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회장, 北 압력에 절충카드

현정은 회장의 핵심 측근으로 꼽히는 최용묵 현대엘리베이터 사장이 27일 현대그룹 경영전략팀 사장직에서 물러남에 따라 그 배경과 현대의 대북사업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대는 사임 이유를 감사보고서 유출에 대한 책임이라고 밝혔지만 최 사장이 김윤규 전 부회장의 감사를 주도한 인물인 점을 감안하면 북측이 최근 요구한 ‘야심가 제거’를 현 회장이 받아들인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에따라 현정은 회장은 11월 초로 예정된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의 만남에서 협상력이 한층 커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결국 북측 압력에 굴복했다는 지적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 현정은 회장, 북측에 절충카드 = 현대측은 최용묵 현대엘리베이터 사장의 경영전략팀 사장 사임 이유를 감사보고서 유출에 대한 책임이라고 밝혔다.

감사보고서가 유출되면서 남북협력기금 논란으로 통일부와 껄끄러운 관계가 되고 북측의 심기도 건드리는 등 현대의 입장이 상당히 난처해졌기 때문이다.

현대 관계자는 “최용묵 사장이 먼저 감사보고서 유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표했고 현정은 회장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사임이 북측의 ‘야심가 제거’ 요구 직후 이뤄졌다는 점에서 조만간 있을 리종혁 부위원장과의 회동을 의식해 내려진 결정이 아니냐는 해석이 자연스레 나온다.

북측은 지난 20일 담화에서 “현대 상층부가 곁에 와 붙어 기생하려는 야심가들을 버리고 옳은 길에 들어선다면 금강산관광의 넓은 길을 열어주겠다”고 밝혔었다.

이는 북측이 금강산관광 정상화의 조건으로 일부 전문경영인의 경질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됐다.

실제 최 사장은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 등과 함께 북측으로부터 입북금지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북측에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북측의 요구를 완전히 무시해서는 협상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한 현 회장이 상처를 최소화하면서 북측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하는 묘수로 최 사장의 경영전략팀 사장 사임 카드를 꺼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는 그동안 현 회장이 줄기차게 밝혀 온 “내부 인사에 대한 북쪽의 부당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선언과는 맞지 않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상황에 따라서는 대내외에서 지지를 받고 있던 정도경영의 의미도 상당부분 퇴색될 수 있다.

현대측은 이 같은 해석에 대해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현대 관계자는 “최용묵 사장은 감사보고서가 유출돼 남북협력기금 논란이 일었던 당시에 이미 사임 의사를 굳혔었다”면서 “북측의 요구가 없었더라도 최 사장의 사임은 정해진 수순이었다”고 해명했다.

◇ 금강산관광 정상화 전망 ‘쾌청’ = 현대는 최 사장의 사임이 북측의 요구와 상관없다고 밝혔지만 일단 모양새는 북측의 요구를 수용한 셈이 됐다.

이른바 ‘김윤규 사태’ 이후 현대측이 북측을 달래기 위해 내린 첫 조치로 내달 초 예정된 현 회장과 리종혁 부위원장의 협상 전망도 한층 밝아지게 됐다.

북측이 최용묵 사장의 경영전략팀 사장직 사퇴만으로 금강산관광 정상화의 조건이 충족됐다고 여길 지는 불분명하지만 북측도 이 이상의 조치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점은 인식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윤규 전 부회장 문제를 물고 늘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난 20일 담화에서 이 부분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고 김 전 부회장도 최근 ‘오너가 아니면서 오너처럼 행동한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지겠다’고 사과의 뜻을 우회적으로 밝힌 만큼 가능성은 희박하다.

북측은 주요한 달러원인 금강산관광을 더 이상 파행으로 이끌어서는 이로울 게 없고 개성관광도 다른 기업과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현대와의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
우선 금강산관광 정상화에 대해서는 양측이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내달 17일이 금강산관광 7주년이란 점도 협상의 촉매제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개성관광과 백두산관광 등 현대가 추진해 온 다른 관광사업의 전망에 대해서는 정상화를 속단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북측에서 개성관광의 대가로 제시한 ‘1인당 150달러’를 전격 수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현대측이 이 가격으로는 도저히 사업성이 없다고 주장해 온 점을 감안하면 가능성은 낮다.

따라서 현대는 우선 금강산관광을 정상화시켜 화해 분위기를 도모한 뒤 개성관광과 백두산관광 등 다른 사업들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 관계자는 “최 사장의 사퇴를 계기로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남북경협사업이 하루빨리 정상화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연합