 시작된 화상상봉은 남북 각각 20 가족씩 40 가족이 화상을 통해 만난다.

한 가족이 갖는 상봉시간은 각각 1-2시간 정도다. 한 두 시간만에 분단 60년 세월의 그리움과 한을 털어야 한다.

첫 번째로 화면에 비쳐진 김매녀 할머니(99)는 1948년 5월 맏아들을 만나러 남한에 내려왔다가 38선이 막혀 57년 동안 북녘의 딸과 헤어져 살아야 했다는 기막힌 사연을 전했다.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북녘의 딸의 목소리를 의식하지 못하는 듯, 스크린 앞의 분위기는 안타깝기만 하다. 1년 전부터 뇌졸중으로 입원한 김할머니는 딸의 안타까운 외침을 듣고도 한마디 안부를 전할 수 없는 식물인간이 되어서야 화면 앞에 나선 것이다.

이산의 응어리진 아픔이 어찌 김할머니 한 사람뿐이겠는가?

화상상봉은 생색내기

화면을 마주한 남북 가족들의 모습은 2000년에 있었던 상봉모임에 비해 한층 답답한 분위기다. 두 팔 벌려 안아보고 싶어도 안을 수 없고, 정든 목소리를 듣고 싶어도 전류의 흐름을 타고 변해버린, 귀에 익은 목소리가 아니다.

이들 사이를 가로막은 스크린이 야속할 뿐이다. 어찌 60년 동안 쌓이고 쌓인 그리움이 한 두 시간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한마디로 화상상봉은 생색내기다. 서로 부여안고 목청 터놓고 오열해도 모자랄 판에, 방안에 갇혀 서로 빈손으로 허공을 허우적거린다. 이것이 상봉을 신청해놓고 몇 년을 기다려온 결과란 말인가.

화상으로 만나니 이산가족 1세들도 감정이 저조되어 두 번째, 세 번째 말을 잇지 못하고, 곁에서 지켜보는 2세들의 표정은 담담하기만 하다.

“장군님 은덕에 잘 산다”, 北 주민도 답답한 앵무새

그 짧은 시간에도 북측 가족들은 “우리는 수령님의 은덕에 잘 살았소”라며 판에 박힌 말만 하고, 남측 가족은 할말을 잃을 뿐이다. 북한이 못 사는걸 누가 모르나. 구태여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앵무새처럼 해야 하는 북녘의 가족들 모습도 애처롭기만 하다.

까만 머리로 염색하고 가슴에 훈장을 주렁주렁 단 북녘 가족들의 말처럼 당의 은덕으로 잘 산다면 훈장을 한 자루 받고도 굶어죽은 그많은 ‘공로자’들은 지금 무덤에서 뭐라고 할까,

대한적십자사 통계에 따르면 지금도 한해에 4천~ 5천여명의 이산가족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 이번 화상상봉에 참가한 사람은 226명,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이산가족 신청자는 12만 명, 현재 생존자는 9만여 명이다. 지금처럼 한번에 2백명씩 상봉하면 어느 세월에 얼굴이라도 한번 볼 기회가 있겠는가.

해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1세들의 그리움을 외면한 채 세월은 한해 두해 야속하게 지나가고 있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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