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남게 해 미안하기만”

남북 이산가족 화상상봉장의 모니터에 화면이 켜지는 순간 헤어질 당시 7살이었던 딸은 환갑을 넘긴 나이로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꿈이 아니었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딸인데 계속해서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훔치느라 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얼굴을 마주 보며 이름 한 번 불러 보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24일 오전 10시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 4층 화상상봉실.

남측 조숙명(93) 할머니는 상봉 10여분만에야 떨리는 목소리로 북측 류조숙(63)씨에게 첫말을 꺼냈다.

“고맙구나…”
평양에서 남편과 슬하에 4남매를 뒀던 조 할머니는 대지주였던 남편이 토지를 몰수당한 뒤 월남을 결심, 1948년 남편과 함께 가족들을 데리고 서울로 옮겨왔다.

이 와중에 친할머니 집에 머물고 있던 세째딸 조숙씨만 홀로 북에 남겨지게 됐다.

조숙씨만 북에 놓고 온 것이 마음에 걸렸던 할머니는 딸을 데려오기 위해 월남한 지 한 달 뒤 다시 북으로 갔으나 “어수선한 시국에 딸을 데리고 월남하다 더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시어머니 호통에 딸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남으로 되돌아왔다.

그로부터 57년이라는 세월은 어느덧 흘러버렸다.

`전쟁통에 할머니 집이 폭격을 맞아 모두 돌아가시는 바람에 전쟁 고아로 혼자 생활했다’는 조숙씨의 말에 남측 상봉장은 가족들의 탄식으로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조숙씨의 둘째 오빠인 남측 승범(66)씨는 “부모형제 없이 살아갈 동생 생각에 늘 미안한 마음 뿐이었는데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남측에서는 조 할머니 외에도 아들 셋이 함께 나왔고 북측에서는 조숙씨와 아들 한 명이 나와 서로 사진을 보여 주며 짧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북측의 손자는 “외할머니, 꼭 100살까지 사셔서 통일된 뒤 100돌상을 북에서 받으시라요”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고 조 할머니 역시 “너희도 몸 건강히 지내서 살아서 꼭 한 번 만나자”고 당부했다.

이날 화상상봉장은 반백년 넘게 쌓인 한을 푸는 자리라기보다는 만날 수 있다는 새로운 희망을 품는 자리가 됐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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