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규원 오길남씨 만남 거부 北 강압 때문일것”

북한 당국이 신숙자(70) 씨의 사망소식과 혜원·규원 자매가 오길남 박사와의 만남을 강력히 거부했다는 답변서를 ‘유엔 임의적 구금에 관한 실무그룹’을 통해 지난달 하순에 보내왔다. 북한 당국은 답변서 말미에 “‘최고의 배려’를 담은 새로운 확답을 수용하라”고 밝혔다.  


신 씨의 사망을 확인하는 답변서 내용이 알려지자 남편 오 박사를 비롯한 북한인권 단체들은 애통해하면서도 답변서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시민단체들은 신 씨의 사망 원인을 ‘간염’으로 단정한 북한의 발표를 인권 유린 은폐를 위한 술수라고 평가했다. 혜원·규원 두 자매가 오 박사와의 만남을 거부했다는 것도 북한 당국의 강압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홍재 남북청년행동 대표는 “혜원·규원이 오길남 박사와의 만남을 강력하게 거부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본인들의 의사인지 매우 불확실하다”며 “두 자매는 청년시절을 정치범 수용소 안에서 보냈기 때문에 북한 당국이 그러한 발언을 하도록 압박했을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했다.


세계 각지를 방문해 신 씨 모녀 문제 해결을 위한 여론 조성에 나섰던 김태진 정치범수용소해체운동본부 대표는 “혜원·규원 자매가 오 박사와의 만남을 거부한 것이 사실이라면, 정치범수용소 내부에서 세뇌를 당했기 때문일 것”이라며 “북한은 그 아이들에게 ‘너희 아버지는 당과 혁명의 원수, 배신자’라는 식의 교육을 강요했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그러나 “두 자매가 자유주의 체제에서 자란 아이들이기 때문에 당시 생활을 기억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신숙자 씨를 통해 어떤 경위로 북한에 들어갔고 오 박사가 어떤 이유로 자신들을 떠났는지 어렴풋이 기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신 씨의 고향인 통영시에서 ‘통영의 딸’ 구출운동이 시작돼 전국으로 번져갔다. 최홍재  대표는 지난해 11월 국토 대장정을 통해 전국을 돌며 서명·모금·유엔청원 운동 등 다방면의 활동을 진행한 바 있다. 엠네스티 등 국제인권단체들도 유엔 등에 신 씨 가족의 석방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북한 당국이 이들에 대해 이례적으로 답변서를 보내온 것은 국제적 인권문제로 부상한 신 씨 모녀 송환 여론을 잠재우려는 의도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최고의 배려를 담은 확답이라고 말해 추가 조사나 답변은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암시하고 있다.


최 대표는 “국회에서 신 씨 모녀 문제와 관련된 결의안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중”이라며 “무엇보다도 다시 범국민적인 관심사를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 당국은 신 씨 모녀 문제를 이쯤에서 봉합하려는 것으로 보이는데, 독일이나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북한을 압박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성룡 납북자 가족모임 대표는 “납북자 가족들은 ‘구출통영의딸국민운동본부’와 함께 북한에 국제적인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며 “오 박사 가족이 독일에서 장기간 체류했고, 혜원과 규원이는 독일에서 태어난 만큼 독일 정부를 직접 나서게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