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살아계실 줄 알았습니다”

“부모님 제사 때마다 형님 생각이 더 간절했는데 이렇게 살아계시다니…살아계신 것만으로도 정말 고맙습니다”

27일 대전시 중구 대한적십자사 대전.전남지사 화상상봉장에서 김용헌(71.충남 보령시 동대동)씨는 북쪽에 사는 큰 형 용운(74)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날 오전 용헌씨는 남쪽에 있는 동생 용분(65.여)씨와 조카 대중(43) 씨 등과 함께 6.25 때 헤어진 용운씨 가족을 화면으로 만났다.

김 씨는 “어머니가 형님 보고싶다고 애원하다가 돌아가셨는데 이렇게 형님하고 조카들을 보니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라고 말한 후 “형님 생일이 들어있는 10월이 되면 맘속으로 축하하고 오래 사시길 기원해왔다”며 감격에 복받친 듯 눈물을 흘렸다.

김씨 남매는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자녀들은 몇명인지, 아픈데는 없는지, 집은 어딘지 쉴새 없이 질문을 쏟아내며 서로의 안부를 확인했다.

청양군 남양면 용두리에서 평온한 삶을 살아오던 김씨 남매들은 큰 형님인 용운씨가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의해 의용군으로 끌려가면서 생이별을 해야했다.

북한군은 당시 청양에서 모두 4차례에 걸쳐 인민 의용군 소집을 했는데 당시 17세였던 용운씨는 두번의 소집은 피했으나 세번째 소집 때 결국 인민군으로 끌려갔고 이후 소식이 끊겼던 것.

형 용운씨는 “전쟁 때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도 많이 탔다. 난 대학교육까지 마친 뒤 군에서 일생을 보낸 ‘군인’이야”라고 자신의 근황을 소개한 뒤 “평생 동생들 생각을 잊어본 적이 없는데 그만들 울고 용기를 내야지”라며 동생들을 격려했다.

큰 용운씨의 여동생 용분씨는 “조카들이 너무 잘생겼다. 언니들도 오빠를 그리워하다가 모두 세상을 떴는데 나는 이렇게 오빠를 만나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며 “이렇게 만날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라고 즐거워했다.

북쪽의 가족들은 돌아가신 부모님의 기일과 선산 등을 확인하는 한편 용운씨가 어린시절을 보낸 고향 친구들의 근황을 물어보기도 했다.

화상상봉을 끝낸 동생 용헌씨는 “분명 살아계실줄 알고 제사도 모시지 않았고, 내가 죽으면 형님 생일때 제사를 올리라고 아들에게 얘기했었는데, 꿈에 그리던 형님을 만나게 돼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대한적십자사 대전.충남지사 상봉장에서는 천순기(68)씨를 비롯, 남쪽에 사는 3가족 15명이 화상으로 2시간씩 북쪽의 가족과 만났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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