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 피해’ 북한 식량위기 다시 오나?

북한 집중호우로 인한 농경지 피해가 심각한 것으로 보고됐다. 국내외 지원단체와 전문가들은 이번 홍수 피해로 식량 생산량이 크게 감소해 외부지원이 없을 경우 식량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경고를 쏟아내고 있다.

북한 당국이 이례적으로 피해 현황을 연일 집계해 발표하고 농경지 침수 현장을 담은 영상을 공개하면서 외부 사회의 식량난 우려는 더욱 커졌다. 그러나 아직 북한 식량난 실태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나오지 않고 있다.

북한 식량난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예측 없이는 북한 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효과적인 지원도 어렵다.

북한 조선중앙TV는 16일 기준으로 북한 전역에 걸쳐 22만 정보(3,000평, 약 9,917.4㎡ 면적)의 농경지가 피해를 입었다고 발표했다. 이는 북한 전체 농경지의 14%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도 북한 발표를 근거로 이번 수해로 북한의 곡물 수확이 20만~30만t 정도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일부 국내 전문가 중에는 40만t이라는 주장도 있다.

북한의 식량난을 파악하려면 우선은 북한의 전체 경작면적과 식량 생산량, 그리고 북한 주민들이 1년간 필요로 하는 최소 식량 수요량을 알아야 한다.

1년 생산량 400만톤이면 배급 재개도 가능

북한의 발표대로라면 북한 전체 농경지는 대략 160만 정보가 된다.

대다수 탈북자들은 북한 농경지 1정보의 식량 생산량(쌀, 옥수수 포함)을 평균 2.5~3t이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수치는 만성적인 비료부족과 산성화된 북한의 토질을 감안한 것으로 지역마다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160만 정보의 농경지에서 정보당 2.5t만 수확돼도 대략 400만t 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1정보당 3t이면 480만t이 된다. 물론 최악의 식량난을 겪었던 90년대 중반에는 1정보에서 1t도 수확하지 못한 땅이 많았다.

한국농촌진흥청은 지난해 북한 식량 생산량을 448만t으로 추산했다. 세계식량계획(WFP)은 430만t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대북지원단체인 ‘좋은 벗들’은 280만t 밖에 안 된다며 올해 춘궁기에 90년대 중반보다 더 심각한 아사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북한주민이 먹는 1년 식량 수요량은 어느 정도일까?

북한 정책 담당자들은 하루 1만t을 생산하면 충분히 먹고 살수 있다고 말해왔다. 1일 식량 소비량은 1만t 내외라고 볼 수 있다. 이를 1년 365일로 환산하면 연간 360만t~400만t 정도가 소비된다.

이는 간단한 계산으로도 충분히 파악이 가능하다. 노약자와 어린 아이까지 포함해 모두 550g을 배급한다고 가정하면 하루 1만2천100t, 1년이면 441만6천500t이 필요하다.

80년대부터 비축미 명목 제한 배급 실시

북한 인구는 대략 2천200만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당국은 보통 성인에게 550g, 어린이와 노약자에게는 하루 300g을 배급해왔다. 미 CIA가 2004년 7월 발표한 ‘World Fact Book’에 따르면 15세에서 64세까지의 인구는 전체의 67.8%인 약 1500만명이다. 어린이와 노약자를 약 700만 명으로 추정할 경우 1년 식량 수요량은 377만 7750t이 된다.

특별 배급을 받는 대상인 인민군과 유해노동 종사자(광산노동자 등)를 감안해도 400만톤이면 안정적인 배급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북한은 80년대 초반부터 ‘전시 비축미’라는 명목으로 일반 주민들의 월 배급량에서 8일 분씩을 공제하고 공급했다. 월 8일이면 12개월 동안 96일분의 식량을 제외하고 배급을 준 것이다. 주민들은 ‘전시 비축미’ 부분을 제외하고 사실상 23일 정도의 식량으로 버텼다.

1년 중 96일분을 제외하면 북한 주민들은 1년 동안 평균 300만t 이하로 떨어진다. 북한 주민들은 80년대부터 쫄쫄 굶으면서 살 때는 300만t 이하 배급으로 버텨온 것이다.

그렇다면 배급제가 왜 복구되지 않는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배급시스템을 시장이 대체하고 있고 협동농장 경작지를 직접 공장 기업소나 기관에 배분해 자체 해결하는 구조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협동농장에서 양정사업소로 이동해 국가가 보관했다가 다시 각 기관을 통해 주 단위로 공급 되는 과정 자체가 고비용 구조다. 또 식량 배분 과정에서 착복하는 경우도 많아 배급 시스템이 복구되기 어려운 상황으로 파악된다.

한편, 농촌경제연구원은 북한주민 1명의 1일 소비량을 1600 kcal 로 보고 북한의 식량 소요량을 연간 520~530만t 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제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도 2001년부터 북한 예상 수요량을 500만t 이상으로 보고 있다.

이는 북한인구 2200만 명을 모두 성인으로 계산해도 하루 650g의 식량을 공급할 수 있는 량이다. 만약 90년대 중반 북한에서 650g의 절반만 배급했어도 대량아사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탈북자들은 말한다.

탈북자들은 남한 당국의 식량 소요량 추정치를 남한식 영양수준을 기준으로 제시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번 수해로 유실된 22만 정보의 농경지에서 1t의 식량도 건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올해 북한의 식량 감소량은 55만t 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이 산출한 지난해 식량생산량 440만t에서 55만t을 차감해도 385만t이다. 그러나 이러한 산출량 추산이 정확하지 않다는 데 문제점이 있다.

북한 농업과학원 출신 이민복 씨는 “북한의 식량 생산량이 이곳에서 추정하는 것보다 훨씬 적을 수 있다. 400만t도 안되기 때문에 식량 부족이 발생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북한의 식량생산량이 어느 정도라도 이번 수해로 50만톤의 식량 감소가 있다면 식량난이 가중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북한에서 작년 식량 생산량이 350만∼400만t 수준만 돼도 심각한 기아사태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7월 말 기준으로 한국 정부의 지원과 국제기구 그리고 북한의 무역량을 모두 합할 경우 외부 유입량은 총 55만 여t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에서 식량 수요 최저량이 충족된다면 이후 대북지원은 지원량 보다 꼭 필요한 주민들에게 돌아가도록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지원식량의 상당부분을 의약품으로 대체 지원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이번 집중호우로 인한 북한 식량위기는 지난해와 올해 북한의 식량 생산량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되는가가 관건이다. 따라서 벌써부터 내년 ‘아사사태’를 전망하는 것은 섣부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