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 간첩사건’ 정쟁화는 백해무익하다

화교 출신 간첩사건의 증거조작 문제를 놓고 공방이 뜨겁다. 화교 출신의 중국 국민인 유우성 씨가 탈북자로 남한에 들어와 위장 취업했다가 간첩으로 조사받는 과정에 발생한 증거조작 사건은 본질을 넘어 정치권과 좌우 진영(陣營)의 정쟁수단이 되어버렸다.

화교 간첩사건 조사과정에 국가정보원의 대북정보활동 내용 공개는 물론이고 국정원장 책임과 사퇴, 국정조사까지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온 필자가 보기에 북한 급변사태의 가능성이 나날이 높아져 가고 있는 지금, 국가정보원의 대북정보 기능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은 심히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

지금은 주변국들이 북한의 급변사태를 기정사실화하고 그 대비를 하고 있는 시기이다. 남한과 중국, 미국 등 주변국들은 북한 김정은 정권의 불안 가중으로 인한 급변사태와 관련해 보이지 않는 치열한 정보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중차대한 시점에 전쟁에 나간 군대가 전투를 잘못했거나 회피했다고, 병사들이 해이(解弛)됐다고 군대를 무장해제시키면, 전쟁에서 누가 싸울 것인가? 전쟁에서 질 것은 뻔하다.

손자병법에서도 전쟁 중에 장수를 바꾸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하다. 이는 작은 실수나 잘못으로 인한 손실보다 큰 목적을 잃기 때문이다.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지난해 12월 9일 북한당국이 ‘장성택을 제거’했다고 보도한 이후부터 날이 갈수록 권력불안이 심각해지고 있다. 

북한 김정은 권력이 지속되려면 지도자 우상화와 지도자를 보좌하는 최측근들의 안정적 결속이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김정은은 우상화의 3대 요소인 위대성, 정당성, 업적에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고 가수 출신 부인 리설주마저 김정은 우상화에 부담이 되고 있다. 김정은은 아버지가 물려준 권력 측근을 모두 숙청했고 별을 붙였다 떼다 하면서 나머지 군부 핵심인사들의 스트레스를 증폭시키고 있다.

경제와 군사, 주민생활과 외교 등 모든 부문에서도 김정은은 돌이킬 수 없는 실책을 범했고 남은 것이란 강경탄압으로 인한 공포정치뿐이다. 그러나 장성택 처형으로 김정은의 공포정치는 임계점을 넘어 분노가 공포를 이기는 상황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3월 9일 선거에서 김정은 여동생 김여정까지 공식 등장한 것은 그만큼 김정은 주변에 믿을만한 심복이 없다는 뜻으로, 달리 해석하면 급변사태 가능성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1970년대에 경제가 정체되기 시작했고 1980년대에는 주민생활이 급속히 하락했으며 1990년대에는 식량난으로 350만여 명이 굶어 죽었다. 2000년대에는 남한과 국제사회의 대북지원으로 겨우 연명했지만 핵개발로 회생 기회를 잃었고 2010년대에는 김정일 사망과 김정은 무능으로 급변사태의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한다고 해서 북한에 민주정권이 들어서거나 통일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현 상황에서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현 기득권이 새로운 지도자를 내세우는 권력교체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기득권에 의한 권력교체는 곧 북한정권의 친중화가 더욱 심화되어 분단고착이 장기화 또는 영구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정은 정권의 권력불안 징후들이 나타나는 연속성과 횟수가 늘어날수록 급변사태를 전략적으로 조종할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기관이 바로 국가정보원의 대북정보활동이고 심리전이다. 화교 간첩사건 수사과정에서 증거 조작 문제가 발생했다고 해서 국정원장 사퇴나 국정조사 등으로 국가정보원의 대북 기능을 위축시킨다면 북한 급변사태 대응을 못하게 된다.

미국도, 중국도, 러시아도 모두 내부적으로는 북한 급변사태를 기정사실화하고 대비하는 느낌이다. 수많은 언론보도가 그러한 정황을 확인해주고 또 북한 내부에서 전해오는 정보와 소식들이 김정은 권력의 종말을 예고해주고 있다.

필자는 전 북한주민으로서, 20년을 남한에서 살았지만 제3자의 시각으로 남한의 정치와 현실을 관찰해왔다. 모든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사건들을 미래의 통일 환경에 대입해보는 비판적,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려 노력해왔다. 때문에 화교 간첩사건 증거조작을 계기로 국정원의 대북정보기능을 마비시키는 것은 참으로 우매(愚昧)한 정치적 이기주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금과 같은 중차대한 시점에서, 북한 급변사태를 앞두고 주변국들과의 치열한 정보전쟁이 벌어지는 지금 정보전쟁을 담당한 ‘군대’를 무장해제시키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북한 김정은과 김양건 그리고 김영철 정찰총국장을 비롯한 대남분야의 핵심간부들은 손에 땀을 쥐고 남한의 화교 간첩사건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쯤 박수를 쳐가며 민주당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을 응원하면서 좋은 고급 와인을 준비해놓고 축배를 들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화교 간첩사건을 계기로 정치인들이나 단체들, 운동가들과 언론은 ‘정치적 이익’과 ‘국익(國益)’ 중에서 어느 것이 우선인지를 생각해보아야한다. 솔직히 같은 민족이고 국민인 북한주민의 인권에는 차갑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중국 국민의 인권에는 왜 그렇게 뜨거운지 의문스럽다.

평시에는 정치적 이익이 국익으로 연결되겠지만 북한 급변사태라는 거대한 사변을 앞에 둔 현시점에서 화교 간첩사건의 정쟁화는 국익을 해칠 뿐이다. 거의 모든 탈북자는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에 있었던 대북지원이 거의 붕괴직전에 있던 김정일 정권을 살려주었다고 확신한다. 김정은 정권은 그때보다 더 심각한 위기에 놓여있다. 지금은 잠시 정치적 이익보다 국익을 우선시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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