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선의 북방파일’ 연재를 시작합니다

▲ 1990년 한-소 수교 당시

저는 1973년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에 입사하여 2002년 회사를 그만둘 때까지 약 30년을 사회주의 공산권과의 경제교류와 연구에 종사하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코트라(KOTRA)는 수출입국(輸出立國)의 기치를 내건 5.16 군사혁명 정부가 1962년에 특명으로 세운 국가수출진흥 전담기관입니다.

동서냉전이 치열했던 70년대와 80년대는 남북간의 전방위적인 대결도 이에 못지않게 가열되었던 시절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월남전이 공산월맹의 승리로 기울어져 가던 70년대 초, 코트라에게 공산권과의 직접교류를 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한국상품을 파는 新시장 개척명분을 앞세워 이들 국가들에 접근했습니다만, 사실은 한반도에 ‘하나의 조선’이라는 북한의 대남전략에 철저하게 충실한 동맹관계에 있던 소련, 중국 등과 국교정상화를 함으로써 이들 북한의 형제국가들로 하여금 북한을 설득하여 남북관계 개선을 주도해보자는 큰 차원의 대북전략을 추진하기 위한 전초(前哨)기지를 마련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저는 공산권과의 접촉을 엄격히 통제했던 당시에 이들 국가들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한명이었습니다.

공산권의 각계각층 수많은 사람들을 상담을 핑계로 만났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한국과 경제관계를 정상화하면 실익이 있음을 내세워 국교정상화를 집요하게 설득하였습니다. 그들은 처음에 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을 뿐더러 경계의 눈초리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동구권의 태도가 호의적으로 달라지면서 88 서울올림픽 참가를 명분삼아 1987년 헝가리를 시작으로 전 동구권과 소련이 서로 앞 다투어 무역대표부를 교환설치하여 국교정상화의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이 과정이 노태우 정부시절 북방정책으로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만일 동구권이 한국과 수교 후에도 붕괴되지 않았다면 남북관계는 달라젔을 것이라고 역사적인 가정을 해 봅니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관계기관 특히 안기부(현 국정원) 와 코트라가 업계의 협조를 받아 용의주도하게 준비해 온 결과입니다.

얼마 전 중국 장쩌민 前주석의 회고록에서 한중 무역대표부 설치의 불가피성을 북한 김일성 주석에게 설득하는 장면을 기사에서 읽고 감회가 깊었습니다.

북방으로 향한 행로, 이제 기록 남길 때

1980년대 말부터 저는 북한으로 발길을 돌려, 베이징에서 북측인사들과 접촉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첫 인사는 “당신은 우리와 형제국들간에 이간질을 시킨 장본인이니까 처단 대상 1호다. 이제 우리에게 뭘 원하는가”라는 격렬한 비난이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냉담하면서도 남측에게 뭔가 바라고 있다는 감(感)을 느꼈습니다. 당시에 이미 북한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남한으로부터 지원을 기대하고 방법과 명분을 찾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저는 신문에 오르내리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북한의 대남창구 인사들 대부분과 교류하였습니다. 1995년 김영삼 정부가 북한에 쌀 15만톤을 주는 사업의 중심에 서서, 인공기 사건, 쌀 운반선의 청진항 억류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건들이었습니다.

저는 80년대 초부터 사회주의 공산권을 직접 접하면서 이 체제의 붕괴는 역사적인 필연임을 감지하였습니다. 인민들의 형편없는 의식주 사정, 획일적인 통제로 창의성이 완전 결여된 분위기 등이 국가 전체가 느슨한 집단 수용소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1979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공산권 경제분야를 공부하고 싶다고 하자, 담당교수는 한참 쳐다 보더니 저에게 “향후 10년 안에 유럽의 공산권은 붕괴된다. 쓸모없는 학문이니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응답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1989년, 동독을 앞세운 전 동구 공산국가들이 차례로 초대형 ‘인민 쓰나미’에 휩쓸려 지구상에서 사라젔습니다.

당시에 저는 평양에 무역관을 설치하여 북한실상을 직접 진단하고 정확한 치료법을 강구하면 북한의 경제도 되살리고 남북관계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젔습니다. 그러나 그 소망은 구상으로만 남기고 코트라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저의 오랜 지인인 데일리NK 손광주 편집국장님께서 지면을 할애해 주면서 오래 전부터 북방을 향했던 저의 행각(?)을 정리하여 기록으로 남길 것을 제의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주저하였으나 사료화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멀고 험난했던 북방의 길을 함께 한 코트라의 동료들과 특히 안기부의 실무를 담당하였던 분, 그리고 북방사업을 직간접으로 도와주신 여러 업계 분들에게 이 기록을 바치고자 합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