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제 인사를 받으세요”

“부모님께 드리지 못한 인사까지 모두 올립니다.”

9일 대한적십자사 강원지사에 마련된 제3차 남북 이산가족 화상상봉장에서 박천석(79)씨는 화상을 통해 북측의 동생 창석(73)씨가 큰절을 하자 박씨는 물론 여동생 귀녀(71)씨 등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눈시울만 붉혔다.

4남매중 둘째인 북측의 창석씨는 형에게 절을 올린 뒤 화상에 비친 동생 귀녀씨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며 당시의 추억을 하나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창석씨는 다른 형제에 비해 바로 아래 동생에 대한 애정이 깊은 듯 “네가 내 동생 귀녀가 맞느냐”고 몇 번씩 되물어 어느새 많이 달아진 긴 세월의 깊이를 실감케 했다.

또 동생 재석씨가 북측의 형 창석씨에게 “형님 저 재석이어요. 막내 재석이요” 라고 말하자 형 창석씨는 “네가 막내란 말 하지 않아도 내가 알고 있다”며 진한 혈육의 정을 나눴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 창석씨가 북측 의용군에 징집되는 바람에 이들 형제 자매는 55년 간의 길고도 긴 생이별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창석씨는 징집 당시 낙동강 전투 투입을 위해 기차를 타고 가다 미리 써 둔 편지를 돌멩이에 묶어 자신의 마을 앞을 지날 때 창문을 열어 던지며 자신의 소식을 알렸다며 잠시 말문이 막히는 듯 상념에 잠겼다.

당시 천석씨 가족은 다행히 동네에 사는 이웃이 돌멩이를 주워 창석씨의 소식을 알았지만 이후 이들 형제자매는 반세기의 이별을 지나 어느덧 하얀 백발의 모습으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청간리에 살던 형제 자매는 반세기 전의 추억을 하나씩 꺼내며 이야기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북측의 아내와 딸을 소개한 창석씨는 “난 김일성대학을 나와 사회에 큰 일꾼이 되었다”며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으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며 눈시울을 붉힌 동생들을 위로했다.

이에 동생 재석씨는 “형님이 잘 계신 걸 보니 맘이 놓인다”며 돌아가신 어머니 사진 등을 보여주며 가족의 근황을 상세히 설명했다.

마을의 소나무 얘기에서 부터 동네 친구들의 근황에 이르기 까지 2시간의 상봉시간은 긴 이별의 시간을 메우지 못하고 또다시 이별의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이들 형제 자매들은 “통일이 되면 그 때 다시 보자”며 석별의 정을 나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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