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14일 평양 방문일정을 세 번째 연기했다. 당초 유성진 씨 석방 등을 이유로 2박3일 평양을 방문한 현 회장의 방북기관이 5박6일로 늘어나자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날 억류 136일 만에 현대아산 직원 유 씨가 석방될 때만해도 현 회장의 14일 귀환이 예상됐다. 당면 현안이 해결된 이상 김정일과의 ‘만찬 회동’을 통해 사의를 표하고 향후 금강산·개성 관광 등 협력사업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눌 것이란 관측이었다.
그러나 현 회장이 다시 한 번 체류 연장을 신청하면서 과연 누구의 의중이 반영된 것인지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일단 김정일과의 면담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된 만큼 현 회장의 체류는 김정일과의 회동을 위한 것으로 확실시된다.
협력사업 등에 대한 논의에 시간이 더 필요했을 수도 있으나 이미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을 이미 만났기 때문에 사실상 이명박 정부의 ‘민간특사’로서 김정일을 만나 대북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정부가 일관되게 “현 회장을 통해 북측에 전달될 메시지는 없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에 비쳐볼 때 금강산 관광 재개 관련 회사의 입장과 사정을 김정일에게 직접 전달하기 위한 체류연장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 금강산 피살사건과 북한의 12·1조치에 금강산·개성 관광길이 막혀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는 현 회장으로서는 돌파구 마련을 위해 김정일과의 ‘독대’가 필요하다.
14일 현대아산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아산은 올 상반기에 매출 526억4100만 원, 영업손실 193억2945만 원, 당기순손실 255억6568만 원을 기록했다. 영업손실 193억 원은 작년 영업적자 54억 원의 약 4배에 달한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금강산 및 개성관광 중단, 환율상승으로 장기미지급금 환산손실 등으로 당기순손실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1년 넘게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면서 현대아산은 현재 조직 축소와 임금 삭감 등 비상경영체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만큼 관광 재개가 절실하다는 의미다. 모든 결정권을 가진 김정일이 현 회장의 ‘읍소’에 화답해 관광 재개의 뜻을 밝힌다면 현 회장으로서는 정부를 설득할 명분을 갖게 된다.
물론 금강산 관광 재개의 전제조건을 김정일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현 회장이 김정일의 ‘화해메시지’를 갖고 온다면 정부로서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 분위기다.
현 회장과 김양건 부장의 만남 소식도 김정일과의 회동이 임박했다는 신호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김정일과의 회동 이전에 현 회장의 의사를 사전에 조율했을 것이란 지적이다.
김 부장은 남한의 ‘통일부장관’ 격에 해당하는 북한의 대남 최고위급 관계자로, 지난 4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일의 면담 때도 배석한 바 있다.
이와는 달리 김정일이 현 회장을 만날 생각을 하면서도 ‘더 큰’ 경제적 보상을 기대하면서 시간을 끌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일각에선 김정일이 광복절인 15일 이명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 담긴 대북 메시지 등을 지켜본 뒤 현 회장을 만나 대남 메시지를 전달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의 ‘조국해방의 날’의 날이기도 한 이날 회동을 통해 ‘극적 효과’를 노릴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당초 국면전환용 ‘정치적 노림수’로 현 회장을 초청해 유 씨 석방을 단행했지만 예상과 달리 그 파장은 미비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김정일이 ‘삼고초려(三顧草廬)’하는 현 회장에게 자신과의 ‘독대’를 허락할 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