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남은 이희호의 순애보

“너무 쓰리고 아픈 고난의 생을 잘도 참고 견딘 당신을 나는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이희호 여사는 지난 20일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입관식에서 생의 반려자이자 동지로 ‘동행’했던 47년을 떠올리면 써내려간 이러한 내용의 편지를 안겨보냈다.

이 여사가 자랑스러워한 김 전 대통령의 영욕의 삶은, 김 전 대통령이 생전 “아내가 없었다면 내가 오늘날 무엇이 되었을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밝힌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여사 자신의 삶이기도 했다.

유복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화목한 유년기를 보낸 이 여사는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하고 당시에는 드물게 미국 유학까지 한 엘리트 여성운동가였다.

1951년 피란지 부산에서 지인의 소개로 김 전 대통령과 몇 차례 대면했던 이 여사는 10년 뒤 첫 부인과 사별한 그를 재회, 1962년 운명적인 결혼에 이르게 된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계속된 출마와 낙선으로 빈털터리 정치적 낭인에 불과했지만 이 여사는 가족과 주변의 반대를 뿌리치고 결혼을 선택했다.

이 여사 스스로 “꿈이 큰 남자의 밑거름이 되자고 결심하고 선택한 결혼”이라고 밝혔듯 김 전 대통령이 옥고를 치를 때는 옥바라지로, 미국 망명 때는 후견인으로, 가택연금 때는 동지로, 야당 총재 시절에는 조언자로 정치 역정을 함께 했다.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남편이 진주교도소에 구금되자 이 여사는 진주와 서울에서 일주일씩 지내며 남편 곁을 지켰다. 면회는 한달에 한번뿐이지만 가족에 가까이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이 여사는 수감중인 남편에게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편지를 썼다. 겨울에도 안방에 불을 넣지 못하게 했다. 유난히 추위를 타는 남편이 영하의 감방에서 떨고 있는데 혼자서 따뜻하게 지낼 수 없다는 이유였다.

내란음모 사건으로 김 전 대통령이 사형 판결을 받았을 때는 지미 카터 미 대통령에게 구명을 청원하는 편지를 보내는 등 국제사회를 향해 구명 운동을 벌였고, 각종 선거 때는 전국을 누비며 헌신적으로 지원유세를 펼쳤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퇴임 후에도 늘 공식석상에 남편과 함께 했다. 2007년 재보선과 2008년 총선에서 차남 홍업씨를 위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지원유세에 나서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저서 `내가 사랑한 여성’에서 “내가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바로 아내와의 헤어짐이 너무도 아쉽고 슬프기 때문일 것입니다”라는 말로 아내를 향한 무한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러나 2009년, 남편이 병마와 사투를 벌일 때 87세의 연로한 몸으로 매일같이 눈물로 기도하며 병상을 지켰던 이 여사는 결국 생애를 공유했던 반려자를 먼저 보내고 홀로 남게 됐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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